7. 천상병의 '귀천'을 생각하며
2.
4월 0일
부에노스 노체스!
이 메일은 어제 글의 연장입니다. 나의 이 제안에 대한 Lau의 이해를
돕기위해서 입니다. 이 시 '귀천'에도 곡이 있었습니다만 그 곡은
지난 번의 '아침이슬'의 곡만큼이나 내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습니다.
그 시에 곡을 붙인 노래들이 시인의 '영혼의 푸른 불꽃'을 제대로
표현해주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침이슬의
경우, 가사(copla)보다는 오히려 그 곡의 음율로 매료되었거든요.
그래서 이 시 '귀천'은 악보 없이 시(copla)만 번역해 보냈습니다.
곡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Lau와 루비나에게 맡깁니다. 이 번역 초고를
우선 한번 칸테 솔레아로 흥얼거리면서 마음가는 데로 솔레아 춤으로
표현해보시기를! 이 메일을 쓰는 동안 나는 lau가 즐겨 쓰는 말,
'시는 순수한 춤이 될 수 있다'( A poem can be pure dance)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이 시는 내게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글 '짜라투스트라.......'의 한 구절,
'어린아이'를 떠올렸습니다. '아침이슬'이 내게는 젊은 사자의 불굴의
도전정신과 청년의 기개를 상징한 것이었다면, '귀천'은 어린아이의
푸른 영혼이 표현된 것으로 여겨졌었습니다. 니체는 위의 그 책을
통해 세가지의 정신적 변화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철학자는
우리들에게 먼저 낙타를 , 다음에는 사자를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어린아이가 되라고 권고했었습니다. 호소력이 강한 시적 산문의
글로서 말입니다. 이 '귀천'의 시인은 내면에서 이 시의 영감이
번쩍이었을 때 , 아마도 푸른 하늘 빛을 띤 어린아이의 영혼을
머리속으로 그려본 것은 아니었을까 하였습니다,
이 시인, 천상병은 1970년대를 전후하여 이 땅(South Korea)을
다스렸던 군사독재 체제아래 옥중에서 심한 고초를 겪은 후
다시는 정상인으로 회복되지못한 채 살다 생을 마감했던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이 '귀천'은 이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간 그 시대의 '어린 왕자'의 노래( copla)입니다.
나는 이 시를, 그리고 이 시인의 영혼을 하늘 위로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이땅의 풀잎위에서 반짝이는 아침이슬로, 서편 하늘의
신비로운 저녁놀의 송가로 우리들 곁에 남아 흐려지기 위한
우리 영혼의 눈을 끊임없이 맑게 씻어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제 해가 지면, 어젯밤의 그 속눈섭 깊은 무희가 불레리아스를
춤추던 타블로 '라 따베레나 풀라멩카'로 다시 찾아갈 것입니다.
그 무희가 공연전 카운터에 앉아 한 손에 상그리아 잔을 든 채
담배연기로 허공에 그려내던 그 햐얀 동그라미를 오늘 밤 다시
보고싶습니다.
adios
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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