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타리파와 탕헤르 사이에서
1.
4월 0일
이번 여행길에 머릿속에 자주 맴도는 호세 메네레온의 짧은
, 그리고 답답하게도 그 뜻이 좀처럼 잡히지않는, 이 영문
한 구절: Flamenco is a tragedy in the first person! ,
나, 혹은 우리?
개인적인 너무나 개인적인 비극의
표현이라는 이 말은 무슨 뜻일까?
혼자 떠나는 먼 길 나들이는 누군가의 말처럼, 스스로 헐벗고
싶어서 일까? 열렬히 고백하고 싶은 게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어서 인가?
아마도, 인상파 화가 피사로가 고백했듯이 ,내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먼 길 나들이에 나선 것인지 모른다.
0일
'플라멩코는 너무나 개인적인 비극인지라 나 아닌 타자에게는
그 비극적 체험이 그 어떤 말이나 행동으로도 전달되지
않는다.'
이 표현은 나의 그 물음에 대한 lau의 해석이다. 헤레스에서
지브랄탈 해협쪽의 타리파로 떠나기 전날, 메일로 물었더니
그렇게 회신에 담아 보냈다.
0일
혼자 걷는 도심의 직선길 위에서의 긴 사색:
플라멩코 독무는 그것이 어떤 춤이건 간에, 본질적으로
내향적이다. 그 순간의 몸짓은 자신의 내면으로 향한 것이지
다른 누구에게로 향한 것이 아니다.
0일
슈라이너의 저서,Flamenco 를 항상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함께 하는 벗,그러나 플라멩코에 대한 이 덧없는 탐닉이여!
0일
혼자 배회하는 도심의 골목길.
싸구려 노점의 왁자지껄한 분위기.
피곤한 몸이 새우처럼 웅크린 채 묻히는 썰렁한 침상.
드물게 얻는 바다빛 그리고 그 충만감
이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나의 여행길에 언제나 친숙하다.
0일
달리는 버스속에서의 중얼거림:
플라멩코는, 새벽의 동터오름처럼,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외침의
충동을 억누를 수 없는 자들의 마음 속에 존재한다.
0일
바람 드센 타리파의 해안에 서서 지브랄타르 해협을 바라보다.
마음의 살갖에 와 닿는 바람이 예리한 칼끝 같다. 차가와서
그런 게 아니다. 귀를 울리는 바람소리가 고향 근처 천주산의
진달래 계곡에 잠든 어머니의 탄식소리 같아 그런가보다.
그렇지만, 육신의 눈은 출항직전의 모로코행 페리호가
정박해 있는 부두쪽으로 향한다. 거기에 승선을 기다리는
아랍인 복장의 두 여인이 있다. 조금전 바다로 향한 길에서
그녀 둘이 내 곁을 스쳐 지날 때 남긴 이국적인 향기가 코 끝에
아직 남아있다.
0일
햇빛 내림.
이름없는 광장의 돌계단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
세비야 행 버스 기다림 중 눈 앞에 아른거린 것들:
두 도시, 스페인의 타리파와 모로코의 탕헤르 사이의
좁은 지브랄탈 해협.
경계심 가득한 모로코 세관원의 눈빛.
탕헤르의 햇살 두터운, 삭막한 자연 풍경.
그리고 한가한 사색:
살풀이 춤은 희망이 보이지않는 깊은 슬픔의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그렇지만 그 침묵의 몸짓은 어둠의 비탈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적 환희의 끝점에 이른다.
플라멩코의 몸짓은 그 끝이 보이지않은 애통의 검은
수평선쪽으로 향한다 원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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