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세비야(Seville)에 다시 간다면
1.
스페인 여행중에 문은 안달두시아의 수도인 세비야를 두번이나
찾아갔었으나 갈 때마다 정작 보고싶은 것들이 있는 도심엔
발을 들여다놓지도 못한 채 버스 터미날 주변의 외곽만 맴돌고는
그냥 발길을 돌렸었다. 첫번째는 그라나다에 머물던 중 시간을
내어 달려갔을 때도 그러했었고, 두번째는 카디스에서 그 쪽
방향으로 가는 버스로 갔을 때도 그러했었다. 걸릴 것없는
자유로운 몸이었는데 무슨 이유로 당일, 돌아오는 마지막 버스
놓칠까 싶어 그렇게 소심하게 서둘렀는지 스스로도 궁금하다.
문은 세비예에 여유롭게 머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 이 장을
빌어 그는 세번째 방문을 상상으로 그려본다.
세비야로 향하기 며칠 전 마드리도에서 인테넷으로 예약해 둔
도심의 S 호스텔에 여장을 풀자 마자 데 로사리오 거리로 나섰다.
플라멩코 전용 공연장인 카페 실베리오의 위치를 미리 확인하고
싶어서 이다. 이 카페는 1960년의 전설적인 칸타오르 실베리오
프랑코네티가 자신의 고향 세비야에 설립한 플라멩코 전용 무대
이다. 실베리오 프랑코네티는 이태리계 집안 출신의 비집시(payo)
소리꾼으로 그의 거칠고도 달콤한 음색의 노래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에 홀려들지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와 동시대 인물로서
그와 쌍벽을 이루었던 집시 소리꾼 토마스 엘 니트리는 실베리오와는
한 무대에 서는 것을 싫어했었다고 전해지고있다. 실베리오가
집시 노래의 순수성이 결여되었다는 점을 엘 니트리가 명분으로
내세웠다지만, 실은 그의 거부감은 실베리오의 명성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 날밤 혼자 로사리오 길을 거닐면서 뜻밖에 조선시대 순조때
흥보가로 유명한 판소리 명창 권삼득와 이 도시의 플라멩코 소리꾼
실베리오 프랑코네티를 동시에 떠올린다. 전자는 판쇠 흥보가로
유명한 양반출신의 이른바,비가비 출신의 명창이었고, 후자는
이태리계의 비집시 출신 플라멩코 칸타오르였었다. 판소리 연구가
이국자에 의하면, 권삼득은 양반 명문가 출신으로서의 타고난 지위와
특혜를 버리고 소리꾼이라는 사회적 천민계층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보기 드문 명창이었다.
다음 날은 이 도시의 투우경기장 라 마에스타란자( Teatro de la
Maestranza)로 항한다. 와이셔츠, 넥타이, 양복으로 정장하고
값비싼 마차를 타고 입장한다. 입장권도 여간 비싸지 않다. 베낭
여행중에 씀씀이가 이처럼 대담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스페인에서 투우는 보통 경기가 아니다. 로마 시대의 경기장에서
검투사들이 검투사와 검투사 간의 , 혹은 사람과 사자 사이의,
목숨을 건 잔혹한 싸움이 아니다. 투우는 일종의 비극적 드라마로서
전통적인 종교의식처럼 장엄하고 멋을 부린 절차에 따라 ,사람은
살고 황소는 죽기로 되어있는 , 스페인의 전통의식이다.
투우 의식의 여러 단계인 '테르시오'(tercio)가 시작되기 전 심판자가
흰 스카프를 흔들며 그 시작을 알리자 팡파르가 울린다. 이어 황소가
거칠게 경기장 안으로 달려 나와 경기장에서 그를 기다리는 여러명의
투우 조력자들과 마주선다. 드디어 이 날의 주인공 투우사가 경기장
안으로 나타나 이 황소와 맞서 파오네스로 여러번 ' 파스'를 한다.
이어 두 명의 피카도르가 예리한 침이 박힌 창으로 황소를 찔러 황소의
힘을 약화시킨다.
이제 두번째 국면으로 접어들어 몇명의 '반데리오'가 황소 어깨에
창을 꽂는다. 그리고 절정의 국면인 죽음의 '테르시오 데 무에르테'가
펼쳐진다. 즉, 투우사는 그의 칼과 작은 적색 케이프를 들고 심판석
앞으로 가 황소를 죽일 수 있는 정식허가를 요청한다. 그리고 주인공
투우사는 15 분 가량의 짧은 시간에 달려드는 황소를 찔러 죽이는 ,
이 이식의 가장 위험하고 극적인 행위를 수행한다. 이때 투우사는
'케이프'를 '파스'하는 그의 우아하고 용기있는 기술로 관객을
열광시킨다. 서서히 무너져 내리며 죽음을 맞는 황소! 이것이 곧
이 투우 의식의 절정을 이룬다. 그 순간 스페인의 투우에 매혹되었던
작가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에 묘사한 노인 어부와 거대한 청새치의
사투 장면을 연상한다.
한편 투우와 플라멩코는 언뜻 보기에 서로 무관한 별개의 것으로
보이지만 이 둘은, 가까이 들여다보면, 서로 놀랄만큼 밀접한
사이 임을 알게된다.예컨대, 플라멩코 연구가 Gwynne Edwards에
의하면,영화 카르멘(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의 마지막 장면에서
등장인물 안토니오( 비제의 오페라의 주인공인 돈 호세)가 카르멘을
찌를 때 그 칼은 투우사를 연상케하고, 카르멘이 죽어 누운 모래빛의
무대 바닥은 투우장을 연상케 한다고 하였다.
실제로 여러 점에서 플라멩코카 이런 저런 점에서 실제로 투우와
연결되어 있다. 두 경우 다 주로 집시족들이 주로 행한 생업이었던
것이다. 집시 출신의 플라멩코 소리꾼 아우렐리우스 셀르즈는
이에 앞서 투우 견습생(노비예르)이었다.플라멩코 춤꾼 후안 센체스
발렌시아는 춤추기 전 투우에 전념했었던 인물로 그의 춤 동작은
투우장에서 보여주는 투우사의 우아한 몸짓을 연상케 한다
'연작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정증보플라이야기 1-10-1 (0) | 2014.09.13 |
---|---|
개정증보플라이야기 1-9-2 (0) | 2014.09.13 |
개정증보플라이야기 1-8-2 (0) | 2014.09.12 |
개정증보플라이야기 1-8-1 (0) | 2014.09.12 |
개정증보플라이야기 1-7-2 (0) | 2014.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