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노래와 순수한 춤
2.
cante(플라멩코 노래)를 말할 것 같으면. 이는 플라멩코의 중심을
점한다. 스페인 사람들 중 대부분의 플라멩코 열성팬들에게는
칸테가 춤과 기타연주에 비해 우선적인 표현방식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이 말은 비 스페인계 팬들에게는 해당되지않는다, 왜냐하면
이 애호가들은 보편적으로 칸테 보다 춤과 기타연주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때문이다. 인문도 이에 공감했었다. 칸테의 원래의 그
낯선 소리 스타일에다 그 싯적 가사는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칸테 플라멩코를 충분히 느끼기 위해서는, 홍어회의 맛에 혀가
점점 중독성의 반응을 보이듯이 귀가 그 소리맛에 점점 취해야 한다.
그 노래가 불리어지는 그 독특한 스타일을 즐기는 것이 그 노래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이를테면, 가사내용을
알아들아듣기보다 ,그 소리의 독특한 박자(콤파스), 소리꾼의 얼굴의
일그러진 표정, 팔마레나(박수로 박자를 맞추는 자)와 청중들의 탄성-
ole!(올레), 그리고 마침내 그 한 마당은 신흥종교의 집회에서의
통성 기도를 연상케 하는 그 듀엔데의 열광, 흐느낌, 탄식의 열기로
채워질 때의 그 독특한 소리의 맛에 중독되어야 한다.
이런 플라멩코의 소리마당을 그들은 juerga(후에르가)라 하고 ,그
모임에서 구성원들-소리꾼들, 춤꾼들 그리고 그들의 친구나 혈족 등-
모두가 온 몸으로 나타내는 반 이성적 열광의 상태 duende(듀엔데)라고
한다. 이 듀엔데를 D. E Pohren은 다음과 표현하였다.
...the duende is the expression of one's soul, its misery, and suffering,
love and hate, offered without embarrassment or resentment. It is
a cry of despair, a release of tortured emotions, to be found i ts
profundity in real life situations, not in the make-believe world of
theatres and night club and commercial caves.
can be bought and
플라멩코와 투우를 열렬히 사랑한 스페인의 시인 가르시아
페데리코 로르카 듀엔데를 아래와 같이 그의 특별한 감성의 시어로
표현하였다:
스페인 남부지역의 위대한 예술가나 플라멩코 예인들은 그들이
노래를 할 때나 춤을 출 때나 기타를 칠 때 듀엔데가 내리지않고는
아무런 감흥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검은 고통의 소리를
갖고있는 나라만이 듀엔데를 갖고있다......듀엔데는 그리스의
비극에서, 세익스피어의 비극에서 주인공들을 숙명적으로 죽음으로
끌어갔던 것과 같은 안달루시아 대지의 미술적인 힘이다......인간에게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분노와 쓰라림, 통곡을 아는 민족에게만 있다.
(*가르시아 로르카, 안영옥 역서 p 44)
인문이 플라멩코에 빠져든 이래 그 특별한 소리마당 juerga나
그 마당에서 일어나는 소집단적 절규의 몸부림을 직접 체험한
경우에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이른바 '검은 고통'이라는
표현을 몸으로 이해한다. 이 <플라멩코 이야기>가 시작된 첫 머리에
인용된 장 그러니에의 그 한 마디 외침-아이! 아이!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대변한 말이라고 때때로 여긴 적이 있었던 터라
, 그에게는,'검은 고통'은 장그러니에의 말- 그 어떤 것도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말도 행동도 이미지도 꿈도......-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미국인 댄서 라우와의 첫 만남을 계기로 인문에게는 상당한 기간 동안
안달루시아의 집시 댄서가 아닌, 그녀의 춤이 곧 플라멩코 춤이었다.
그녀의 긴 팔이 그려내는 아치형의 동작, 우아한 허리의 동선,
강한 탄력성의 자파테아토(발동작), 당당한 시선 등, 그녀의 이 모든
춤동작이 곧 플라멩코 춤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믿게되었을 정도
였엇다. 그녀의 춤을 통해 플라멩코를 느끼게 되었고, 그녀로 하여
'플라멩코는 , 바다보다 넓고 우물보다 깊은, 플라멩코는 첫 흐느낌과
첫 키스로부터 나온다'는 말에 가슴 뜨겁게 매료되었던 인문이었다.
'플라멩코는 천사나 목사의 도움없이 하늘에 이르는 통로이다'는
누군가의 이 말에는 강한 중독성을 느끼기까지 했었다.
인문에게 처음 한 동안 플라멩코 춤 그 자체였던 라우가 이제는
그의 의식에서도 멀어져 아련하다. 그녀로부터 소식이 끊긴지
벌써 몇 년이나 흘렀다. 풍문에 의하면, 사십중반에 들어선 그녀가
이제는 더 이상 춤추지않는다고도 하고.....
아래는 지금으로부터 수년전인 2001년 가을 어느 날 인문이
그녀에게 보낸 이메일이다:
Dear Lau.
부에노스 디아스!
라우의 이메일 반갑게 읽고있습니다.
숨이 멎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놓이기도 합니다.
그렇잖아도 다니엘라로부터 라우가 감기로 몸져 누워있다는
말을 전해듣고 걱정하던 중이었으니까요.
내일까지만 쉬면 나을 수 있을 거라니
저으기 안심이 됩니다.
그래도 머리가 아직은 무겁고 미열이라구요?
회복기의 몸을 특히, 그 귀한 두 팔을 더욱 아끼십시오.
-바일라오라의 두 팔의 동작은 너무나 중용하다.
두 팔은 땅에 서 있는 자신의 몸을 필사사적으로
하늘 위로 솟구치게 하는 양날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연히 이런 글귀를 읽었습니다.
아디오스,
인문
(* 필자의 <여행 그리고 깊은 노래> p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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