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2019 10월 0일
디어 인우!
지금 집에서 오레곤 위클리 지의 그 기사를 다시 읽고 있습니다. 이 주간지에는, 이 곳 펄 예술축제에 맞춰 쓴 문화행사 기사들이 많아 로버트가 쓴 글은 다른 기사들의 뒤편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뉴스벨류가 상대적으로 낮아진 탓이겟지요. 나의 이미지도 특별히 눈에 띄는 크기는 아닙니다.
로버트의 시각이 독특하네요 거리의 플라멩코가 춤을 추기위해 일어나기 전 간이의자에 앉아 묵상하는 이미지를 실었습니다. 종교적 분위기가 연상되는 이미지입니다. 아래에 그의 기사의 제목과 그 내용의 요약입니다::
- 순례자처럼 거리의 춤꾼으로 나선 바이라올라-
그녀는 길거리에서 맴발로 펼치는 깊은 춤을 통해 자기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녀는 춤을 통해 자신을 비우고 다시 자신을 되찾게 되기를 원한다.
그녀 앞에 선 관객들은 그녀의 깊은 춤에는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나게 하는 무엇인가를
느낀다. 순수함과 단순성의 춤, 그러나 깊은 울림이 있다.
그의 기사의 한 대목이 내 시선을 붙듭니다. 기자는 거리의 댄서를 먼길 떠나는 순례자로 비유하고있습니다.이 주간지가 이틀전 발간 배포되었는데, 이 기사를 본 몇 몇 지인들이 따뜻한 전화를 보내주었읍니다, 아마도 이로 인해 내게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날 것 같습니다.플라멩코애 매료되어 뒤늦게 플라멩코기타를 치게된 재즈- 롴 기타리스트 잭(Jack)이 다음 격주에는 자신이 나의 반주자로 거리에 나서고 싶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기타반주자도 없고 팔마스도 없는 거리의 춤은 너무 초라하다r고했습니다. 플라멩코 춤은 무엇보다고 기품있고 당당해야하는 데 좀 안쓰럽다는 것입니다. 나로서는 대환영이지요. 그렇게 해주면 더 없이 고마운 일이기에 내일 그와 광장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그가 반주자로 나서면 솔레아 춤으로 표현되는 '아리랑'을 원곡 그대로를 기타로 그 멜로디를 춤도입부에 넣는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할 것입니다. 그 서정성이 더 잘 드러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한 일본인 플라멩코 연습생- 얼마 전에 이 곳을 떠난 미추이 선생의 제자-가 자신이 팔마스로 나서면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했고요. 이제 세사람이 한 팀이 될 것이니 나의 거리 공연이 제법 구색을 갖추게 되겠지요. 포틀란드의 긴 우기의 계절처럼 오랜 시간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게 모처럼 환한 햇살과 맑고 신선한 대기를 맛보는 기분입니다. 내게 생기를 불어넣는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군요.
나는 지금 초라한 거리의 댄서입니다. 그 어떤 무엇도 아닙니다. 이 고행의 순례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나도 모릅니다. 이것은 나를 시험하는 엄청난 도전입니다.
또 연락하겠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기를!
아브라죠스!
헬레나
2019, 10월 0일
하이, 엘레나
모처럼 기분 좋은 소식입니다. 잭의 제안과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엘레나가 거리에서
혼자 맨발로 춤춘다는 것은 내게는 쇼크였습니다.정말 예상밖의 사건입니다. 플라멩코 춤은
애통의 몸짓이나 어떠한 경우에도 초라하지않습니다.기품있는 아름다움을 당당히 표현하는 자세가 기본이지 않습니까? 포틀란드의 화창한 밝은 오후의 토요일 분위기와는 대조적인 엘레나의 이미지는 고독하고 쓸쓸합니다.그렇지만 엘레나가 선택한 이 낮은 곳으로 향하는 몸짓에는 내면에 숨겨진 어떤 고귀함을 발견한 순간의 깨달음 같은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보들레르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존재 중에는 시간과 공간이 더욱 넓어지고 존재감이 무한하게 확대되는 순간이 있다"라고.
.지금 이 회신을 쓰는 중에 유럽의 한 클라식 가수가 떠오릅니다. 그 가수는 스페인인가 어딘가의 한 거리에서 벨 칸토의 목소리로 'you raise me up'를 불렀던 가수입니다. 어린 꼬마 둘이 그의 앞에 놓은 모자에 동전을 넣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를 바라보는 다수의 괜객들이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은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두 아이에게 감사의 목례를 하는 그 겸손한 가수는 누구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위엄과 기품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유튜브에서 그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전에 나는 그라나다의 거리에서 맨발로 춤추는 플라멩코 댄서를 묘사한 구스타브 도레의 판화 한 편을 본 적이 있습니다. 18세기 스페인 안달루시아 집시여인의 전형적인 이미지 말입니다.
먹구름이 그 곳 하늘을 뒤덮는 우기의 계절에도 엘레나의 거리의 춤이 이어질찌??
내게는 그게 궁금합니다. 엘레나가 처음 들은 그 '내면의 소리'에 충실한 사도의 길을 변함없이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고, 그 땐 어떤 새로운 명분이 생겨 다른 , 좀은 세속적인 안락함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요. 포틀란드의 기후처럼 넘치는 빛과 깊은 그늘이 엘레나의 내면에 있을 터이니. 하여간 우기에도 춤을 이어가게 된다면 그 땐 거리 대신에, 그 곳 다운타운의 한편에 숲에 가려진채 서 있는 성프란스시코 호텔의 로비에서 춤을 추시기를! (20년 전의 그 호텔이 여젼히
남아 있다면)
'성 프란시스코는 고행을 하기위해 장미나무위에 몸을 눞히고.....'.
이탈리아의 아씨시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1202년 신을 섬기기로 결심하고
빈곤속에서도 복음증명을 위해 노력했던 그는 이탈리아 수도회의 창시자입니다. 그 호텔은 그 성자의 이름을 따 지어진 호텔로, 나이들어 오갈 데 없는 가난한 은퇴자들을 위한 집입니다. 지난 날 내가 포틀란드에 한 달 이상 머물 때 그 곳에서 어울리던 홈리스 들 중에 청소부로 일하던 한 필리핀 이민자가 이곳에서 청부로 일하여였습니다. 그는 이 곳을 은거지로 삼아 청소일을 하였습니다. 이 곳의 휴게실은 넓고 고즈녁합니다. 커피 맛은 유난히 쓰고요. 그렇지만 한가지 이 곳 휴게실은 자페테아토 하기에 적합할 것입니다.바닥이 나무판자이니까요.바깥에 축축한 드리즐이 주적 주적 내리는 날이면 이곳 외로운 노인네들이 엘레나의 춤은 .그들에게 뜻밖의 귀한 선물이 될 것이다.
10월 0일, 2019
디어 인우,
거리의 댄서인 나를 보고 한 남자는 먼 길 나선 순례자의 고행이라고 표현하고,또 하나의 남자는 고독하고 쓸쓸하다고 말합니다.
두 분도 좀 수선스럽지 않아요?!
난 그저 단순히 할만한 일을 하고있을 뿐인데요 춤은 추어야겠고, 지금은 다시 무대에 오를 나이는 지냈고. 해서 혼자로나마 이 광장 모퉁이로 나와 노천을 춤추는 장소로 선택하였을 뿐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이런 마음을 먹은 건, 인우의 메일에 담긴 그 세가지 소망 이야기를 눈물 닦으며 읽을 때 였습니다. 좌절의 기간 때때로 자신의 존재를 직시하고싶은 명상에 몰입하던 시점이었습니다. 엘레나가 춤추는 것이 인우에게 남은 세번째 소망이라니!!
인우가 털어놓은 그 세번째 속마음은, 전혀 뜻밖의 그 소망은, 내게는 하나의 깨달음의 파문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아픔의 채찍이자 값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가 오래동안 댄서로 살아왔던 그대로 댄서로 살다 죽는다면 이보더 더 값진 일이 어디있겠는가.내게 나를 위하고 또 남을 위할 수 있는 잘하는 것이 춤이외에 소중한 다른 무엇이 있습니까? 춤추며 늙어가고 그리고 춤추다 죽어가라는 그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플라멩코 춤은, 인우도 알겠지만, 원래 자신과의 대화이지 관객의 눈을 위한 게 아니니까요.
춤을 통해 내 스스로에게 충실해줄 수 있기도 하고.
그 프란시스코 호텔에 관해 지금 머리쓰기엔 그건 너무 멀리 있습니다.
인우의 그 마지막 소망을 간직하며,
엘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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