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9월 0일, 2018
하이, 로버트!
귀하의 서면 인테뷰 요청에 대한 나의 회신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어제 엘레나와 이메일 소통을 했습니다.
그녀는 로버트를 신뢰한다며 그 요청에 호의적이었습니다.
이에 나의 마음을 소박하게 틀어놓고자 합니다..
로버트의 개별적인 질문 사항들에 대해 따로 따로 대답하기에 앞서,
플라멩코와 엘레나에 대한 내 마음을 하나로 묶어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개별적인 사항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입니다..
엘레나의 대한 나의 마음은 일종의 의리같은 것입니다. 2001년 그를 처음 만난 이래 지금까지 플라멩코 댄서로서의 그녀와 각별히 가까운 사이로 지내오면서 늘 그녀를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녀는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유명해지면서 세인들의 이목을 끄는 촉망받는 내일의 댄서가 되리라 믿었습니다. 내게는 당연히 그렇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소중히 여기는 나의 마음은 각별했습니다.
플라멩코와 엘레나를 처음 알게된 도시, 포틀란드에 관한 소식이라면, 멀리서라도 내 이웃의 일처럼 관심을 모두어 살펴봅니다. 그 곳에 관한 좋은 소식은 내게도 기분을 좋게해줍니다.
플라멩코는 ,악보 읽을 줄도 모르고 기타를 만져보지않았던 내게 그 이국적인 음악적 요소나 시각적 아름다움은 가슴벅차게 하는 세계였습니다. 그 소리나 시각적 율동은 나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이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기타 소리의 물결은 말할 것도 없고요.
처음 내게는 엘레나의 춤이 플라멩코의 전부였습니다. 그녀의 몸짓 율동이라면 그게 곧 플라멩코 춤이이었습니다. 처음 그렇게 나를 홀린 그 둘은 20 가까운 시간이 흘렀으나 여전히 매혹적인 존재로 남아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 둘에 대해 ,그리고 포트란드에 대해 나는 일종의 의리심으로 대합니다.
포틀란드와 플라멩코, 그녀의 그녀의 일이라면 나의 일처럼 소중하게 아낍니다. 특히 그녀가 유명인으로 세인들의 주목을 받으면 얼마나 더 자랑스러울까, 그리고 나 저신도 이로 인해 더 행복해지리라 그렇게 희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꿈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무대위에서의 그 눈부신 모습을 더 이상 고대할 수 없어서입니다. 그녀는 춤을 멀리하는 삶을 살고있기에 그리고 더 나아가 꿈을 잃은 자로서 방ㅇ황하고 정신적 고통에 빠저들고있기에 그러하였습니다. 춤이 자신의 삶의 전부라는 마음을 털어버리고자 애쓰는 것 같아서 입니다. 지금은 나는 그녀가 세상에서 이름난 댄서로 성공하는 모습을 본다면 더 없이 행복하겠지만 그렇치 못하더라도 춤은 버리지 않기를 속으로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의리 같은 것입니다.
이제 로버트의 물음들을 아래에 차례 차례 대답하겠습니다.
1) 엘레나가 다시 춤추게 된 계기와 관련하여:
-춤을 자신의 삶 자체임을 늘 속으로 의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에게는 춤이 전부이며, 이를 위해 아이조차 갖지않을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아이를 갖고싶어 과테말라에서 한 여자아이를 입양하려고 애썼던 적이 있었다, 그 노력은 결국은 허사로 끝났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귀한 것들- 남편, 입양녀, 그리고 소중한 인간 관계 등-을 잃었다. 남편과는 이혼으로 가정이 파탄나고, 가슴 벅차오르는 기쁨으로 품에 안아 보았던 그 귀여운 양녀는 자신의 부모에게로 되돌아가고, 친구들 지인들과의 우정어린 관계도 소원해지고.
그 시점에 자신의 불행과 고통을 잊기 위해서는 춤의 길 아니고서는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 게 아닌가 여겨진다. 얼마전 그녀에게 내가 메일로 나의 소망 한가지- 춤추는 엘레나를 보고싶다-를 고백한 일이 있었다. 그 메일을 보낸 시점이 그녀가 그런 의식하기 시작한 때가 아니었을까 ? 그렇게 여겨진다.
그리고 이에 앞서 스페인의 전설적인 댄서 후아나 라 마카로나(Juana Vaargas La Marcarrona)의 이야길를 들려주었던 적도 있었다.마카로나가 댄서로서 전성기를 누린 것은 그녀의 나이 60세 때였으며, 90에서도 현역으로 무대에 올랐던 댄서였었다.
2) 어찌하여 그녀는 무대가 아니라 거리에서 추게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나도 궁금하다.어찌하여 그런 결심을 하게되었을까? 그건 참 아름다운 결정으로 여겨진다만, 좀은 슬프기도 하다.
내가 만약 기타를 칠줄 안다면, 모르긴해도 , 거리의 악사로 나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행 길에 거리의 악사, 이를테면, 기타리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날 때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마드리드의 팔라도 미술관 곁에서 바흐를 연주하는 악사의 그 당당함에 가 다음 날에도 그 그를 찾아가 한참이나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헤레스의 기타리스트 한 사람은 자신의 그 천적에 대해 너무 행복해 하였습니다. 나는 속으로 마산으로 초청하고싶었습니다.
엘레나의 경우, 무대가 아닌 거리에서 춤을 출 때 자파테아토가 문제가 됩니다. 탄력성이 없는 맨 땅에서의 강한 발 굴음은 무릅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2001년의 Portland Tribune지에 실린 기사에, 한국인 여행객 인우는 플라멩코에 매혹된 작가로 소개되어있던데 , 지금도 글을 쓰고있다면 어떤 주제의 글을 쓰는가?
- 한국의 소도시 마산의 구도심인 창동에 살면서 이곳 화가들이 모델이 된 허구의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문예소설을 주로 그려왔었다.15년전 2004년부터 '창동인블루'라는 제목아래 시작된 문예적 소설책을 시리즈로 출간 하였다. 최근에는 '창동인블루7'까지 이어졌다. 소설화된 화가와 그림에 대한 이야기이다.
만약 내가 포틀란드에 살고있다면 그 곳 도심의 파이오니어 스퀘어를 중심으로 파워웰 서점, 중앙도서관 그리고 펄 지역을 무대로 한 소설을 쓰고 있을을 것이다. 나는 지난 날 그 곳에 머무는 동안 티없이 푸른 하늘을 이고있는 그 도심을 배회하는 거리의 홈리스 음악인들의 삶에 숨겨진내밀한 이야기들에 관심이 많았다.
요즘은 한 Bailaora와 플라멩코와 관련된 소설을 쓰고있다. 아마 제목으로는 '포틀란드의 바일라오라'가 될 것이다. 이 글이 완성되는 데에 한 1년쯤 걸릴 것이다. 글 속의 바일라오라의 매혹적인 아름다움, 비운의 삶과 고통의 죄절 등이 역시 글 속의 한 한국인 작가의 시선에 담겨 그려질 것이다. 무대로는 포틀란드의 파이오니어 광장과 이 곳 마산의 구 도심 창동이다.
4) 플라멩코의 세가지 요소, 춤, 노래, 그리고 기타곡과 관련하여,
-18년 전 포틀란드의 펠 구역의 9월예술축제 기간에 우연히 플라멩코 악단의 공연을 본 것이 내가 플라멩코와의 첫 만남이었다. 한낮 가설 옥외무대에서 남자들이 부르는 특이한 노래 소리에 호기심이 동하였다. 그 쉰 목소리가 한국의 판소리를 연상케 하였다.
댄서 엘레나를 처음 만난 건 그녀가 그 곳 돌로레스 위닝스타트 (Dolores Winningstad Theartre)극장에서 펼칠 플라멩코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포트란드 대학에 다니는 한 독일인 유학생의 안내로 그녀의 스튜디오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 때 나는 대화 중에 한국의 팝송 아침이슬과 아리랑을 소개했었고 그녀와 그녀 동료들이 아침이슬의 곡과 노래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게 된 것이 그녀와의 긴 인연의 시작이었다.
플라멩코를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처음엔 그 세가지 요소 중에 당연히 춤에 이끌릴 것이다. 그리고 이국적인 그 기타 멜로디의 물결에 차츰 매혹될 것이다. ㄱ렇지만 정작 플라멩코의 중독성은 그 거친 아필레 목소리의 무질서한 소리-절규에 있다. 처음엔 춤이 플라멩코의 전부로 인식될만큼 춤이 좋았으나, 차츰 그 목소리에 반하게 되었던 것이다. 기타의 물결치는 리듬은 말할 것도 없지만 마음을 벗어날 수 없게 완전히 홀리는 것은 그 소리였다.
5) '아침이슬'이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플라멩코 댄서의 춤으로 표현되었던데, 그 사연은?
- 그 부분은 이를 춤으로 표현한 엘레나가 답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이 한국의 노래를 플라멩코 공연의 프로그램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한 것은 그녀의 공단팀이었으니까.
참고로 '아침이슬' 리듬이나 멜로디는 지역적 특성이 강한 노래가 아니라 서방의 어느 곳에서라도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는 문화적 보편성을 띤 곡이다. 이 곡은 전혀 낫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이 그녀와 동료 칸타오라의 말이었다.
그리고 엘레나는 저항의 정신이 감도는 가사를 마음에 들어햇었다. 그래서 그 춤이 무대에서 스페인어로 재 번역되어 춤과 노래로 표현되었다.
이 답신이 귀하의 기대에 미칠런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아는 만큼은 충실히 답하려 했습니다. 또 귀하와의 이런 만남을 마음에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그라시아스!
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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