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플라멩코 이야기 2-1

jhkmsn 2014. 7. 29. 15:20

                플라멩코이야기 1

                      

                       그 어떤 것도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말도 행동도, 이미지도 꿈도......

                ​       하지만 때때로 하나의 외침소리가 우리를

                        해방시켜 준다.

​                                           -장 그러니에-

​                                   

                   

                         제 1장  플라멩코 칸테

                             ​(2014.6.23)

                          1.​

플라멩코를 처음 듣거나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네가지 기본요소 인

춤, 칸테(노래), 기타연주 그리고 콤파스( 리듬)중 , 칸테에는 마음과 귀가

오래동안 순응치 못할 것이다. 순치되지않는 야성에 거부감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이에겐 마치  잘 삭힌 서남해안의 가오리 요리에 처음

접할 때 그 역한 냄새에 코를 움켜지듯, 그 소리가 귀에 거슬릴 것이다. 

음악적 화음이나 멜로디와는 관련없이 그냥 터져나오는 어떤 울부짖음으로

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인문에게도 마찬가지로  꽤난 오래동안은 그러하였다. 맨 처음 미국땅에서

우연히 들은  그 소리는  여전히 기억에 생생하다. 노래라고 하면

일정한 패턴으로 순치된 소리로 화음과 멜로디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비음악적  아우성은 대중 앞에 노래부르는 자의 가다듬은 표정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애통하는 자의 일그러진 표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질서한 불협화음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인문이 처음 만난

그 거친 소리에 호기심이 동한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건 아마도 그의

심리적 요인 탓이었을 것이다. 그 땐 북미 대륙을 혼자 베낭 메고

그의 표현에서 처럼 여기 저기 떠돌 때였가.

4개월 내내

사막의 수도사처럼

단순한 마음으로

때로는 열망으로

때로는 두려움으로

밤과 낮을 만났다.

( 필자의 저서 '깊은 노래' 중에서)

그 이후 그가 듣고 보게된 플라멩코는 거의 기타선율과  춤이었고

그 목소리엔 꽤나 오래동안  동화될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국으로,

그리고 스페인의 안달루시아로 플라멩코 만을 듣고보려고 혼자

여행길에 나섰을 때에도 그 거친 목소리를 듣고싶어하였던

경우는 드물었다. 여기서 드물었단 만을 그때쯤에는 그 목소리

중에 음악적 리듬성이 강한 알레그리아스 노래에는 친숙해졌다는

뜻이다.안달루시아에서는  밤이면 타불로 혹은 플라멩코 주점에

들어서면 그 노래는 기타선율과 플라멩코 춤과 잘 어울리며

인문을 매혹시켯다.

바일라오르, 즉 남자무용수는 몸을 수직으로

곧추 세우고 약간 뒤로 젖힌 두 팔로 굵은  곡선을 그리는

동작을 이어간다.춤 동작에서 심신을 집중하는 곳은  다리

부분이다.​ 그의 힘찬 자파테아토(발동작)는 신들린듯 민첩하며

이 동작의 전체적인 효과는 남성적 위엄과 국건함과 그리고

춤 그 자체의 열정을 드러내는데 있다.​ 바일라오라, 즉

여성무용수의 경우, 남성과는 달리 상체, 두 팔과 손목의 율동적인

움직임에 그 중요성을 둔다. 팔을 위로 올려 우아한 아라베스크적

곡선을​ 만들고 손으로 끊임없이 원의 형태를 이룬다.

상체는 허리를 중심으로 약간 뒤로 젖혀 아치를 이루고 둔부는

유혹적으로 그러나​ 과장되지 않게 움직인다. 무엇보다도 얼굴 표현은

 매우 진지하고 표현주의적이다. 플라멩코의 깊은 춤의 하나인

시규리어는 집시들의 달랠 길 없는 고통의​ 표현이었다.

그의 스페인 여행길에선 그라나다 세크라멘토 지역의 집시동굴

근처에서 들리는  여인의 깊은 노래와 그라나다의 도심속 인적 드문

골목길가에 플라멩코 pena에서 펼쳐지는 바일라오라 후아나의

솔레아 춤이 그를 매혹시켰었다. 

 

아래의 글은 인문이 플라멩코에 홀려  나선 스페인 여행길에

혼자 중얼거렸던 독백의 한 구절이다:

 

그라나다에

큰 달이 오르는 밤이면

알바이신 언덕에 올라

아라비아산 진한 허브향과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와

플라멩코 콤파스에

취한 눈으로

황토빛 전설의

알람브라와 마주하자.

집시마을​의,

노새 나귀들이 터놓은 좁은 골목길 마다

세리주 향이

나그네의 마음을 붙든다는

헤레스(Jerez)에서는

칸테 혼도의 그 깊은 맛은

세리주 잔에 담아 마시고.

그리고

빛의 도시 카디스에 이르러

이 침침한 육신의 눈을

해안의 순수한 ​바다빛으로

씻으리라.

마드리드는

팔라도 미술관의 그림보다

발라스케스의 동상보다

그 아래 앉은 거리의 기타리스로 인해

이 도시가 당신에게 더 오래

기억되리라는 현지인의 귀뜸을

마음에 담아둔다.

바로셀로나는 단념하자.

모내는 이태리 여행길에

플로렌스도 나포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각적 상상과 하나의 열망 그리고 회상이

지리적 장소보다 더 중요하다는

모네를 따르자.

플라멩코의 춤과 노래와 기타선율에만 느끼자.

​(필자의 플라멩코 이야기 중에서)

인문은 지금 플라멩코의  시각적인 춤 동작보다 그 비음악적

흐느낌과 아우성의 노래소리에 더 끌리고있다.​ 캄캄한 밤 하늘에서

진주알 같은 별들이 반짝이며  쏟아져 내리는 듯, 한 순간의 침묵의 

절벽아래에서 돌연히 출렁이며 솟아오르는 파도가 되는 듯한

기타선율 사이 사이로 터져나오는 그 거친 소리는  집 서재에 칩거해

있는 무력한 노인의 침체된 마음을  출렁이게 한다.  그 노래 말은

여전히 알길이 없다. 그리고 모른다고 해서 전혀 문제될 것도 없다.

어느 누구도, 심지어 스페인어를  배운 외국인이라도 그 집시들의 

토속적인 언어의 의미를 제대로 맛볼 없으리라.

혼자 바라보는 모니터의 화면위의, 노래하는 자의 그 거친 호흡과  ​

꾸밈없는 얼굴 표정, 그리고  친구 동료들이 모인 패쇄된 공간의

하얀 포도주 잔,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등을 통해 인문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 벅차오름을 맛보며 푸석거리는 삶의 덧없음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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