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이 책 속에 담긴 일련의 상징들은 삶의 에피소드, 무대장치,
오락... 따위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남은 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보이고 있다
-장 그러니에-
1.
18세기 조선의 화가 정선이 그린 <삼부연> 산수화에는 3개의 못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 온다. 그렇지만 사진에 담긴 실제 삼부연 폭포에는
이 3개의 못이 한 눈에 쉽게 들어 오지않는다. 이 삼부연 폭포는
강원도 철원에 있는 폭포로, 겸재 정선은 이 삼부연의 실제 대상을
화선지에 똑같이 옮겨 그리기보다는 그 대상의 특성을 부각하여
회화적 아름다움의 산수경관을 그려내었다. 그림은 그림 그 자체로
존재하는 데 그 의미가 있는것이지 실제 대상을 그대로 닮게 보여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글 < 미인도 화가 교당 김대환> 역시
그러하다. 실제 인물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듯 나타기보다 그의 인상과
내면적 특성에 촛점을 맞추어 쓴 글이기 때문이다. 정선의 진경산수화
'삼부연'이 객관적인 묘사의 그림이라기보다 화가의 마음이 반쯤이나
담긴 半眞景 半寫意의 그림이듯 ,이 교당 이야기 역시 사실주의적 묘사의
선을 넘어, 한 화가의 내면세계가 필자 개인의 문학적 시선을 통해 표현된
글이다.
2.
미인도와 포대화상도의 화가로 잘 알려진 교당 김대환은 맑고 밝은
심성을 가졌다. 팔순의 중반을 넘긴 예인으로, 노인티 나지않은
외모에 발걸음이 빨라 나이를 초월한 듯하다. 소년같은 천진스런
미소가 하얀 이 사이로 쉼없이 번져나오는온다. 그림전전시회에서
만나는 화우들과 꾸밈없는 친화력으로 기분좋은 어울림을 나눈다.
필자는 그의 손에 특히 호기심이 동한다. 한번은 그의 서재에서
세필를 든 그의 손이 화선지위에서 탐미의 유희에 집중하는 사이
전통적인 치마 저고리 옷의 여인의 곱고 단정한 얼굴이 그 위에
피어나는 것을 지켜 보면서, 불현듯 세살 아이 때의 교당의 손을
머리에 떠올렸다. 화선지위의 그 손은 그가 서너살의 어린아이일 때,
누나들 곁에서 큰 누나의 그림그리기 흉내 내느라 크레옹과 연필로
벽과 방바닥에 어지럽게 그림낙서를 하였다던 바로 그 손이었다.
그 손은 나중 그가 나이 20살 무렵 6.25 전쟁시절 미군의 초상화를
그려 돈 버는 손이 되었고, 그 후에는 극장 간판 화가로, 전통 창극인
'햇님 달님'의 여주인공의 얼굴을 선녀같이 곱게 그린 광고그림으로
그 앞을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하였던 손이다. 그리고
필자로 하여금 어느 미국인 플라멩코 무희와 더불어 10여년 동안
미국과 한국에서 몇차례나 플라멩코 공연을 펼치게 한 희한한 인연의
끈이 되었던 그의 그림선물- 채색 미인도- 한 점을 그린 손이기도 하다.
교당의 그 손은 지금도 끊임없이 뭔가를 그려나간다.마음에 앞서
그 손은 스스로 판단하는 행위자로서 그림그리기에 몰입한다. 더구나 그
의 손은 그리는 재능만을 가진 것이 아니다. 그림애호가들의 마음을
감지하는 재주 또한 남다르다. 험한 세상을 살아나오는 동안 생존의
비법도 잘 터득한 듯하다. 이를테면, 자신의 어떤 그림을,
누가 좋아하는지를 그 손은 간파하는 재주가 있다. 이 지역의
시내 중심가의 식당, 또 기업체의 사무실에서 그의 미인도, 달마도,
영모화등이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는 게 이를 잘 말해준다.
필자가 교당에게 쏠리는 또 다른 관심은 그가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두 번의 삶의 전환점에 모아지고 있다. 20살의 청년기에 한쪽 눈이
실명에 이르게 된 시점에 일본에서 동양화가 목교당을 만난 게 그 하나의
전환점인 것이고, 나이 41세에 생애 첫 개인전을 연 것이 그 두번째의 전환점이다. 1967년에 그가 마산 미술협회회원으로 가진 그 첫 전시회를 전후하여 비로소 이른바, 전업 화가의 길로 들어선 것이 그것이다. 처음의 그 계기-한쪽 눈의 실명과 스승 목교당과의 만남-이 내면의어떤 운명적인 결심과 관련된 것이었다면 그 두번째의 계기- 1967년의 첫 개인전-는 그 첫번째 계기이후 20여년이 지날 즈음 그 처음의 마음의 다짐이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나게 된 싯점이었다.
그 첫 전환점은 당시 청년의 나이였던 교당이 스스로 화가의 길을
삶의 목표로 삼게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쪽 눈을 잃어 깊은
좌절감에 빠져 헤어나지못하던 상황에서 그 일본인 스승과의 만남을 통해
절망의 늪을 빠져나올 수 있는 희망의 통로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와의 만남은 청년 김대환에게는 드물게 얻은 행운이었다.
김대환 청년의 그런 꿈을 갖게 해준 다른 특별한 요소들도 있었겠지만
그것들은 그 만남에 비해 잔물결에 불과한 것으로서 그에게서 곧
잊혀지는 일들이었을 것이다. 그의 내면에는 오직 그 목교당과의
만남 만이 평생토록 살아 출렁이었던 것이다.
교당과 목교당과의 이 첫 만남은 프랑스의 작가 까뮈가 20살 무렵
그 작가의 스승, 장그리니에의 책 '섬'을 처음으로 읽었을때 받았다는
까뮈의 감동을 떠올리게 한다. 까뮈는 그 책과의 만남이 그로 하여금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한 특별한 요인중의 하나라고 회상한 바 있었다. 그는 그
책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말하고있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적절한 시기에 스스로의 마음을 경도하고 스승을 얻고,
그리하여 여러 작품들을 통하여 그 스승을 끊임없이 존경할 필요를 느꼇던
나 자신에게는 더 없이 좋은 행운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두번째의 전환점이었던 첫 전시회 개최는 앞선 경우보다
더 높은 분수령이었다. 그 분수령의 앞쪽은 극장간판그리기가
일상의 일었다면 그 다음쪽의 삶은 그 이래 40 여년간 이어온
오직 화가로서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일생에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는 것 같다. 그 순간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다른 수많은 순간들의 퇴적
속에 깊이 묻혀있다. 다른 순간들은 그 위로 헤아릴 수 없이
지나갔지만 스르르 자취를 감추었다. 결정적인 순간이 반드시
섬광처럼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 한 인간의 존재가 그 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눈에 띄지않고 점진적일 수도 있는 것 같다.
3.
이 글은 교당 김대환의 화가로서의 삶에 촛점을 맞추어 피력한
것일뿐 그에 대한 전기적 자료의서의 기록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의 가족관계의 세부사항이나 특별한 경력 사항 등은 구체적으로
피력하지 않았다. 이 글의 흐름은 목차가 보여주듯, '묵향의 교유'를
필두로 '회상의 개울', '학교밖에서 배운 화가' 등에 이어, 화가의 내면세계와
선별된 작품들이 그 뒤를 따르는 순서로 되어있다. 특별히, 그의 회상의
개울을 따라 펼쳐진 한 화가로서의 삶의 궤적 -유소년기,청년기 그리고
극장 간판인 시절, 그리고 두척마을의 10년-이 글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2014년 3월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