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플라멩코이야기 2-3

jhkmsn 2014. 8. 1. 14:47

flamenco cante   

 

             3

플라멩코 소리꾼 마리나 에레디아(​Marina Heredia)의 소리가 인문의 마음을

붙든다. 그가 스페인의 여행중 그리나다에서 해질무렵 알바이신 언덕으로

향하던 중 멀리서 들리는  어느 여인 소리꾼의 목소리, 그 의미는 알 수 없으나

이어졋다 끊어졋다 높았내 낮아졌다 하면서 길게 흐느끼듯 하던 그 쉰 목소리

,를 연상케 한다.

저 소리나는 데로 우선 가볼까.

무슨 소리가 저리도 애절할까?

 무슨 흐느낌 같기도 하고.

마치 서편제의 진양조 가락이나 

소리꾼의 구음 시나위를

들을 때의 느낌 같애.

인문은 혼자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 쪽 집시의 동굴 마을로 발길을 옮겼던

적이 있었다.

그라나다의 집시 소리꾼 마리나의  소리 중 솔레아 형식의 소리를 한 번

듣고싶어 그는 화면을 되돌린다. 그녀의 동영상은 마치 렘브란트의

그림이 동영상이 되어 눈 앞에서 물결치며 흐르는 것 같다 .흑백 화면의

검은 바탕에 움직이는 영상은 그녀의 얼굴, 햐얀 드레스, 긴 팔 ,

온 몸의 힘을 목에 집중시켜 소리를 토해낼 때의 얼굴 표정, 그리고

그녀의 소리를 이끄는 기타리스트의 손가락과  기타의 둥근 몸통 등 만이

그려진다. 기타반주자의 얼굴은 어둠에 묻혀 거의 보이지않는다. 탄식을

유도하는  하얀 명주실 같은 선율을 빚어내는 네댓개의 기타선이 어둠 밖으로

나타났다 다시 어둠속으로 뭍히곤 할 뿐이다. 그녀의 소리와 기타반주는 그렇게

빛과 그림자의 화면에서 번져 나온다. 움직이는 동선은 어둠에 눌려 그 밝음이

간신히 드러나 보인다. 

다른 소리꾼들에게서는 느낄수 없던 어떤 멜로디가  담긴 듯 한 마리나의

 소리이기에 인문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소리에 홀린다.그녀의 소리에

슈베르트 곡의 멜로디 같은 게 담겨있을리 없지만 어쨋거나 우리의

가곡이나 베토벤 곡과 같이 아름다운 멜로디의 선율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서양음악에 익숙한 인문의 귀이기에 그런가 보다.

어쩐지 그녀의 소리에 플라멩코 특유의 리음이나 음색이외에

잘 조절된 멜로디가 감지되는 듯하지 않는가.

플라멩코 소리라면 어쩐지 스님의 염불소리나 울음섞인 기도소리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그녀의 경우는 그것과는 좀 다르다.

그녀의 소리는 인문의 귀에는 막연하나마 ​흑인 재즈 가수 마리안

엔더슨의 깊은 울림의 성가나 또는 판소리의 서편제소리에 더 가깝게

여겨진다.  남성적 소리인 동편제에 비해 그 소리의 애절함이

좀 세련된 기교로 표현되는 이른바 서편제의 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마리나 에레디아의  소리엔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 마약성의 리듬이.... 미루어 짐작컨대, 저 소리라면, 

삶의 뼈저림이나 절절한 외로움과 절망을 맛본 자의 귀와 마음을

 홀리고도 남을 것이다. 저 소리라면 ,어느 누구와도 함게 나눌 수 없는

개인적인 슬픔을, 때로는 불행한 이웃에 대한 한없는 연민으로 잠

못드는  모든 이의 마음속으로 파고들 것이다.

 긴세월이 지난 어느 날 초로의 수영이 그의 동생 숙이와 함께

인문의 집을 방문한다. 밝고 편한한 모습이 너무 의외라 인문은

속으로 놀란 적이 있었다. 수영과  숙이, 두 형제의 얼굴들이 참 보기가

좋았어.  지나온 삶에 찌든  흔적이 역역한 우리네 얼굴보다 그들의 표정이

더 맑고 선하였어. 소년기의 그 두려ㅇ웠을 삶을 저 둘은 어떻게 저렇게

견디어 냈을까

아버지는  그 바다가 사라지기전 어느 해 그 바다에 휩쓸려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고, 어머니는 젖먹이 동생을 품에 안은채 영양실조로

 세상 떠나고...

형제 둘이  오직 그들끼리 의지한 채 먹고 잘 곳을 찾아 고아원에

들어가 소년기를 보낸 저들인데.

인문은 소년기를 보낼 때 그 둘의 아버지가 그 바다에서 큰 풍랑이 일던 날

고기잡이 나갔다 끝내 돌아오지않았던 일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가 갯가 초가집 마당의 양지에 힘없이 기대어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침속에서 세상을 떠나던 일도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 애틋한

마음으로 기억한다. 그둘의 어머니는 인문의 막내 이모였다.

그 때 집채만한 파도가 마을의 해안를 휩쓸엇던 적이 잇었다.

수용의 어머니는 어린 젖먹이 동생과 함께 죽었다

양 부모를 다 잃은 소년 수영은 동생과 둘이서 고아원에 들어가

살앗다. 인문은 그들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렇게도 불행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삶이 얼마나 뼈져리게 느껴졋을까?

인문의 마음에 살아있는 그 바다는 그런 사연도 안고 사라졌었고,

그리고 오랜 후 언제쯤부터 스페인의 시인  로르카의 한 구절-

플라멩코 is the way through which we can reach the heaven

without any help of ministers or angels- 이 그의 마음 한 모퉁이에

슬며시 들어와 자리잡고 있다.​  삶의 덧없음을 그 어떤 무엇으로도

대신하지못하는 그의 영혼 속으로​

 ​카마론은 그녀의 소리와는 좀 달라. 그의 소리는 그녀보다 더 야성적이고

어쩌면 원시적이기조차 해.  인문이 그의 소리를 듣기위해서는

파코 데 루시아의 기타 반주가 있어야 했어. 그의 소리에는 멜로디적 음색이

전혀 느겨지지않았으니까. 그의 소리에 마음이 끌릴 때는 멜로디가 느껴지는

알레그리아스일 때였더, 그러던 인문이 이제 여행길 나서는 일이 없는,

그래서 플라멩코 소리에 묻혀 애득한 회상에만 잠기기글 자주하는 이 시점에

카마론의 그 야성적인 아우성이 새롭게 마음을 이끈다.

카라콜은 그 거친 목소리에 어떤 달콤함이 깃들어 있지만 카마론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렘에도 파코 데 루시아는 그의 목소리를 더 없이

소중히​ 여긴다. 소리지를때도 담배를 피웠던 생전의 카마론을 그는

플라멩코의 전설이라고 여겼다.​

인문은 이제 카마론과 파코 데 루치아의의 공연을 화면위에 올려놓는다..

파고 데 루치아가 기타반주로 그 카마론의 소리를 이끈다.

의자에 안은 채  소리꾼은  손에서 담배를  내려놓고 소리를 토해낸다.

도대체 인문은 무엇으로 인해 스스로 불행감에 빠져들며

그렇게도 플라렝코의 깊은 노래에 매달리는 것인가?

예젖처럼 어디 낯선 곳으로 여행길이라도 떠나면 될텐데...

길을 나서면 먼 곳으로부터 어떤 설레이는 손짓이나 부름에 순응하며

가슴 설레임의 순군들을 맛보지않았던게ㅏ.

그런 그가 무력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저 깊은 노래만이 잠못 드는 그를 붙들어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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