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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젊은 마술사와 인문은 '마산을 그리다' 전시회장을 빠져 나와 저녁을 함께 나누고는 창동사거리 근처 황금당맞은 쪽에 있는 '향숲' 카페에 들어가 늦도록 대화를 나누었다. 인문은 이 젊은 이를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에게 귀를 기울인다. 책 속에서가 아니면 좀처럼 듣거나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이야기들, 특히 예술과 관련된 것들을 이 젊은이가 그에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근자에 이르러 인문의 관심사가 된 '근대예술과 전통예술의 차이'라거나 '회화의 아름다움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어떻게 다른가' 등등의 주제에 대해 이 마술사는 자신의 논리로 인문의 귀를 사로잡기 일쑤였다. 그의 논리적 주장은 인문 자신의 견해를 능가하는 것이기에 그 마술사는 더욱 더 소중한 인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 마술사는 모디니즘에 관한 인문의 사색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가 펼친 논리에 의하면, 자연주의적 예술은 현실의 충실의 묘사나 모방이라는 기본 전제를 근거로 예술양식에 하등의 본질적인 가치와 무관한 반면, 예술양식을 본질로 여기는 모더니즘적 사고는 예술을 창조하는 주체는 객관적 현실이라는 원료나 재료를 색채, 언어 또는 음조와 같은 예술적 요소를 이용해 원래의 자연과는 완전히 다른 창조물을 주조해 낸다는 것이다. 즉, 자연주의적 예술관은 동일한 내용이 다양한 방식으로 관찰되고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데카르트적 인식론을 들먹이며, 모더니즘적 예술은 주체가 객체로부터 어떻게 거리를 두느냐 또는 주체가 객체를 어떻게 추상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는 '양식이야 말로 진리를 소유하며 동시에 진리 그 자체라고 말하면서 이 모디니즘적 예술관은 곧 극복되어야할 자연주의적 예술의 대안이라고 하였다.
키다리 조군의 이 말에 인문은 그럼 팝예술의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으니 이 점은 나중에 이 사랑스러운 젊은이에게 다시 물어보기로 하였다. 두 사람은 이곳 향숲 카페의 한 모퉁이에 앉아 독일산 하이네켄 맥주를 마시며 긴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이날 '마산을 그리다' 그룹전에서 본 작품들을 위시하여, 지난 날의 창동의 화가들- 문신, 김주석, 최운, 현재호, 남정현, 허청륭 등-의 '마산 앞바다' 그림들은 말할 것도 없고, 현재 이 지역을 근거로 활동 중인 이강룡, 이용수, 박춘성 등이 그린 바다 풍경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었다. 평소에 차가운 맥주를 멀리하는 인문이었지만 이 자리에서는 키다리을 따라 하이네켄을 자신도 한 모금씩 마시기조차 하였다.
키다리 조군 : 인문님! 현재호의 그림은 여전히 좋은가 봅니다. 아까보니 데프로먀송된 배 한척이 그려진 그림 앞에서는 발걸음을 옮기질 못하던데요.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을 사로잡는지?! 생전의 그 화가가 그림 앞에 떠올라서인지?! 제가 느끼기엔 현재호는 초현실주의자입니다. 그림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언어적 표현에서도 보통사람들이 알아듣지못하는 중얼거림이 술만 들어가면 그의 입에서 술술 나와요. 전 그 화가의 아래 이 싯적 표현을 이제는 더 이상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 그냥 글 속의 이미지나 운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의 언어는 논리적 지적 체계를 늘 뛰어 넘습니다. 그가 취한 상태에서 종이에 끼적거린 어떤 싯귀들은 초현실주의적입니다. 환상적이기도 합니다.
인문: 현재호는 언어가 빈약한 화가로 알려졌었는대. 그 싯귀에 호기심이 가는데.
키다리: 술취한 자의 횡설수설한 말같지만 아주 매력적입니다. 마술사처럼 사람을 혼란케애요.입 한번 기억을 더듬에볼께요. 이렇습니다:
:....잠시 천지를 흔들어 먹구름과 소나기로 그리고 햇살로 나를 만들어
땅위의 모든 슬픔과 즐거움을 만나게 하였다.
하루도 쉴 수 없이 바다의 영혼과 더불어 우리는 진열되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고기와 함께 나를 팔아버렸다.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들기 위해 안개속으로 사라진다.
기약없는 날 구름과 바람으로 소나기를 빌어 다시 어머니는 나를 안고있다."
인문: 그게 무슨 의미이지?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의 그림만큼이나 황당한 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울림이 매력적인데. 달리의 믿끝도 옶는 환상적 그림은 지저분한데, 그의 말은 뭔가 의미를 내포하고있다는 느낌이야. 허경영의 공중부양같은 헛소리는 아닌것 같고.
키다리: 이건 정말 꿈속에서나 있을 법한 환상적 중얼거림이잖아요. 그런데 그의 이런 넉두리에는 아름다운 슬픔이 배어 있습니다. 그의 밑도 끝도 없는 비현실적 표현은 매우 시적이고 운율적입니다. 때로는 베르리오즈의 환상교향곡 중 춤곡의 선율이 느껴지기도 하구요. 그나 저나 그의 초현실주의적 그림은 무엇보다 아름답습니다. 말쑴하신대로, 달리의 초현실주의는 더럽게 느껴지지만, 현재호의 슬픔이 진한 낭만적 표현은 그림에 문외한일지라도 가슴을 뭉클하게하는 아름다움이 있지요.
인문: 이번 전시회에 조각가 문신의 회화 '마산항'이 들어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그가 사실주의적으로 그린 '마산항'은 세로로 길쭉한 작품인데, 마산 앞바다의 옛 모습을 사실적으로 잘 담고 있어요. 그 작품이 내게는 유소년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어키지. 그 작품의 왼쪽 한 모퉁이에서는 오래전 소년기에 내 코에 익한 갯벌의 들바람냄새가 묻어있는 듯 해서. 문신은 내게는 그런 화가로 더 잘 기억되는 걸.
키다리 조군: 화가 문신요? 그 조각가에게 그런 사실성의 회화도 있었군요. 전 그 분의 추상의 조각품을 생각하면, 산 언덕에서 앞바다와 마주하고 선 그의 추상작품이 떠올라요. 햇살 가득한 아침 바다가 인빛 반짝임의 스테인레스 조각품의 눈부신 표면에 안기듯 담기는 걸요.
인문: 그래!? 나도 언제가 문신미실관에서 바다를 내려보면서 그렇게 느껴진 적이 있었어요. 추상의 조각품과 바다풍경의 절묘한 마주바라봄이지.
키다리조군: 최운의 경우, 그 화가를 여지껏 마산 앞 바다의 '꽃게'만 그린, 묘사력이 좋은 사실주의자로만 여겨온 제가 이번 전시회를 통해 새로운 눈으로 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그의 작품에서 모더니스틱한 회화형식이 느껴졌습니다.게만 그린 게 아니라 모디니즘 분위기의 풍경도 있구요. 게다가 마티스가 연상되는 초상화도 있구요, 색채가 야수파적이었습니다.
인문: 그게 어떤 그림인데?
키다리: 아, 마산의 해안 풍경입니다. 무엇보다 화면이 온통 시원한 푸른 바다색인 그 풍경은 선이 굵고 아름답던데요.바다를 사이에 둔 건너편의 나즈막한 야산들에서 그의 회화 형식이 잘 느껴졌었요. 그 바다 풍경은 게를 그린 그의 묘사적 붓질과는 전혀 달리 모더니스즘의 초기 형식의 그림이던데. 바다를 둘러싼 산들의 어울림을 그려냈어요. 아마도 최운 화가는 문신의 미술관이 서 있는 그 언덕 쪽에서 눈에 들어오는 바다를 화폭에 담았을 걸로 여겨집니다. 그는 처음에 그 언덕에서 아래쪽을 내려다 보며 원근의 개념에 따라 그 풍경을 스케치를 했을 것 같아요.화면 아래에 담긴 바다보다 위쪽의 바다 건너편 산세가 오히려 강조되고 있었거든요.
인문: 그 화가를 생전에 만나보지 못했던 터라, 그 분의 성깔이 뾰죽뾰죽했다는 말만을 믿고 그가 그린 날카로운 꽃게에 대한 세밀한 묘사력과 화가의 기질은 닮았나보다 하고 여겨졌었는데 유려하고 거침없는 붓질로 그려진 마산항의 풍경은 나로 하여금 그 화가의 새로운 면을 느끼게 하였다네.
키다리 조군: 어쨋거나 마산항을 그린 지난 날의 화가들은 공통적으로 사실주의적 묘사보다 어떤 형식성을 추구한 모더니스티들이었습니다. 모두 넌프규러티브한 추상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허청륭 등과 함게 1980년대 창동의 중심화가였던 남정현은 non-figurative한 추상품을 하나 남겼습니다. 마산 상고에 그 추상화가 전에는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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