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창동인블루6-6-3

jhkmsn 2018. 5. 22. 09:06

부채꼴 바다.
그 작은 바다는 부채꼴 모양을 하고 있었다. 소년이 그 바다를 좀 더 멀리 볼 겸 그의 집의 기와지붕위에 걸터앉으면, 그 자리는 앞쪽으로는
  부채꼴의 그 작은 바다와, 그리고 고개를 뒤로 돌리면 마름모꼴의 구강동네가 한눈에 들어오는 중심점이 되었다.
지붕에 앉아 앞을 바라다 보면, 그 바다는, 왼편의 긴 바닷가 갈대숲과, 정면으로 보이는 먼 쓸물 가장자리가 긋는 흰 몰거품 선이 , 그리고 야산과 야산들 틈새로 빠져나와 넓은 바다와 이어지는 물의 길목이, 각각 하나의 끝점이 되어 이루는 부채꼴 형상이었다. 그 바다는 소년에게는 선명히 구별되는 은빛 퍼득임의 빛깔과 하늘위로 날아오르는 무수한 겨울 철새들의 날개짓 소리와 그리고 가을 흐린 날 오후의 비릿한 갯내가 있었다.
지붕에 앉아 몸을 돌리면, 이번에는 그 지붕을 시작점으로 하여 오른 편으로 그의 할아버지집의 키 큰 감나무가, 왼쪽으로 동네 서끝샘
  앞 포구나무 고목 한 그루가 , 그리고 그 사이로 화강감 건축물의 갈릴리 교회의 갈색 벽과 종탑이 제 각기 한 모서리가 되어 이루는 마름모꼴의  놀이터가 한 눈에 들아온다. 그 놀이 공간에는 아이들과 바둑이들이 뛰노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두막집 두목
렘브란트의 그림은 어슴푸레한 빛으로 이루어져있다. 그 빛은 회상의 빛이었다, 그의 소년기에 드나들었던 동네 방앗간의 높은 천창을 통해 바라본 바깥 늪지과 평원의 그 어슴푸레함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소년기에 내가 부모 몰래 숨어들었던 동네의 외딴 오두막집의 주인 명구아재는 얼굴이 주름져 있었고, 두 눈에 담긴 빛과 그림자가 선명했었다. 그 오두막의 방안은 한낮에도 어두컴컴하였다.
동네 건달들의 아지트인 그 오두막으로 소년은 아버지의 호주머니를 뒤져 뽑아낸 담배와 어머니 몰래 뒤주에서 퍼내 담은 쌀 봉지를 들고 고양이 발걸음으로 찾아들었었다. 소년이 그 오두막의 골방으로 기어들 때마다 그 곳에서는 노름판이 벌어지고 있었고, 명구아재는
  항상 빛이 내리는 작은 창문 곁에 앉아 있었다. 하루는 그는 화투짝을 눈에 바싹 대고 노름에 열중하면서도 연신 곁에 붙어 앉은 소년 쏙으로 고개를 들렸었다. 최근 동네에서 일어난 두 사건에 대해 소년이 여간 궁금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동네 타작 마당에서는 동네의 두 건달 맞수 간에 벌어진 한 판 주먹대결에서 누가 어떻게 이겼는지를 듣고 싶어하였고, 한겨울 눈내리는 동네 신작로서  그 노름판의 건달 들이 달리는 미 군용 트럭 위에 표범처럼 뛰어올라 군용품과 양담배상자를 빼내 길위로 내던진 다음 흠결없이 뛰어내려 달아났던 그 뒷이야기도 궁금했었다.
 
포도빛 망또의 무리들
지난 날 미산의 남서쪽 외곽의 한 산기슭에 은거해 있었던 포도빛 망또의 무리들에 관한 이야기다. 회상에 아른히 떠오르는 이 무리들은 여름 한 철을 제외하고는 늘 흰 마스크를 하고 그 포도빛 망또를 걸친다. 감기가 겁이나 대개 두터운 타울로 목을 감는다. 자칫 감기가 시작되면 그것은
  가슴의 뼈와 근육을 베는 듯한 통증으로 몰고오는 연속적인 기침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 은거지는 여름이 지났다 싶으면 이내 가을이 시작되고, 그건 그들에겐 곧 초겨울이다. 낮은 아래의 세상보다 해가 일찍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 곳 숲속의 낡은 일본 양식의 긴 목조 건물들의 바깥은 해만 지면 이내 어두워지나, 불이 밝혀지면서 그 건물의 복도는 한낮과는 달리 묘한 생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그 복도를 따라 이어진 병실들의 문이 가만히 열리며 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미는 이들의 눈이 반짝인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온기를 띤 복도의 불빛과 복도 끝 휴게실에 들리는 낮은 기타소리가 천정을 응시한 채 병상에 누워지내는 이들을 유혹한다.
 
 
바둑이
우리집 바둑이는 나의 아내와 노모를 두려워 한다두 여인네들 앞에서 멋모르고 설쳐대며 제 목소리를 낸 날은 자칫 두배 이상의 쓴 댓가를 받게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그는 자신의 권리( 그가 집에서 무슨 의미있는 의무를 잘 이행하기에 제 권리를 당당히 요구하는지는 나는 잘 모른다.)의 몫을 오로지 내게서, 그것도 주로 집안에 그와 나 둘만이 있을 때에 요구한다. 여름철 한낮의 햇빛이 따가우면 라일락 나무 밑 그늘 아래에 누워
  자신의 배를 긁어 달리는 의미로 내게로 시선을 형하며 뒷발을 뻗기도 하고, 또는 집 밖으로 나가 바깥 잡종 견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으면 앞발로 대문을 두들기거나 하여 문을 열라는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만약 내가  그 신호에 순순히 응하지 않으면  그는 대문에 붙어있는 이층 계단으로 오르내리며 바같쪽으로 향해 고함을 지르며 소란을 피운다. 어떤 경우, 곤히 잠든 그 덩치 큰 게으름뱅이를 발로 툭툭 (그렇지만 부드럽게) 차 깨우면 그만 화를 내며 마당을 돌며 분탕질을 한다. 그렇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 바둑이는 내가 집에 없을 때에는 전혀 그렇지 않는다. 아내와 노모의 눈치를 살펴가며, 어린 아들의 친구가 되어주기도 하거니와 집 지킴이 의무도 충실히 이행한다. 두 귀가 쫑긋 선 그 일년 생 철딱서니백구는 나의 시중을 당당히 받을 만큼 잘 생긴 진돗견이다.
 

그라나다의 새벽
 

달빛 교교한 알람브라의 고도,
그라나다에서 
검은 플라멩코 춤에 취해 보름을 보낸 
마지막 날 새벽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아흔 넘은 노모의 처연한 얼굴을
햇빛 가득한 꿈속의 바닷가 집에서
흐느낌으로 만나
얼굴을 파묻은 베게를 적시다.

아득히 오래전 나는
어머니의 젖가슴을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있었던
유년기를 보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내내
어머니 품에 어린 젖먹이 여동생보다 더 가까이 누워
새벽 바다의 바스락거림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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