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창동인블루6-6-1

jhkmsn 2018. 5. 14. 14:33

                                                                                  
                          5. 글 그림
                                     
                             1.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오래전엔  내 집 마당앞의 바다가 내 곁에서 점점 멀어짐을 뜻하였습니다. 유소년기에 그 바다는 바둑이처럼 매일 나와 함께 노는 친구였습니다. 그 바다는 하루에도 두번씩이나 모습이 변하였습니다. 한나즐 땐 조개들이 물을 품어대는 갯벌이었던 곳이, 어느새 물이 앞마당 방축 바로 아래에까지 차올라 그 안에서 떼지어 유영하는 학꽁치들이 은비늘을 반짝이는 바다로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소년은 바다냄새와 더불어 잠이 들었고 바다소리에 아침잠을 깨었었지요. 그 바다는 어느 날 쓸물을 따라 큰 바다쪽으로 향하더니 마침내 산 모퉁이를 돌아 큰 바다쪽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바다는 아득히 오래 전에 그렇게 소년에게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하루는 놀랍게도 아득한 날의 그 바다가 홀련히 내 눈 앞에 춤추며 나타나지 않았겠습니까! 깊은 춤이 되어 돌아어지않았겠습니까! 지금은 그 바다의 흔적 만이 남은 이 곳  근처의 3.15 회관 공연장에서펼쳐진 플라멩코 춤 공연날이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아침이면 은빛 농어들이 집 마당의 방축 아래에서 번떡이는 밀물의 해안이었고, 오후에는 무수한 밀게들의 하얀 게다리 군무로 장관을 이루는 갯벌이었던 그 바다가 내 앞에 깊은 플라멩코 춤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름다움과 불행을 느끼게 한 그 해안, 소년의 새벽 잠을 깨우던 어둠속의 새벽송가, 동네 꼬마들을 몰고 다니는 엿장수의 엿판수레그리고 뭉크의 그림속의 병든 아이의 표정 같았던 막내 이모의 절망한 눈빛과 함께  사라진 그 바다가,  그 날 그렇게 깊은 플라멩코 춤이 되어, 춤꾼 로레나의 '깊은 춤'이 되어, 기타의 선율과 목쉰 소리꾼의 노래가 되어 내 곁으로 춤추며 돌아왔었던 것이지요. 그 바다의 출렁임이 그렇게 심안에 아른거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인문이 전에  자신의 내면세계의 한 부분을 위와 같이 글로 표현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릴 적에 늘 곁에 있던 바다가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더니 반세기가 훌쩍 지난 어느날 그 바다가 춤추며 다시 나타나더랍니다.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글에 담았더군요. 얼마전엔 지역 화가들의 그룹전에 다녀와서는 아래와 같은 '그림읽기' 글로 3 명의 화가들에게 각별한 호감을 보였습니다.

'아래'
윤용수의 '숲'은 작가의 마음에서 자란 숲을 생나무 판자위에 겸허한 자세로, 그리고 날카로운 조각칼로 음각한 다음 그 위에 맑고 고운 색채 옷을 입힌 마음의 숲입니다. 하나의 주제를 올입과 헌신으로  그렇게 목판위에 새겼습니다. 어떤 종교적 열망을 담고있는 듯도하고, 순수한 회화세계에 탐닉
한 듯도 하고.
목경수는 '바위산'을 거친 자유의 붓질로 그려놓았군요. 겨울의 바위산 설경이 유려합니다.사실주의적 선과 형태의 소멸로 추상의 단계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얼핏보기에, 작가는 1940년 전후의 뉴욕의 추상표현주의에 마음을 빼았긴 적이 있었던 듯 합니다.
손명숙의 '추상'은 메마른 도회의 구조물을 연상케 한 이미지를 시적 감성의 시선으로 그려내었군요. 여성특유의 감성적 이미지의 추상입니다. 선과 색이 어울려 빚어내는 기하학적 형태와 색감이 도회적입니다. 작가의 회화세계는 이방인 여행객의 코끝을 스치는 골목길의 커피향이 베어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군요.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 윤용입니다. 오늘 제가  피력할 주제인 인문의 '글 그림'  앞서 그의 개인적인 그런 황당한 이야기와 그리고 동료 화가들의 그림에 대한 따뜻한 비평을 먼저 소개한 것은 이번 주제인 인문의  '글 그림' 을 감상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그는 화가는 아니지만 화가만큼 자신의 회화세계를 지니고 있거든요.

지난 목요일 마산 문학관에서 윤용화가가 '글 그림'이란 주제로 행한 강연에서 서두를 그렇게 열었다. 그 곳 문학관의 올 상반기 문학 아카데미에서행한 그의 강좌에서 였다.윤용 화가의 이번 강연의 주제는 특별하다. 글그림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감 그림이 아니라 글그림이다. 글로 쓴 그림이란 의미이다. '창동인블루'의 작가인 인문의 회화적 단상이 곧 이번 주제인 것이다. 강연자 윤용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이날의 제목인 '글그림'은 인문이
  사실적으로 표현한  짧은 회상의 단문-부채꼴 해안, 오두막의 주인, 포도빛 망또의 무리들, 바둑이 그리고 그라나다의 새벽-이 그것입니다.. 이 회화적 단상은 그의 산문집 <깊은 노래>의 한 소제목인 '화가의 손이 있다면'에 담긴 글을 다시 축약했더군요. 이 글은 누가 보아도 그림그리듯 쓴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인문은 그의 머리속에서 지워지지않는 지난 날의 그 아련한 형상들을 의도적으로  회화적 형상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서 나누어 드린 페이퍼에 담긴 그 단상들이 곧 그의  '글 그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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