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키다리 마술사: 오늘 이 자리에서는 여러 선생님들이 미술작품이라는 말을 많이하는군요. 그림을 두고 예술작품이라는 말도 자주 하구요. 그런데 이 예술품이라는 말에 대해, 그리고 미술작품이라는 말에, 저는 요즘 물음을 좀 갖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 예술작품인가? 예술품으로서의 그림이 비예술작품과 그 속성상 어떻게 다른가 ? 이렇게 말입니다. 윤용 화백님 이런 점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시지요?
윤용: (잠시 침묵하더니) 오늘 예상치 못한 이런 질문에 화가로서 여간 당황스럽지않는데요. 언제부턴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타성에 젖은 채, 추상이거나 추상에 가까운 그림이라야 진짜 예술품이라고 여겨왔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사진을 예술로 간주하기를 속으로는 주저하는 편입니다. 공예, 이를테면 도자기 같은 공예품에 대해서도 아직은 이것과 순수예술 사이에 일종의 경계선을 두는 편이지요. 솔직히 그런 편입니다.
나는 제법 모던한 인식의 소유자라는 믿음아래 재현적 혹은 모방의 추구를 일관되게 견지한 미술은 더 이상 좋은 미술이 아니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인문에게도 고개를 돌린다. 인문에게 뭔가 한 마디 하라는 뜻이다.)
인문: (머뭇거리는 눈치를 보이며 마지 못해 한 마디 두리뭉실하게 거든다.) 오늘 이 자리는 머리를 서늘케하는 물음들의 연속이네요. 사실, 이군의 이런 질문은 화가들 대두분이 속으로 스스로에게 던지는 숙제일 것입니다. 어쨋거니 신선한 충격입니다. 앞으로는 그림을 두고 함부로 자신의 견해만을 고집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조운규: 저도 추상미술을 선호하는 화가지망생으로서 한 마디 하겠습니다.
오래동안 시각예술은 모방이나 재현과 아주 긴밀한 관계를 가져왔는데, 추상의 추구와 더불어 그런 관계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게되자, 미술이 시각적으로 일체의 내용을 담지않고도 그냥 완전히 추상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예술가에 의해 만들어지지않는 어떤 것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마르셀 뒤상의 말에, 도대체 예술작품이란 뭔가? 하면서 내심 큰 혼란에 빠지더군요. 개념미술이란 말 앞에서도 그렇구요.
윤용: 돌이켜 보면, 서양에서의 미술이란, 성상주의에 사로잡힌 종세의 종교미술은 말할 것 없고, 르네상스이래 고전주의에서 사실주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미술가의 신념과 교의 등 역시 동일성의 실현이었던 것입니다.다시 말하자면, 가장 원본다운 재현을 위한 형성만이 의심받을 수없는 부동의 원리인 셈이지요.
키다리 마술사: 지난 날엔 그러했었지요. 미술을 재현적이란 것으로 이해한 비평가 비자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술이 '시각적 외관의 정복'에 더 능숙해진다고 보았습니다. 즉, 시각적 완성도가 더 높아진다는 의미이겠지요. 그런에 이러한 인식은 실제를 묘사하는 일과 관련하여, 사진이나 동영상이나 회화보다 헐씬 더 낫다는 사실이 증명되자 점차 회화라는 수단은 이제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회화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이 생겼습니다.그리고 회화를 다른 모든 예술과 차별성을 갖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가 ? 하는 물음도 생겼지요. 미술비평가 그린버그를 중심으로한 이른 바, 모더니스트적 사색가들이 그런 물음을 던지면서 그 해답을, 매체의 '물질적 조건'속에서 찾아내려고 했습니다. '미티에르'가 어떠니 하는 말도 그런 의미에서 모디니즘적 사고의 하나이지요.
조운규: 그러나 그린버그의 회화론은 팝 아트의 등장과 함께 그 논리적 근거를 잃게 되었잖아요? 팝아트의 등장과 더불어 예술작품이 어떠해야한다는 특별한 방식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되었던 것이지요. 현대에 이르러,"모든 것이 예술작품이다,"이라던지, "모든 사람이 예술가다" 따위의 슬로건이 출현하고있지않습니까? 한마디로, 미술에서 이제는 어떤 규칙도 없어졌다는 것이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라"는 일종의 반규칙이 생긴 것이다. 외딴 뉴잉글랜드의 집을 그리건, 물감으로 여인을 그리건, 아니면, 상자를 만들건, 사각형을 그리건, 이런 모든 게 자유로워진 것이지요.
인문:( 혼자말로) 말하자면, 미술에서 그 어떤 것도 나머지 다른 것보다 더 옳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군. 그래도 화가들이 더 이상 그리기를 중단하거나 화가이기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카다리 마술사: 솔직히 저는 최근 들어 화가의 삶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회화는 순수한 예술이니 다른 일반적인 상품과는 차원이 다른 ,이른바 순수 예술 작품이라는 명목으로 작품값을 높이는 행위에 대해, 그건 위선적이라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거든요. 미국의 거리의 낙서화가로 이름난 키스 하링의 그림과 그의 예술적 사색에 공감하면서부터였습니다. 순수예술이란 게 비순수작품과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그림을 왜 갤러리라는 한정된 공간에 놓인 특별한 작품으로 여겨 그것을 고가로 사고 파는가? 하링이 그런 물음을 던지더군요. 제도 그 거리의 화가처럼 그런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인문: (키다리 마술사의 말에 고대를 끄덕이며 윤용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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