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창동인블루6-4-3

jhkmsn 2018. 5. 14. 11:52

                           3.


최근 들어 인문은 이곳 '리좀 게스트하우스'의 휴게실에서 이승기 선생을 자주 만났다. 이 선생은 이 지역에서 잘 알려진 영화해설가이다. '그를 모르면 사람이라면 간첩'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이 지역에서는 누구나 그를 안다. 그와 인문은 오래전부터 서로 죽이맞는 사이였다. 둘은 만나면 영화 이야기 나누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 한 쪽은 옛 영화에 관한 한 깨소금 입담이 그치질 않고, 다른 쪽은 이야기꾼에 잘 홀리는 두 귀를 갖고 있어서 이다.
하루는 둘이서 오후 시간에 이곳 창동의 게스트하우스로 올라왔다.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키다리 마술사도 볼 겸해서였다. 그런데 그는 그 시간에 외출 중이어서 카운터의 허 씨와 더불어 셋이서 앉아 한가히 커피를 나누었다. 그 둘은 전 같으면 보통 주로 지난날의 서부영화 시리즈가 주된 화제였었지만 이 날은 특별히 뉴욕의 맨해튼을 무대로 한 영화 이야기였다. 둘 다 뉴욕에 친숙하기 탓이었다. 이 선생은 딸이 뉴욕 근처 뉴저지 주에 터를 잡고 살아 지난 몇 년 사이에 뉴욕을 세 번이나 여행했었고, 인문 단순한 호기심으로 뉴욕의 맨해튼을 2번이나 여행했었다. 한 번은 인문은 미국 여행 중 뉴욕에서 911 테러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현장을 보고 싶어 일부러 그곳 센 터랄 파크 근처의 한 호스텔에 머물렀었다. 어쨌거나 둘은 뉴욕을 좋아했다는 점에서 서로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
이번에 이곳 게스트하우스의 휴게실에서 이승기 선생이 인문을 만난 것은 이 선생이 뉴욕 여행에서 돌아온 며칠 후였었다. 여독이 가실 때쯤 그에게는 자신의 여행이야기를 귀담아들어줄 이가 절실했던 것이다. 이 날은 그가 방문했다는 브로드웨이 극장가가 이야기의 중심이었다.

인문은 이날따라 그의 묘사력 넘치는 말솜씨에 홀려 자신도 모르게 그의 이야기를 따라 아련한 회상의 맨해튼 거리에 나선다. 이 선생은 그곳 미드타운 이스트와 58번가 등을 거쳐 매디슨 에비뉴에 이른다. 이 선생은 그곳에 위치한 휘트니 미술관에서 영화 한편- 그의 말이 하도 빨라 처음엔 그 제목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를 운좋게 공짜로 보았다는 말로 인문을 귀를 더욱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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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미국 영화를 보는 것은 한국에서 보는 것과는 좀 다른 맛이 있습니다. 자막이 없으므로 내용을 알아듣기는 좀 어려워도 스크린에 시선을 집중하니 시각적 재미가 높아지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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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그렇지요" 미국인이 한국 영화 '서편제', 시선을 방해하는 자막 읽으며 보는 것처럼 떫은 맛일 터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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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도 잘 알다시피, 내가 영어를 좀 하잖아요.(인문은 이 말에는 벙긋 미소를 띤다) 그래서 이 날 자막 없이도 그 영화를 제대로 감상했다니까요".
그가 그렇게 너스레를 떨며 들려준 영화이야기는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작품 'once upon a time in America'이었다그의 주장에 의하면, 로버트 니로가 주연인 이 영화는 우리에게 친숙한 배우 마론 브랜드가 특유의 카리스마로 화면을 장악하는 마피아 영화 '대부'에 필적하는 걸작이라고 하였다
인문에게 뉴욕의 맨해튼이라면, 팝가수, 봅 딜런이 야생적 선율의 향기를 남긴 곳, 보통 사람들의 소박한 기쁨과 슬픔을 잔잔한 목소리로 이야기해준 단편 작가 '오 헨리'의 삶이 담긴 곳이었다. 그리고 센트랄 파크의 노을을 사랑한 듀엣 가수, 사이 멘 n 가펑클의 무대, 그런 곳이 맨해튼이었다. 그리고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의 아틀리에였다개인적으로 그가 체험한 뉴욕은 특별히 이러하였다:
하늘 위로 치솟은 직육면체 꼴의 고층 빌딩 숲, 맨해튼의 회백색의 침침한 거리에서 바람이 강하게 부는 좁은 골목을 굽 높은 힐을 선고 걷고 있던 백인 여성이 건물 위쪽을 바라보다 그만 발목이 접혀 몸의 균형을 잃고 옆으ㅇ로 뒤뚱거리며 넘어진다. 이곳 맨해튼 거리에서는 어느 누구도 고층빌딩숲속의 좁은 길에서는 제대로 폼이 나지 않겠구나! 하고 인문은 혼자 중얼거렸다.
인문이 뉴욕에서 맞게 된 3류 급 루즈벨트 호텔에서의 첫날의 한밤에, 낡고 흐릿하고 침침한 3층 복도의 화장실 안에서 앉은 채로 한 흑인과 서로 눈이 마주쳤을 때- 그 순간이 그가 뉴욕에서 겪은 가장 진한 체험이었다. 그 순간은 그에게는 청소년기에 본 영화 드라큐라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무서웠던 순간은 아마도 다시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호텔의 3층 객실엔 화장실이 딸려 있지않았다. 그는 그 첫날 밤 흐릿한 불빛의 건물 복도의 화장실에 혼자 앉아 아래층에서 목조계단으로 올라와 3층의 복도를 거쳐 자신이 앉은 화장실 쪽으로 둔중한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는 두려움으로 두 귀를 바싹 세웠다. 이어 화장실 입구의 도어가 살그머니 열리는 가 싶더니 한 사람이 홀 안으로 들어서는 소리가 나고는 이내 그 발자국 소리가 뚝 끊어지는 것이었다. 그는 칸막이 공간 안의 좌변기에 앉은 채 헛기침을 했다. 너무 조용해서였다. 그래도 희미한 불빛의 넓은 화장실 안은 조용하기만 하였다. 순간적으로 이상한 느낌에 위로 향한 두려움에 젖은 시선에 포착된 것은 변기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그를 화장실 칸막이 위에서  내려보다보고있는 검은 얼굴이 아닌가!! 서로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하이 프렌드!' 하며 그에게 미소를 보내는 그 검은 얼굴이 순하디 순한 표정을 하고 있지않았다면 겁에 잔뜩 질려 있었던 그는 정말 혼비백산하였을 것이다. (김준형의 '여행 그리고 깊은 노래' <도서출판 경남> 56페이지)
화장실 안에서 그렇게 만난 그 혹인 늙은이 (그는 그 호텔에 거주하며 일하는 청소부였다)를 통해 알게된 젊은 흑인 건달들과 어울리며 뉴욕에 머무는 기간 내내 맨해튼의 밤거리를 마음 놓고 나돌아 다닐 수 있었다.인문이 뉴욕 여행에서 한 중요한 일이라고는 그저 하루도 빠짐없이 타임스퀘어를 중심으로 그 거리- 몬드리안의 그림에서처럼 바둑판모양의 거리-를 무작정 혼자 걸어 다니는 게 전부였다.
 
그가 그 곳의 중심지 타임스퀘어를 그렇게 맴돌았을 때 그의 호주머니에 든 헨리 밀러의 소설 북회귀선'the cancer of the sun' 를 만지작거리며  그 소설가가 느낀 뉴욕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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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감옥, 구더기가 들끓는 보도, .....그리고 무엇보다 부자들에게도 자신이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느낌을 갖게하는 도시- 뉴욕은 차갑고 휘황찬란하며 짓궂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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