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창동인블루6-3-3

jhkmsn 2018. 5. 14. 08:15

                                     3.


인문은 자리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혼자 창동 네거리를 거쳐 불종로로 향한다. 근래 들어 불종로는 고급 석재로 포장된 그 바닥이 오늘따라 분에 넘치게 사치스럽고. 꽃무늬 장식의  울굿불긋한 네온 불빛이 유난스럽다.
인문은 이 거리의 중심점은 코아 양과자점 앞으로 길을 건너 버스 정류장 쪽으로 내려간다. 그는 무력감으로 차도 바닥을 바라보기도 하고, 버스나 승용차들이 지나다니는 길 위 공중에 설치된 아치형의 그 네온 장식에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인도를 따라 천천히 발길을 옮긴다. 아까 창동갤러리의 객석에서 여럿이 서로 주고받던 말을 생각한다. 특히 키다리 마술사의 거침없는 비판을 떠올리기도 하고, 화가 지망생인 조운규가 던지는 말의 의미를 짚어본다
버스 정류장에서 그는 한참이나 선채로 머뭇거린다. 호주머니에 한 손을 넣고는 어 시장 쪽으로 얼굴을 향해 채 도착하는 버스들을 몇 번이나 보내기도 하고, 호주머니에서 손을 빼고는 버스가 떠난 쪽으로 얼굴을 돌리기도 한다. 처음엔 버스를 탈 요량으로 그 자리에 섰으나 그는 그러질 못한다. 그냥 바닷가에나 가볼까 싶기도 하고, 아직 밤도 깊지 않으니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갈까 싶기도 해서이다. 그러는 사이 그의 머리속엔 아까 창동갤러리에서 무성하였던 대화와 이런 저런 샹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이상갑은 '삶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화폭에 담으면서 인생의 깊이를 논하였다고,
그리고  '20년 전 추상화를 시도해봤지만 그건 '전혀 나와는 거리가 멀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겠다'라고 말했다고.
이상갑이 그린 그림들을 보니 충분히 그럴만해.
그리고 그 당시의 화가라면 대개 그런 사실성의 그림들을 그렸을 테고.
그렇지만 괴암 김주석은 어찌하여 1950년의 그런 양식과는 별개의 그림을 그렸을까?
게다가 그는 "그림엔 정해진 틀이 없다" 고 말했었고.
내 생각을 도화지에 그대로 투영하는 그 자체가 잘 그린 그림이라고도 했겠다.
김주석이 이 곳 창동에서 남이야 뭐라하든
마음가는 대로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니.
혹시, 화가로서 어떤 절망감에서 그렇게 했을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야.
그 당시엔 동료 화가들 마저 그를 두고  그림에 소질이 없는 사람이라고 딱하게 여기지는 않았을까?
모르긴 해도 많은 이들이 그의 그림 앞에선
고개를 갸우뚱했음에 틀림없어.
내 눈에도 처음엔 그랬어. 말하자면 좋은 그림이 아니었어,
제 멋대로인데다 더우기 색감도  탁하게 보였어.
그 참, 독불장군이었던가?! 남이야 어떻게 보던
'
내 마음에 가는 대로 그리는 게 그림이지'라고 하였다며.
그런 마음으로 이 세상 그 어디엗 없는 그런 비현실적인 형상을 그려냈을테고.
모르긴 해도 하도 자신의 그림이 마음에 안들어 고민 고민 하다보니
꿈에 그런 초현실적인 형상들이 나타났을런지도 모르지
그걸 손으로 붙잡아 화면에 옮겨 놓았던게지.
그래, 그랬을꺼야. 틀림없어.
 
그나 저나 아까 윤용선생은  객석의 마술사 말에 속으로 뜨끔했을꺼야.
별 그림들이 아닌 걸 두고 거기가 그렇게 거창한 미사여구를 차용하여
의미부여를 하고있다고 직격탄을 날렸어니!
하기야. 그 키다리 이군의 말이 맞기도 하지
윤용이나 나나 나이들어 세상의 흐름에 둔감해져
그림 보는 눈길이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지.
혹시, 윤용은  창동에서 자신의 존재가 잊혀질까 두려워
자신도 모르게 창동 화가들의 그림에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요즘 들어 그림보기가 혼란스러워.
도대체 그림의 흐름이 도대체 어디로 향하는지
나도 종잡을 수가 없어.
이곳 창동의 화가들마저도 그림들이 제 각각이야.
아고라 마당의 창동갤러리나 옛 학원사 건물과 마주한 금강미술관에서
전시된 그림을 보아도  그저 조심스럽기만해.
혹시라도 모르는 관객이 곁에 다가와 저 그림은 무었을 그린 건가라고
물어볼까 더욱 조심스러워.
사실, 요즘엔 어느 전시장에 가나,별 것 아닌 의미를 왜곡된 형태의 색깔로 암시하는 그림도 있고, 화면을 오로지 기하학적 구성으로 채운 그림도 있었어.
어디 그뿐인가. 마리린 론로의 사진 하나를 수십장 복제하여
나열해 놓은 팝아트란 이름의 그림이 유명세를 타고있는 세상이 아닌가,
더 나아가 두샹이라는 화가는 화장실 소변기에 사인하여
창작품이라고  버젓히 전시상에 걸어두지 않나.
도대체 예술은 이제 그 의미가 어떻게 흐르고있는 것인지?
그것 참 ....
 
그런데 저 키다리 마술사가 질러대는 비판보다
오히려 화가지망생 조선생의 지적이 더 내 마음을 찔렀어.
윤용이나 나 둘 다 회상 속의 창동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음도 사실이야.
아니, 솔직히 윤용보다 내가 더 그렇지.
창동은 그 이름만으로도 나를 붙드니.
그 동녘의 작은 바다.
새벽녘 대문 앞 골목으로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송가대의 발걸음소리,
축담아래에서 찰랑거리는 쓸물,
수많은 청둥오리떼의 날갯짓,
가을 오후의 들물과 갯내,
학꽁치의 은비늘 퍼득임,
그리고 서끝샘 쪽의 그 검은 히말리다 시다의 숲,
오래된 목조건물의 긴 복도,
고요속의 끊임없는 절망의 기침소리,
연못가의 포도빛 망토의 무리들!
아마도 아마도

이런 것들이  지금도 내 안에 있어 그럴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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