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창동인블루6-3-2

jhkmsn 2018. 5. 14. 08:11

                                    2.


이번의 '그림 읽기' 강연에서도 지난 날처럼 참석한 관객들 사이에 회화에 관한 자유로운 토론이 이어졌다. 이날은 젊은 키다리 마술사도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펼쳐 화가들을 비롯한 여러 관객들의 눈길을 모았다.
 
사회자: 잘 아시겠지만, 윤용 화백님은 꽤 오래전 경남여성작가회의 카페에 지역화가들의 그림에 대한 '그림 읽기'의 글을 1년 반 동안 매달 한번 꼴로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거제의 김복남, 창원의 권순기, 김해의 이정남, 창원의 최행숙 그리고 진주의 정진해 화가들이 그들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윤용 화백은 지속적으로 글로 때로는 강연으로 그림, 특히 지난날 지역에서 활동한 화가들의 그림들을 ‘그림 읽기’해오셨습니다. 오늘은 1950-60년대에 이곳에서 살았던 두 화가- 이상갑과 김주석-의 그림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들과 강연자가 서로 자유롭게 나누는 토론을 이어가겠습니다. 오늘의 주제인 두 화가는 동시대를 사셨던 분들이지만, 서로  예술을 대하는 시선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를테면, 전자는 객관적 대상을 사실주의적 묘사로 재현하거나 또는 동일성의 실현에 미적 가치를 두었던 데 비해, 후자는 개인적인 상상의 세계를 표현주의적으로 시각화하는 데에 조형적 가치를 두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윤용님의 오랜 지인이자, 이른바창동인이신 인문님이 먼저 한 마디 해주시지요.

인문: 오늘 들으니 사회자께서 핵심을 요약하시는구려. 윤용 선생은  긴장 좀 하셔야겠습니다. 앞으로 그림 관련 듣기 좋은 주례사 같은 립 서비스 만으로는 이 마당에서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들겠는데요. (모든 관객들 웃음)
 
사회자:, 그렇게 우회적으로 나무라시다니! 부끄럽습니다.
 
인문: 아니, 송시인, 그렇지 않아요. 진심입니다. 송시인 말이 맞아요. 화가들이나 우리네들 그림 해설자들 모두 타성에 젖어 자신의 기존 의식세계에 안주하기 쉬워요. 아니 그렇습니까, 윤선생?
 
윤용: 오늘 인문도 제게 뭔가 할 말이 많은 모양이구려.
 
인문: 그렇게 들리던가요? 아니, , 좀 그렇기도 하지요, 이왕 내친김에 한 마디 더 하겠습니다. 오늘 윤선생이 말씀해주신 두 화가의 경우, 이상갑은 한 마디로 재현을, 즉 동일성 실현에 미적 가치를 둔 화가인 반면, 후자는 기존의 전통주의에 대한 조심스러운 도전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재현에 보다 내면적 표현에 더 큰 회화적 가치를 두었습니다. 자유로운 발상으로 자면 대상을 의인화시키더군요. 전자의 그림들 앞에서 첫눈에 이 상갑 화가는 지난날의 한국인상을 고전적인 회화 기법에 맞추어 꼭 닮게 재현했구나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김주석 화가의 경우, 그림들이 주는 첫 느낌은 투박한 붓놀림이나 둔탁한 색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작가의 마음이 과감 없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후자의 그림을 처음 대하였을 때는, 그저 그런 그림이구나 싶어 마음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에 호기심이 가기 시작하고 점점 더 좋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첫눈에 마음이 들지 않았던 색감조차도 점점 친숙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림의 형태에도 그러하였고요. 그의 회화는 낯설고 침침한 분위기의 바다와 중첩된 비현실적 여체 누드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참 희한한 발상이었습니다.  

키다리 마술사: 모처럼 두 분 선생님들 뵈니, 두 분 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두리뭉실한 그림 해설은 여전하십니다. 그리고 오로지 창동의 화가들이나 그림에만 관심을 보이십니다. 오늘도 그저 그렇게 보이는 그림들 앞에서…. 경향 각지를 돌아보면 요즘 눈길을 끄는 다양한 미술 작품들이 넘쳐나는데 말입니다.
 
객석의  조문규: 두 분에 대한 나의 생각은 좀 달라요. 솔직히 말해, 그림이건 노래건, 두 분에게 의미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창동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창동의 화가이기에, 그들에게 남다른 호기심을 가졌고, 창동의 그림이기에 마음을 주었던 거지요. 창동 화가들이 두 분의 마음을 끌었던 것은, 짐작건대,창동의 좁은 골목이나 어시장의 갯내가 그들의 내면에 불러일으키는 아련한 회상이나 연민 때문은 아닐는지요?
. 오늘 들어보니, 두 분 다, 특히 윤용님의 말씀은 좀 건조해지신 것 같습니다. 전에는 두 분이 구사하는 다양한 언어들은 직접적인 설명의 말이 아니라 주로  암시성의 것들이었습니다. 감성적이었고요. 어쨌거나 두 분은 그림이나 화가를 보는 눈이  좀 변하신 것 같아요. 무엇보다 그림에 대한 시적 감성이나 호기심이 옛날만 못해요. 나이 탓이기도 하겠지만.
 
키다리 마술사: 글쎄. 그림 이야기라면 그래도 그 큰 흐름을 짚어주시기는 해야지. 솔직히 두 분이 나이 드시면서 그림을 보는 시선에 혹시 혼란스러움이 생기신 건 아닌지 하는 느낌이 듭니다. 들을 때마다 그 말씀이 그 말씀인 것 같아요. 무엇이 좋은 그림인지, 어떤 화가가 참된 예술가인지를 두고 말입니다.
 
윤용:(그저 멍한 표정으로 인문의 눈치를 살피며)…………….
 
인문: 이군의 말이 사실이기도 해. 요즘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어.

 
객석 A: 화가의 입장에서 저도 한 마디 하겠습니다. 이상갑의 경우, "그는 삶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화폭에 담으면서 인생의 깊이를 논하였다."라고 누군가가 말한 것을 어딘가에서 읽었습니다. 그 화가님이 평생을 실경에만 몰두한 이유가 그렇게 삶의 깊이를 추구한 데 있었던 게 아닌가 여겨집니다.
 
객석 B: 이상갑 화백은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또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습니다. "20년 전 추상화를 시도해봤다. 전혀 나와는 거리가 멀뿐 아니라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이것은 1992 6월에 「삶」이라는 작품을 완성한 후 작가가 노트에 밝힌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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