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미인도화가 교당 5

jhkmsn 2014. 9. 30. 08:49

                     1. 묵향의 교유

 

 

                3. 

 

 

 0월 0일

수문형!

일전에 교당을 따라 거제 나들이 드라이브에 동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은 사진작가 김병규씨가 교당을 위해 차를 준비했었습니다.

거제 일주 나들이 일정에는  거제포로 수용소 방문과 장목 근처

어딘가에서 달성 서씨의 재실을 찾는 일이 포함 있었습니다.

교당이 그 곳 포로 수용소 유적지를 고집스럽게 찾아 나서려 할때

난 조금은 뜨악했었지요. 이 분이 6.25 전쟁사에도  관심이 많았던가?

싶었습니다. 장목을 지나고부터는 산 모퉁이 너머 마을이 나타날 때마다

차를 멈추게 하고는  한 참이나 지형을 살피며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여기도 아닌 것 같다. 한 모퉁이 더 돌아야 나올 것인가? 아니야.

이곳이 틀림없어. 아래 저만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길이니.

  맞긴 맞는데.....'

나는  교당이 그 가문의 재실에 무슨 일로 그렇게 관심이 많을까?

어떤 내밀한 역사적 흔적이라도 그 고옥에 남겨져있는 것일까?

그날의 표정은 평소 화사한 익살의 표정과는 달리 사뭇 진지하고

회상적이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 거제도의 그 두곳은 교당에게

20대의 젊은 한 시절 그에게 치열한 일터 현장이었던 곳이었습니다.

그날 결국 찾지못한 그  재실은 젊은 교당이 처음으로 단청을 입힌

재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포로수용소 유적지의 경우, 그 곳은

6.25 전란 시절 그가 그 곳 포로수용소의 입구근처에서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생업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런 아득한 일들이 안개비 속에서 선명히 되살아나던

모양이었습니다. 차 속에서 내내 젊은 날의 아득한 일들을 그리움을

담아 내게 소곤거려 주었습니다. 그 거제 나들이 길에 내가 동행한

일이나 지금 그의 그림세계와 삶에 호기심을  글로 남기게 싶어지니

문득 안개비 속의 그 거제 나들이가 생각나는 군요.

이따금 창동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학야 

 

 

0월 0일

수문형!

지난 95년 마산 대우백화점 갤러리에서의 일입니다만,

 나의 산문집 <창동인블루> 출판 기념행사에서 벌인

살풀이와 플라멩코 춤판 기억나시나요? 그날 책 소개는 아예

뒷전이었잖아요.두 춤이 그 행사장을 압도했으니까요. 김진숙의

플라멩코 춤의 이국적 분위기에 매료되고, 이필이가 추는 살풀이춤의

그 진양조의 느림이 주는 깊은 춤에 모두들 숨죽이며 홀렸었지요.

그 행사를 며칠 앞두고  창동의 만초에서  교당, 정자봉,

율관 등 예인들과 술자릴 가졌습니다. 그 행사에서 정자봉

교수에게 책소개 겸 인사말씀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내가 초대하엿던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교당이 그 행사에  춤판도 한판 벌이자는, 예상치못한 제안을

하여 그렇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이필이 선생에게 살풀이 춤을

부탁할 터이니, 학야는 플라멩코 춤꾼 한 사람을 책임지라고

했습니다.그래서 그 날 책출판 기념 행사는 이필이의 살풀이춤과

플라멩코 무용가 김진숙의 멋진 공연장이 되었습니다.

서양화가 김진숙은 그 책 속에서 플라멩코 춤추는 화가로

그려져 있어 나의 부탁에 기꺼이 응해주셨구요.

 

 그날 하객들의 시선을 소리없이 붙든 것은

이필이의 그 전통의상의 아름다운 색상이었습니다.

60후반의 노숙녀가 저런 눈부신 미모의 자태를 지닐 수 있다니!

사실, 그날 이필이의 그 의상을 챙겨준 곧 교당이었습니다.

두 예인, 교당과 일란 이필이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오래도록 서로 아끼는 사이였으니까요.

한 분이 춤 추는 곳엔, 그녀의 춤맛에 취하는 다른 한분은 꼭

그녀의 공연장에 꼭 참석하였습니다.

 

 

창동인블루 책소개 자리에 춤판을 벌이게 되다니!

그 날 저자소개와 서평은 정자봉 교수가 맡고,

이필이님은 살풀이춤을 추고,

김진숙님에게 이국적인 풀람멩코를 춤추고.

교당의 아이디아대로 그날 책소개 행사장은 그렇게

화려한 춤판으로 장식되었습니다.

 

지금 두분은 현실에서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분들임을

더 한층 실감합니다. 어저께 창동의 홍화집에서 교당과 나눈

점심자리에서 10여년전의 그 아련한 출판 기념회장을

회상했습니다. 교당 만큼 이필이의 그 느린 진양조 가락의 

깊은 춤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예인도 드물 것입니다.

 

학야

  

 

0월 0일

수문 형! 

 창동의 예인, 교당과 함께 술자리에 앉으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흥취가 입니다. 나이 80을 넘긴 분의 웃는 얼굴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년의 웃는 얼굴을 닮았습니다. 한 잔 두 잔, 청아나 매실주가 몸에

스며들면 어느 새 노 예인의 가지런한 흰 치아 사이로  빠져나오는

흥겨운 토속어가 내 눈을 깜빡이게 합니다. 

말의 속도가 빨라지면 , 내 눈의 깜빡임도 덩다라 빨라집니다.

그의 말 속에 섞인 옛 사투리들이 두 귀에 쏙쏙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쌔빠질넘','짜다라'. '하모' 등 

귀에 익은, 그렇지만 지금은 아련한, 토속어들이 

소년기의 해안가 갈대밭 물가의 탐스런 참게들처럼

내 눈과 귀를 붙듭니다. 물론,이 곳 태생이 아닌 수문 형의 귀에는

낯설 것이지만요. 그 ' 쌔빠질넘'은  

아낙이 집을 지주 비우는 미운 남편 대신 욕 대신

애먹이는 어린 아들 녀석에게 퍼붓는 어투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귀에 익은 말이지요.

두번째 것은  어시장 좌판 장사 여인네들 끼리 흔히 주고받는

수식어구요. 그리고 그 세번째의 속어 '하모'는 이 곳 사람들이

지금도 서로 주고받고 하는, 정겨움의 말투입니다. 

 

 무엇보다 교당은 노래솜씨와 리듬감각이 탁월합니다.

노래 사이 사이 스스로 맞추은 반주 솜씨는 일품이지요.

나는 그의 앉아 취기가 오르면 그 반주 솜씨가 기다려집니다.

허지만 그의 가락을 듣기위해선 때를 기다립니다. 토속어들이

그의 말속에 섞여 나올 때까지 말입니다.  '가당찮다던지',

'얼척이 없어서' 등의 어휘들이 그의 입에서 슬슬 섞여나오면,

나는  때를 놓치지않고  내 술잔을 비운 다음

'야래이샹' 한곡 !하며 그 분에게 술잔을 건넵니다.

그 노래가 가슴속에서 무르익을 때가 그 순간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의 리듬감각은 탁월합니다.  그의 흥취가

고조되면  노래는 가사의 강약이나 박자와 리듬으로

한 여름의 힘찬 개울물을 이룹니다.

 

어느 작가로부터 글쓰는 자는 남의 영혼을 훔치는 도둑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교당의 마음을 

몰래 훔쳐보는 도둑처럼 여겨집니다.

학야

 

 

09,01 

수문 형!

 

초여름 산들바람

고운 볼에 스칠 때

검은 머리 금비녀에

다홍치마 어여쁘라.

꽃가마에 미소짓는

말못하는 아다다여,

................

  

오늘 만초에서 백치 아다다 노래로

가을비를 맞이했습니다. 무심코 그 노래를 불렀었는데

교당과 동석한 곳에서 그런 분위기 죽이는 노래를 부르다니!

흥겨울 때 우렁차게 부르던 다른 애창곡 o sole mio를 불렀을걸.

하여간 현재호가 이 자리에서 술기운이 돌면

부르던 그 아다다를 이사람이 대신 했습니다.

 

그 화가는  오래전 한 때

어시장입구의 성미집에 앉아 소품의 그림 한점 건네주고

술과 저녁을 얻어 먹곤 하였습니다.

만초엔 그의 소품들이 여럿 벽에 걸려 있었읍니다.

요즘은 이 곳엔 그의 그림이 한 점도 없습니다.

 

초저녁 시간

교당 김대환,

목공예가 윤상조,

젊은 거리의 악사 명정국,

교당의 옛 국민학교 친구 조여사

그리고 내가

열린 문 밖에서 촉촉히 내리는 비를 

매실주 잔으로 맞이했습니다.

 

전에는 이 사람이 만초에서 교당을 만나는 날이면, 

정자봉 님이 자리에 함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큼직하고 따뜻한  두 손으로  교당의 사군자 부채를

펼쳤다 오무렸다 하거나 ,호주머니에서 슬며시 꺼낸 수첩을 펼쳐

그 위에 정성스레  빽빽히 적힌 애창곡 중에서 선곡하느라

대인풍모에 비해 유난히 작은 작은 눈을 깜밖거리곤 하였습니다.

정자봉교수가  한 자리 차지해 있었는데.

 

 

술잔 돌고 도는 동안

교당의 야래향이라는 중국 노래와

 서부영화의 주제가 자이안트를 들으면서,

 불현듯 현재호가 생각나 지난날  그가 술에 젖어

부르던 백치 아다다로, 그 취흥을 이었습니다.

백치 아다다엔 허무감이 어찌 그리도 절절히 배어있는지!

 

비 그칠 무렵  너도 나도 술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때 저만치 돌아 떠나는 교당의 비틀거리는 뒷모습엔

우리네 늙은 육신의 덧없음이.......

학야

 

0월 0일

수문형!

교당은 일본에서 소년기를 보낸 탓인지 일본 말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일본에서 국민학교에 함께 다닌 조여사와 교당이 서로 대화하는 것을

들어보면 일본 말이 반 가까이 섞여 나옵니다. 지금도 의사소통에

일본 말이 편한 가봅니다.오늘은 남성동의 알찬마루 식당에서 두 분의,

우리말 반 얼본어 반으로  나누는 대화를 귀담아 들었습니다.

 그가 읽는 그림 서적 역시 대부분은 일본어 원서입니다.

오래전 홍중조 전 도민일보 주필이 창동의 한 골목에서 외국 서적을 주로

파는 책방을 운영하고 있을 때 교당이 그 서점의 단골이었습니다.

일본 미술 월간지 '산사이'의  정기구독자였었습니다.

며칠 전 자산동의 그의 서재 한 모퉁이에는 오래된 일본 잡지 '영화의 벗'이

눈에 띄고,우리글 책으로는  책 상 위에 박경리의 '토지' 몇 권,

도스토에프스키의 '죄와 벌' 번역본과 ,빅토르 유고의 '노트르담의 곱추'

번역본이 얹혀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도 소설 책 익는 게 좋은 가 봅니다.

 

학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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