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이 책 속에 담긴 일련의 상징들은 삶의 에피소드, 무대장치,
오락... 따위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남은 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보이고 있다 -장 그러니에-
교당 김대환은 심성이 아름다운 원로 예인이다. 다가오는 발걸음이
나이를 초월한듯 경쾌하고, 한결같은 천진스런 미소가 하얀 이 사이로
번져나온다. 그림 전시장에서 그를 만나면 필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와의 기분좋은 어울림에 빠져든다. 그의 꾸임없는, 따뜻한 친화력
탓이다.
필자는 그의 손에 특히 호기심이 동한다. 한번은 그의 서재에서
세필를 든 그의 손이 화선지위에서 탐미의 유희에 집중하는 사이
전통적인 치마 저고리 옷의 여인의 곱고 단정한 얼굴이 그 위에
피어나는 것을 지켜 보면서, 불현듯 세살 아이 때의 교당의 손을
머리에 떠올렸다. 화선지위의 그 손은 그가 서너살의 어린아이일 때,
누나들 곁에서 큰 누나의 그림그리기 흉내를 내느라 크레옹과 연필로
벽과 방바닥에 어지럽게 그림낙서를 하였다던 바로 그 손이었다.
그 아이의 손은 나중 그가 나이 20살 무렵 6.25 전쟁시절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돈 버는 손이 되었고, 그 후에는 강남극장의 간판에
창극 광고판에 그려진 '햇님 달님'의 여주인공의 미모를 선녀같이 곱게
그려 지나가는 잠재적 남성고객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던 손이다.
그리고 특별히 필자와 한 플라멩코 무희가,10여년 동안 몇차례나
미국의 포틀란드와 한국의 마산, 함안에서 플라멩코 연출가와 출연자로
플라멩코 공연을 함게 열였던 희안한 인연의 교량이 되었던 그림선물-
교당의 채색 미인도- 한점을 그린 특별한 손이기도하다.
그 손은 지금도 즐기그림그리게에는 즐거운 놀이 것처럼 몰입한다.
그 손은 머리와는 상관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한다. 그림애호가들
중 자신의 그림에 끌리는 이의 마음을 감지하는 재주 또한 남다르다.
그 손은 그림그리기는 재능만을 가진 것이 아니다. 생존의 비법도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생존의 비법도 잘 터득한 듯 하다. 이를테면,
자신의 어떤 그림을, 누가 좋아하는지를 그 손은 간파하는 재주가 있다.
이 지역의 지인의 서재, 시내 중심가의 식당, 또 기업체의 사무실에서
그의 미인도, 달마도, 영모화등이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는 게 이를 잘
말해준다.
필자가 교당에게 쏠리는 또 다른 관심은 그가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두 번의 삶의 전환점에 있다. 20살의 청년기에 한쪽 눈이 실명에
이르게 된 시점에 일본에서 동양화가 목교당을 만난 게 그 하나이고,
나이 41세에 생애 첫 개인전을 연 것이 그 두번째의 것이다. 그가
마산 미술협회에 참가하면서 가진 그 첫 전시회를 전후하여 비로소
전업화가의 길로 들어선 것이 그것이다. 처음의 그 계기가 내면의
결심과 관련된 것이었다면 그 두번째의 것은 그 첫번째 전환점이후
20여년이 지날 즈음 그 마음의 결정이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나게
된 싯점이었다.
그 첫 전환점을 전후하여 처음으로 그는 화가가 되어야겠다는
의지를 마음에 담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한쪽 눈을 잃어
깊은 좌절감에 빠져 헤어나지못하고있던 상황에서 그 스승과의
만남을 통해 그 절망의 늪을 빠져나올 수 잇는 희망의 통로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자신에게 화가의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깨달음이 그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 만남은 청년 김대환에게는
희기한 행운이었다.김대환 청년의 그런 결심에 도움을 준 다른
특별한 요소들도 있었겟지만 그것들은 그 만남에 비해 잔물결에
불과한 것으로서 그에게서 곧 잊혀지는 일들이었을 것이다.
즉. 오직 그 목교당과의 그 만남과 그의 문하에서 3개월의 가르침을
받았던 그 일 만이 그의 내면에서 평생토록 살아 출렁이었던 것이다.
그의 이 첫 만남은 프랑스의 작가 까뮈가 20살 무렵 그 작가의 스승,
장그리니에의 책 '섬'을 처음으로 읽었을때 받았다는 까뮈의 감동을
떠올리게 한다. 까뮈는 그 책과의 만남이 그로 하여금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한 특별한 요인중의 하나라고 회상한 바 있었다.
그는 그 책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말하고있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적절한 시기에 스스로의 마음을 경도하고 스승을 얻고,
그리하여 여러 작품들을 통하여 그 스승을 끊임없이 존경할 필요를 느꼇던
나 자신에게는 더 없이 좋은 행운이었다.
그에게 두번째의 전환점이었던 첫 전시회 개최는 앞선 경우보다
더 높은 분수령이었다. 그 분수령의 앞쪽은 극장간판그리기가
일상의 일었다면 그 다음쪽의 삶은 그 이래 40 여년간 이어온
오직 화가로서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일생에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는 것 같다. 그 순간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다른 수많은 순간들의 퇴적
속에 깊이 묻혀있다. 다른 순간들은 그 위로 헤아릴 수 없이
지나갔지만 스르르 자취를 감추었다. 결정적인 순간이 반드시
섬광처럼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한 인간의 존재가 그 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눈에 띄지않고 점진적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이 글은 교당 김대환의 화가로서의 삶에 촛점을 맞추어 피력한
것일뿐 그에 대한 전기적 자료의서의 기록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의 가족관계의 세부사항이나 특별한 경력 사항 등은 구체적으로
피력하지 않았다.
이 글의 흐름은 그와 나눈 교유의 편지를 필두로 그의 인간됨과
작품을 이어가는 순서로 되어있다.즉,예인으로서의 그의 손에 대한
필자의 사색과,그의 작품 해설에 이어 그의 삶의 궤적이-유소년기,
청년기 그리고 간판직업인으로서의 삶-이 그의 추억의 개울을
따라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림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의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리며 살아 온 화가로서의 삶을 오늘에까지
이어가고 있다.
2014년 0월 0일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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