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미인도화가 교당 4

jhkmsn 2014. 9. 30. 08:47

                      1. 묵향의 교유 

 

     2. 

 

 0월0일

 수문형!

 

교당 김대환 님과 거제의 서예가 국정 김현봉님, 두 분은

거실바닥에 펼쳐진 화선지를 사이에 두고 묵향의 우정을 나누고,

그들 곁에서  두 분을 바라보는 객은 서재에 은은히 감도는

수묵의 운치를 느낍니다.붓을 쥔 교당의 손, 팔목 ,팔꿈치의 유연한

움직임따라 수묵 두루마리紙에 포대화상이 그 형태를 점차적으로

띠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무척이나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그림의 여백이었습니다. 너무 큰 빈 자리로 남은 그 화선지 윗부분이

무엇으로 채워질까 해서 였습니다. 의도된 비어있음인가 ?

실은,  그런 것 같지는 않아  속으로 실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교당이 태연히 낙관까지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즉흥의

붓놀림이라고 해서  화면이 저렇게 균형을 잃어도 되는건가?

 

 한 참 후에야 그 여백은 국정의 글이 담길 제발문의 공간으로

남겨 것임을 얼마후 깨닫게 되었습니다.교당은 수묵의 포대화상을

치고, 그 위 여백엔 국정이 내가 모르는 시 한수를 남기고.....

예인들 간에는 말 대신 손으로 그런 교유와 배려를 나누나 봅니다.

서예가와 화가가  함께  나누는 서화 교유를 곁에서 지켜본 것이나,

두 노 예인들의 교유가 화선지를 사이에 펼쳐좋고  그렇게 소리없는

필담 만으로 이어지기도함을 알게 된 것은,부끄러운 일이지만,

내게는 그날 이 처음이었습니다.

햑야

 

 

0월 0일

수문형!

한 때 창동은 내겐 3 자유인이 한가히 술잔 나누는 정자였습니다.

강변 언덕은 아니더라도,소무무숲 그늘 아래가 아니더라도

그 자리는 삶의 맛이 향긋해지는 풍류의 공간이었습니다.

한분은 그 언어적 표현이 수필의 글흐름 같고, 다른 한 분의 경우,

그 분의 끊이지않고 이어지는 창동야사의 속삭임이 얼마나

운율적이던지! 게다가 나는 남다르게 순한 귀를 지니고 있거든요.

한분이 들려주는 영국인 소설가 섬머세트 몸의 위트의 경구에,

그리고 다른 분이 귀속말로 소곤거기는 창동골목의 옛 기생집

일화에 나의 두 귀는 언제나 쫑긋해졋으니까요.

지금 내게는 교당이 더더욱 소중한 분입니다.한분을 얼마전

잃었거든요.이제 그분은 셋이서 술잔 나누던 그 자리에 더 이상

나오지않게 되었거든요.

학야

 

0월 0일

수문 형!

15여년 전입니다. 내가 미국 여행중 서부의 포틀란드에서 몇달간

머물 때 교당에게 보낸 문안 편지에 그가 보내준 답신속에 한지에

그린 채색화 한점을 접어 보내주었습니다. 장구를 매고 춤추는 

기녀가 묘사되어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다홍치마와  비색 저고리가

날렵한 그녀의 춤동작과 어울리는 전형적인 전통적인 미인이

 形似되어 있었습니다. 이 그림이 그 곳에서 혹시  좋은 임자 만나면

 여행경비값이라도라도 생길 터이니, 하며 동봉해 준 그림이었습니다.

세필로 선 하나 하나에 정성을 담아 그린 채색화입니다.

나는  그 그림을  복사본을 한장 뜨 남기고 현지의 화방에서 표구한

즉시  그 도시의 한 플라멩코 댄서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당시 나는 플라멩코 춤과 그 무희에게 쏠려 있었던 때였습니다.

 

교당의 그 그림선물로 인해 글쓰는 내게 전혀 뜻밖의 삶이 하나

추가로 주어졌습니다. 사람들이 날 보고 먼저 플라멩코에 홀린 사람!

이라고 말합니다.지금 내 명함에도 직함이 플라멩코 해설가로

되어있습니다. 15여년 전 그 때 교당이 내게 여행경비에라도

보태쓰라며 보내준 그 채색화 한점이 그 계기가 된 것입니다.

교당의 '춤추는 기녀' 한지 채색화가 그 춤꾼에게 선물로 전해진

10여년이 지난 어느 해에 그 춤꾼 로레나가 나의 초청으로

 한국의 이곳 마산에서 두 차례 공연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교당이 공연장에서 그녀와 포옹의 인사를 나누게 되엤을 때

 그녀의 얼굴이 그 채색화의 기녀만큼이나 잘생겼다면서 자신의

그 말을 통벽해 했습니니다. 우리들의 삶은 이처럼  의도하지않았던

뜻밖의 길로 들어서기도하나

봅니다.

학야

 

 

0월0일

수문 형!

내 서재에 걸린 교당의 수묵의 그림 '춤추는 여인'과

창동의 성미주점 홀에 있는 현재호의 수묵 추상화 한 점은

서로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일필휘지의  수묵 그림입니다.

현재호의 그림은  큰 한지를 바닥에 펴놓고 그 순간의 심상을

대붓 하나에 담아 그려낸 추상화입니다.

첫 눈엔  적흥의 붓가는 대로 휘갈릭 추상화로 보이지만,

 두 번 세번 집중하여 바라보면 그 속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심상의 얼굴들이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외형적 겉모습모다 자신이 늘상 몽상하던, 

얼굴들- 감은 눈의 얼굴, 채념의 얼굴, 고요한 얼굴 등등-이

서로 이어져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교당의  그림은 한 눈에 보아 단숨에 그린 심상의 여인입니다.

연한 먹물을 머금은 붓의 선으로 그려진 춤추는 여인입니다.

화선지위엔 그 여인 뿐 배경은 그저 여백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붓 한번 들어 한 순간에 어떻게 저런 춤추는 여인을 창작해낼까? 

세부에 연연하지않은 듯 자유분방한 거침없는 필선을 느낄 수 있는

빠른 용필의 수묵화로  내 서재에서 매일 함게 지내는  이 그림에

눈길이 향할 때마다 그의 손이 지닌 탁월한 솜씨에 감탄합니다.

 

현재호 그림의 경우,  끝이 넙적한 브라쉬 붓에 의한 칠해진 면의

그림이라면, 후자는 끝이 뾰족한  붓에 의해 그려진 선의 그림입니다.

한 주제에 끊임없이 매달린  자유인들이 한 순간 내면의 즉흥적인

심상을 순식간에 눈 앞에 표현해 낸 것이었음을! 그림 시작 전, 

 순간적으로  떠 오르는 영감을  손은 머리 속 궁리보다 먼저

그림으로 나타내고 싶은 충동을 느낀 듯 합니다. 그 즉시

한지를 바닥에 펴놓고 그대로 붓을 들어 그 영감의 이미지를

그림에 옮긴 것입니다. 머리속에 살아 맴돌던 심상이 취기의 순간

 붓 끝 아래 세상밖으로 나타난 것이라는  뜻입니다.

 

 교당의 그 묵화는 그의 팔순 기념 전시회에서 산 그림입니다.

전시회 전날 지금은 고인된 정자봉 교수와 가진 술자리에서

 그 그림에 딱지를 미리 붙여놓겠다고 전날 약속했거든요.

 그 일필휘지의 그림엔 교당다운 솜씨가 제대로 드러나 있어

내가 가져야겠다는 욕심을 털어놓았던 것이지요. 교당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편지에 담아 보내는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한 열흘 마산의 전설적인 화상 송인식 선생의 별세 소식을

듣고 불현듯 교당을 생각했습니다. 교당을 더 늦기전에

글에 담아 두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였습니다. 

hy 

 

'연작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인도화가 교당 6  (0) 2014.09.30
미인도화가 교당 5  (0) 2014.09.30
미인도화가교당 3  (0) 2014.09.30
미인도화가 교당 2  (0) 2014.09.30
미인도화가 교당 1  (0) 2014.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