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스페인으로 비행하면서
1.
여행은 몸이 아니라 마음의 이동이다. 마음이 누리는 시공간적
자유로움이다. 낯선 여행지의 남과 밤을, 약간은 두려움으로,
때로는 달콤함으로 맞이하는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인 것이다.
몸은 대개 긴 이동중에 무력해지고 두 눈과 귀는 총기를 잃는다.
그 때 시각적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것은 마음의 눈이지, 육신의
눈이 아니다. 긴 비행중에 특히 마음의 눈이 반짝인다.
구름위로 내닫는 몸은 실상은 좁은 공간 속에 놓여있을 뿐
갈망하는 자유의 미풍은 맛볼 수 없다. 그 때 육신은 우리속에
갇힌 무력한 동물의 몸과 다를 게 없다. 더우기 새벽 별 내리는
광활한 땅을 내닫는 그레이하운드 속에서 밧보는 차체 흔들림의
율동감이나 부드러운 엔진음을 답답한 비행체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 구름위로 뜬 채로 그저 한 대륙에서 먼 다른 땅으로
운반되고있는 우리의 몸뚱이는 비유컨대, 활어차속의 살아있는
물고기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그런 갇힌 공간 속에서 불현듯 먼 목적지 쪽 낯선 땅의
올리브 나무의 끝가지를 흔드는 지중해의 해풍이 구름위에서
상상으로 감지되고 ,과거의 빛과 그림자가 되살아나 심이에
고통스런 달콤함과 고통스런 마찰음을 일으키는 게 비행이
주는 드문 선물이리라. 그때 자유로운 마음은 닫힌 공간의
어둠에 묻힌 육신과 드물지않게 그렇게 조화를 이룬다.
꿈꾸는 대상이 존재하는 곳에 마음이 가 머무는 것. 그것이 여행인
것 같다. 마음은 시공간의 벽 위로 과거쪽으로 기웃거리며 해조음
가득한 유년기 바다의 꽃게들과 눈씨름하는 가슴 설레임을 맛보기도
하고 ,이와는 반대로 미래쪽으로 먼저 날아가서는 ,육신이 아직 이르지
못한 그 곳 밤하늘의 별빛 반짝임에 시각적 충만감을 누리는 상상의
무한이동인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여행은 그런 것이다.
여행자의 심안은 지금 구름위로 달리는 기체속의 어둠속에서
검은 자갈과 야생 선인장의 메마르고 척박한 안달루시의 산악을
넘어 벌써 무어인들의 고도 그라나다에 가 있다. 산 크리스토발에
올라 검은 산을 베경으로 선 하얀 집들과 가파른 황토빛 알람브라
성벽과 마주하고 있다. 사크레몬테 집시미을의 동굴 따블로가
눈 앞에 어른거리고 , 집시여인의 가슴찌르는 솔레아 소리가
심이에 들린다. 헤레스의 댄서 사샤와 함께 그 도시의 사이테
축제의 긴 행렬 속에 끼어 걷는다. 그리고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와
솔(sol)광장의 한 카페에 앉아 파코 데 루시아의 기타연주를 듣는다.
여행자는 그런 몽상속의 긴 비행 후 이제 몸이 스페인의 영공으로
들어섬을 감지하고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혼자 중얼거린다
그라나다에
큰 달이 오르는
밤이면
알바이신 언덕에 올로
아라비아산 진한 허브향과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와
플라멩코 콤파스에
취한 눈으로
핏빛 전설의 알람브라성과 마주하자.
집시들의 마을의,
나귀 노새들이 터 놓은 골목길마다
포도주 향이
나그네의 마음을 붙든다는
헤레스에서는
칸테 혼도의 그 깊은 맛을
세리주 잔에 채워 마시고.
그리고 빛의 도시
카디스에 이르러
이 침침한 육신의 눈을
순수한 바다 빛으로 씻으리라.
마드리드는 팔라도 미술관의 그림보다
발라스케스의 동상보다
그 아래 길바닥에 앉은 거리의 악사로 인해
당신에게 더 오래 기억되리라는 누군가의 귀뜸.
그 기타리스트를 먼저 찾아 나서리라.
바로셀로나는 단념하자.
이태리 여행에서
모네는 플로렌스에도 나폴리에도 가지않았다.
시각적 상상과 회화적 열망,그리고 회상의 정서가
지리적 명소보다 더 소중하다는 모네를 따르자.
플라멩코에만,
춤과 소리와 가타선율에만
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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