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창동인블루세빈 5

jhkmsn 2019. 4. 21. 13:18

눈에 보이지 않으나 사진에 찍히는 현실

1.

회화가 언젠가부터 인문에게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광활한 늪지대로 여겨지면서 그림바라보기에 적이 두려움마저 생겨 자신도 모르게 점차 그림과 거리를 두게되었다. 마침 그 때 우연히 책에서 만난 초현실주의적 사진들, 이를 테면 빌 브란트의 '정전속의 런던‘이나 만'레이의 사진 '밤의 파리'에 그의 마음이 끌렸었다. 근자에는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그의 한 친구가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 ' 새벽길의 사람들'의 어슴푸레한 새벽빛에서 모더니즘 이후의 그림들에서 느낄 수 없었던 예술적 향기를 맛보았다고 주변에 푸념한 것은, 아닌 게 아니라 그럴 만도하였다. 기질적으로 낭만적인 그는 회화라면, 아늑한 등잔불이나 촛불의 아른거리는 빛을 떠올리게 하는 렘브란트나 도오미에의 그림들에 이끌렸었고, 더 나아가 모네의 순수한 햇빛으로 가득한 풍경을 좋아했었다. 그의 시선이 미티스에게로 쏠리기 전에만 해도 모네의 지중해의 반짝이는 빛으로 풍성한 바다 풍경에 상당기간 매료되었었다.

그러던 그가 자신에게는 그림같지 않은 팝아트 그림이나 포스트 모든의 그림들이 주변의 갤러리나 아트센터를 채우고 시작했으니 그로서는 당연히 그럴만 하였다. 화첩에서 본 앤디 워홀의 상품성 복제기술작품이나 포스트 모든의 팝 아트와 만화 그림들을 두고 이것들이 어떻게 예술품으로 받아들여질까 하며 속으로 당황스러워 했었던 그였던 것이다. 앤디뭐홀의 그런 그림들은, ' 예술을 위한 예술'이야말로 참된 예술이라고 여긴 그로서는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존재',' 일회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었던 것이다.

그런게 계기가 되었던지 간에 어쨋거나 인문은 창동으로 향하던 발걸음도 점차 뜸해지기 시작하였고 화가들과의 어울림도 드물어졌다 .무엇보다 창동의 화가들의 전시회에도 얼굴을 내밀지 않아 속으로 궁금하기도하고, '아, 이 분이 이제 창동에서 마음이 멀어지고있구나 !',거나 '인문이 창동을 떠나려나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마음은 그가 키다리 마술사에게 보낸 이메일에 담아보낸 푸념섞인 아래의 글 분위기에 그대로 녹아있다.

'아래'

​조군!

요즘 어디 불편한 데는 없느냐고?

그냥 집에 머물거나 도서관의 서가들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낸다네. 창동으로 나서던 중 자신도 모르게 발길이 그 쪽으로 향하게 되더군.

안부 문자 고맙게 읽었네,

지금은 기타곡 Caprachio Arabe를 듣고 있던 중이었네.

요즘은 멜빌의 moby Dick을 상상한다네. 이스마엘처럼 바다에 나가고 싶어 나 자신 고래잡이 배의 선원이 되기도 하고, 시베리아 횡단 기차로 눈 내리는 자작나무 숲길을 지나는 몽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네. 아니면, 도서관의 책 창고 한 구석에 묻혀 안톤 슈낙의 감성적인 이런 귀절들에 마음이 빼앗기기도 한다네:

'자스민 향기! (내게는 라일락일세)

이 향기는 나에게 창 앞에 한 그루 노목이 섰던 나의 고향을 생각하게 한다 .'

'달리는 기차',

'회색의 빛깔',

'둔하게 울리는 종소리',

'초행의 시골 주막에서의 하룻밤'

 

하여간, 오늘 문자 반갑기 그지없네.

젊은 마술사의 안부 한구절에 이렇게 속빈 넉두리를

두서없이 횡설수설하다니!

언제쯤 한번 나들이 하기는 해야 할텐데!

아, 지금 이 Caprachio Arabe 기타곡,

조군도 한번 들어보게나.

문.

인문과는 특별히 자주 만난 마술사 조군은 그날따라 그의 그런 마음 흐름에 더없이 허전하고 쓸쓸한 느낌이었다. 왜나하면, 인문은 아마추어 마술사인 자신을 열렬한 그림애호가가 되도록 이끌어준 데다, 자존심 강한 창동의 화가들로부터 자신을 인정받게 했던 분이었다. 그가 화가들과 만날 때는 자신을 동석시켜 그 자리에 어울리게 해주기도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인문 앞에서는 그는 자신의 비평적 견해를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었기에, 이제 그가 아니면 창동에서 더 이상 누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겠는가 싶은 생각에 더욱 그러하였다.돌이켜 보면, 인문은 비현실적 분위기의 아련한 이미지나 이를 불러일트키는 글귀들에게서 예술적 향기를 느끼던 사람이었다. 회상과 허구가 뒤섞인 아련한 문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런 문장의 첫 단어를 찾기위해 고심하던 중에 어스름한 빛의 회화, 이를테면 대상의 형체가 분명하지않는 오노레 도미에(Honore' Daumier)의 회화를 만나 이에 매료되기도 했던 몽상적 인물이었다. 사진에 있어서도 특히 그러했었다. 렘브란트의 어둠속으로 파고드는 빛이나 그런 분위기가 담긴 사진이나 빛이 대상에 녹아든 사진들에 눈길이 쏠렸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2.

 

인문이 팝아트나 포스트모든 미술세계는 자신으로서는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다가와, 라고 마술사 조군에게 혼자말처럼 털어놓을 때 , 마술사 조군은 그 때는 단지 인문의 그런 표현을 단지 지나가는 말인 것으로 여겼었다. 인문의 그런 푸념은 그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인문은, 지금도 그런 편이지만, 화가라면 예술외적인 필요에 봉사하는 시녀이기를 중단하고 스스로 자유로운 주인일 때 비로소 참된 예술가인 것으로 여겼었던 것이다. 더우기 그림에서 자연주의적인 자연묘사는 이렇다 할 정신적인 노력없이 어느 미술학교에서나 배울 수 있는 한갖 기술적인 예기에 불과한 것이라고 그는 종종 말했었다. 그런 인문이기에 개인의 창의적 독창성이 강조된 모더니즘적 회화가 그에게는 진정으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들로 여겨졌었던 것이다. 모네 이후의 후기 인상파화들인 고호, 고갱, 세잔느에 이어 ,그리고 더 나아가 미티스, 표현주의적 작가인 뭉크도 샤갈이나 피카소 역시 그에게는 참된 진정한 화가들이었다. 그런데 돌연히 대중들이 앤디워홀이 마리린 몬로의 얼굴들을 나란히 복제해놓은 것을 두고 햔대의 새로운 예술창작품이라 박수를 보내는 현상에 그는 현기증과 막막함을 느꼈으리라!

이제 그림전시장에 들어서면 막막하기만 해.

창동의 젊은 화가들의 낯선 그림들에 대해 내가 무엇을 근거로

어떻게 말을 해야할 것인가?

마음에 들지않는 그 불쾌한 그림들!

혹시 내 눈이 잘못된 것인가?

인문이 전에 키다리 마술사와 함께 향숲 카페로 향하면서 그런 말을 혼자말인 것처럼 흘린 적이 있었다. 마술사는 '나 들어라고 한 말인가' 싶어, '예? '하며 그의 옆얼굴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는 '아니, 아무 것도 아닐세 하였던 것이다. 그 때는 그의 그런 혼자말이 그림들 자체를 두고 그가 마음에 들지않는다는 표현을 그렇게 한 것이려니 여기며 창동의 그림세계에 대한 끈임없는 애정과 비평적 시선을 우러러 보기까지 했었는데 ! 이제 와서 생각하니 인문의 그런 말들은 그가 이제 창동을 떠날 때가 되었구나 하는 마음을 암시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인문이 창동 대신 도심의 외곽 한 변두리에 있는 도서관으로 발길을 향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그의 그런 속뜻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가 창고를 뒤지며 시베리아 철도길 옆의 자작나무숲을 회상한다거나 흰 고래를 뒤쫒는 포경선의 선원이 되는 몽상을 즐기기에는 도심보다야 도서관의 서가창고가 제격이지. 렘브란트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두컴컴한 방앗간의 뚫어진 지붕 아래로 기어오르던 소년기를 회상하기를 좋아한다고 했잖은가. 빛과 그림자에 탐닉했던 그 화가가 그의 소년기의 그 방앗간을 회상하기를 좋아했던 것은,거기서 만나는 때로는 천장으로 스며드는 신비스러운 빛 줄기로, 때로는 그 이층 창틈으로 보이는 아득한 평원의 풍경으로 인해서 였다고 하였던 말을 그는 어디에서 읽었던 것이다.

어제는 사진작가 제갈 선생과 인문 그리고 젊은 마술사 셋이 창동카페에서 모처럼 자리를 같이 했었다. 제갈선생이 이 날은 일부러 그들이 창동에 나올 때는 자주 만나는 향숲 대신 그 골목 안의 그 카페창동를 택한 것이다.인문이 팝음악보다 기타솔로를 좋아하니 특별히 그 카페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젊은 마술사는 사진에 관하여 궁금한 점도 있고 인문의 목소리도 듣고 싶어겸사 겸사 두 분을 보고싶었던 참이었다.

젊은 마술사: 제갈선생님, 사진에 찍히는 현실과 눈에 보이는 현실은 좀 다르다던데요. 사진의 촛점은 시야에 잡히지않는 현실의 층위를 포착해낸다는 글을 책에서 읽었습니다. 사진이 추구하는 것은 예술적이기보다 오히려 과학적이고 탐구적이네요. 화가들은 낡은 벅에 자연적으로 생긴 얼룩의 형태나 색조에서 사물이나 인물의 형상을 상상으로 화폭에 담아내기도 하잖아요. 화가들은 과학적 탐구가 아니라 꿈과 상상의 세계를 쫓는 몽상가들이잖아요.

제갈: 얼른 듣기에 그 말은 사진은 현상의 표피에만 집착함으로써 존재의 본질은 놓치고있는 게 아닌가 하는 비판의 말로 들리기도 하네.

젊은 마술사: 미적 시각에서 보면 그럴 것 같은데요.

제갈: 그런데, 사진이 렌즈가 잡아낸 표피의 이미지나 색조에서 표피아래의 심층을 느끼게 함으로써 그림보다 예술적으로 더 깊은 울림을 준 경우도 있었다네. 표피의 단순한 하나의 이미지가 보는 이로 하여금 비극적 체험을 회상시키기 때문이지. 그건 그림이 주지못하는 가슴 찌르는 울림인 것이지. 초현실주의적 사진에서 그런 점을 읽을 수 있다네.

인문: (키다리 마술사에게) 제갈 선생도 사물이나 인물의 객관적인 외면 아래에 감추어진 심층을 사진에 분이었어요. 그래서 나도 이 분을 통해 사진을 새롭게 보게되었고. 그림의 세계에서도 근대이후에도 끊임없는 사색의 길이 이어져 왔었잖아요. 사실주의자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나 ,샤갈같은 몽상가는 이룰 수 없는 꿈을 눈앞에 그려냈습니다. 쿠르베 같은 사실주의 화가는 눈에 보이지않는 천사는 그릴 수 없다하였으나 고갱은 환상에 나타난 천사를 화폭에 담아내었고, 세잔느는 사물의 표피를 뚫고 들어가 그 속의 본질을 파악하고 싶어하였고.

제갈 : 그나저나, 인문은 초겨울이 시작되면서 근 보름이나 창동엔 발길을 아예 뚝 끊었던데, 무슨 사람이 그래요. 향숲 한 여사도 궁굼해 하던데.

젊은 마술사: (맞장구치며) 그 전부터 그런 낌새는 보이셨어요.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홀연히 두문불출이시니.

인문: 단지 그냥 침묵하고 싶었지. 도서관의 서가창고의 책속에 묻히면 감당하기 힘든 비감과 우울을 좀 달래지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어요. 우연히 산티아고에 사는 4촌 여형제와 이메일을 주고받은 다음부터 였다네. 그 4촌으로부터 전혀 뜻밖의 가슴 아픈 소식을 하나 듣게되었던 거지. 그 우울한 소식의 이메일 받고 보낸 나의 이런 회신을 읽어 보면 그간의 내 심정을 좀은 짐작할 수 있을 거야:.

 

'S 사촌에게

아마 20여년도 더 되었을 걸세,

내가 LA에서 자네의 언니, 희 곁에 있는 자네들의 막내 동생 h에게서 첫 느낌에, h가 희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있고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네. 그땐 희에게서 별다른 점은 느끼지는 못했었네, 다만 돌발적으로 명랑해 한다거나, 고속도로에서 너무 과속해서 셋이서 탄 승용차를 너무 과속으로 몰아 속으로 저마조마 했었던 적은 있었어요. 멕시코의 티우아나에서 돌아 올 때는 그래서 h가 누나 대신 대신 핸들을 잡았어요. 그 때엔 그게 이미 정신분열증의 시초였었던구나, 싶어진다네. 지금 h의 첫째 아들 Alexander의 사진속 얼굴을 대하며 지금 다시 지난 날 희를 만났던 순간 순간들이 그대로 회상되었어요.

아우가 언니 희의 소식에 이어 h의 아들들의 사진을 보내준 것은

참 현명한 일이었네! 아우의 막내 동생의 아들들이 잘 자라고 있는 모습에 비로소 흐르는 눈물이 멈추어지고 흐려졌던 내 시야가 점차 맑아졌거든.

처음 희 모습을 떠올리며 몇번이나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회상)을

피아노 곡으로,

기타곡으로,

그리고 첼로 곡으로

반복해서 혼자 들었다네.

그렇지만 뜻밖에도 h의 아들 셋의 사진이

내게 슈베르트의 보리수 음악을 상기시켜 주었어요.

그래서 얼른 슈베르트 이 가곡을 찾아내어 수만의 그 곡 듣기를 멈추고 이 가곡을 점차 맑아지는 마음으로 듣게되었던거지: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찾아 온 나무밑

찾아 온 나무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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