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창블7-8-2

jhkmsn 2019. 1. 19. 20:14

2.
0월 0일
Chegal!
 편집장의 그 물음-  무엇이 인문으로 하여금 창동에 집착케 하는가?-가 내안의 여러 상념들을 불러 일으키네. 내가 올 여름초 천주산에 젊은 대금주자와 함께 산 정상 아래에 있는 두 분 할머니 묘소를 향해 오늘이 이 손자가 이 곳에 올라 올리는 마지막 성묘임을 알리는 작별의 의식을 행한 일이 있었네. 묘소 곁 해묵은 떡깔나무 아래에 두 분 어머니, 아버지도 머물고 계시고, 제작년에는 할마버지 또한 이곳 진달래 군락지에 함께 계시게 되었네. 떡갈나무가 그들을 지켜주는 이 고요한 언덕을, 내 마음의 집을 이제는 떠나야 할 때가 되었기에 그렇게 작별의 의식을 올렸던 것일세. 한 50년전쯤  우리들이 고교 1년 때였던가 국어 교과서에 실린 < 페이터의 산문>에 이런 글이 있었지 않은가:
사람은 나뭇잎과 같은 것,
가을 바람에 낡은 잎을 뿌리면
은 다시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
편집장이나 나나  둘다 나이가 벌써 나무 가지에 매달린 낡은 잎으로 되었으니 이제는 불어 올 가을 바람을 예비해야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작년 가을 어느 달인가의 회보지에 올린 나의 단상 <그라나다의 새벽>의 삽화로 친구가 찍은 사진 한 장, <플라멩코 춤>을 올린 적이 있었잖는가. 춤플라멩코를 춤추는 집시 할머니 한 분의 표정을 캡쳐한 친구의 그 사진 말일세. 내가 그 사진을 보고 그 집시춤에 십 수년간 매혹되었던 사람으로서 적잖이 놀랏었네. 플라멩코라 하면 거의 춤을 연상하고 플라멩코춤이라 하면 고혹적인 젊은 댄서를 연상하는 게 일반적인 일인데, 자네는 춤추는 할머니 댄서에 촛점을 맞추었으니! 그 범상하게 보이는 그 사진 한장이 플라멩코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거든. 그 볼품없는 늙은 댄서의 표정과 눈빛에 일종의 체념이 서려 잇었네. 그 표정은 외아들이나 남편을 잃어  절망한 여인의 슬픔 같은 것일세. 원래 그 춤은 그런 여인의 몸짓이거든. 하기야 나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 춤을 추는 한 이국의 젊은 여인을 처음 본 순간  아닌게 아니라 그 댄서에 홀려 긴 시간 그녀의 환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였던 내가 그런 말을 하다니! 돌이켜 보면, 내가 만약 젊은 나이에 그 춤에, 젊은 댄서에 빠져 들었다면, 내 삶이 어떻게 변해 갔을지, 솔직히 상상하기 힘드네.
 다시 그 글 <그라나다의 새벽>으로 돌아가  그 속의 어머니를 이야기 하겠네. 그 어머니는 지금은 천주산의 그 떡갈나무아래에서 아버지와 함께 해마다 피어나는 풀잎이 되였고. 그 단상 다시 보면 , 무엇이 나를 창동주변에 맴돌 게 하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짐작 할 수 있을걸세.
'그라나다의 새벽'
*가나다라

이제는  천주산 정상 근처의 그 떡깔나무 언덕으로 더 이상 오르지는 못지만, 그 곳에 이르는 중간 통로인 달천계곡은 내 혼자 수시로 찾아가네. 그래야 마음이 가벼워지거든. 그 곳은 창동에서 버스로 한 시간 이내의 거리야. 특히 노모가 꿈에 나타나는 그 다음 날은 자신도 모르게 그 계곡을 찾게 되고. 건강히 지내게
다음에 또 연락하겠네.
인문

0월0일
Chegal에게
오늘은 화가 루오의 이 한마디 보내고 싶어 필을 노트북을 열었네:
'예술은 열렬한 고백이다."
화가의 이 한 머디로 인해 지금까지 내가 이어가고 있는 글씀이 그 첫 물꼬 터짐을 얻게 되었고, 그리고 이 한 마디로 인해  아득히 젊은 날 나의 비열한  배신의 행위가 인간적으로  지울 수 없는 분노와 상처가 되었을 사람에게 용서를 비는 이 마음을 찌르는 말이기도 하였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의 그 비열함을 더욱 더 용서할 수 없는 짓마음이 커지니, 50여년 전의 그 얼굴에 담긴 표정을 내 어찌 잊겠는가.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좀은 진지하고 진하게 되었네.
천주산에 계시는  그 아버지의 사회적 과오와 관련해서도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네. 그 아버지는 내가 20대의 청년기를 지낼 때만 해도 나의 안식처였었네. 나의 결정적인 어려움은 아버지가 해결해주셨거든. 구체적인 사연들은 여기서 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네만, 내가 집안의 장손이었고, 나를 대신할 만한 정실의 남동생이 없었으니  아버지로서는 내가 마음에 들지않는 아들이라도 그럴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네. 자네는 장남이 아니니 그런 입장에 대해 잘 느까지 못할 거야.
하여간 그런 아버지께서 사회적으로 공분을 산 과오를 행하신 게 하나 있었다네. 지금 그 분의 아들로서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그 과오 역시 내 몫으로 안고 값아야 할 하나의 빚으로 여기게 되었네. 자네도 잘 알지만, 마산의 3.15 의거의 김용실 열사를 50년이나 잊고 지내다, 몇년전인가 그 열사를 추모하는 예술제를 3년이나 이어 갖게 된 일과 관련이 있다네. 김용실 열사가 우리들의 고교 동급생이지 친구였기에 내가 앞장 서서 그 추모제를 주도한 것으로 되어있었지만 , 실은 고백하건대, 거기엔 나의 내면적인 빚값음이 더 큰 몫으로 작용하였다네. 
아버지의 과오나 마산의 315 의거, 그리고 김용실 추모 공연제 등 이 모든 게 창동을 근거로 하여 일이난 일이었으니 그런 요인들 역시 심리적으로 나를 창동에 붙들어 놓은 요인들이었다네.
오늘은 좀 찐한 말을 좀 했네그려.
See you.
Moon

0월0일
Chegal!
지역사 탐구가 박영주가 보여준  사진 한장이 내 눈을 반짝거리게 하였다네. 1950년대 전후로 여겨지는 창동외곽의 구강 마을을 하늘에서 찍은 빛 바랜 사진으로 그 사진과 한 참이나 마주하는 나의 기억 속 한 모퉁이에 오래동안 묻혀있던 낯 익은 얼굴들과 동네 타작마당 등이 심안에 떠오르는 것이었다네. 조금 더 가까이 살펴보니 이번에는  길가의 한 넓은 상가건물이 시선을 붙들더군. 그 곳은 옛 할아버지의 집터였어요. 시선ㅇ르 그대로 둔 채 한 참이나 눈을 깜빡이었더니 어느 새 내 눈 앞에 집 담장의 찔레꽃 넝쿨과 무화가,감나무가 있었던 마당의 고추밭에서 한 복 바지 차림으로 일을 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선명히 떠오르지 않는가!
그 사진은 단순한 과거의 실체를 담은 하나의 자료일 뿐이었다.네 어떤 특별한 감성을 지닌 사진가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비행체의 자동 카메라에 포착된 단순한 지형도일뿐인 것이었어요. 그런 단순한 자료로서의 사진 한 장이 내게 그런 감성의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었네.
오늘 이 사진이 불러일으킨 구강마을의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창동과 나의 관계가 숙명적으로 어떠한 것인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네.
마산의 도심 창동에 가까운 해안가에 산호동이라는 동네가 있다네. 그 동네는 옛날에는 구강이 불리웠는데. 그 마을에 김병조라는 이름을 가진  한 농부기 있었네.  그 분은 조선 말엽 언제쯤인가 충청도 진천의 의성김씨 집촌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남녀 두 동생과 함께 이 곳 마산으로 내려와 정착하였다네. 나의 어머니가 바느질 하시면서 그렇게 이야기해 주시더군.  이 지역에 전부터 정착한 윗대 혈족들이 살고 있었던가봐 그래서 인지, 그 분은 형이 죽자 스무살 이전 사실상 집안의 장손이 되어 직계 선조들의 유해도 함께 안고 오셨다고 했네. 마산 변두리 해안인 가포, 다구앞 바다의 수우섬, 그리고 반동 앞 산에 그 유해가 모셔져 있는 묘소들이 있어요. 그리고 해마다 그 일곱 여덟 군데의 묘소들을 돌보는 일이  나의 책무가 되었고.
하여간 나는 일찍부터 이 창동외곽의 그런 저런 사연의 중심에 들어와 숙명적인 책무를 안고 살고 있으니 오히려  더욱 안도의 느낌을 받았다네. 지금쯤 마산을 벗어난 곳에서 내가 해야할 일을 외면하고 살고 있다면, 아마도 마음을 옥죄는  어떤 죄스럼 같은 것에 시달리며 불면을 밤을 겪고 있을 것이네. 지금의 나이 인데도 해가 바뀔 때면 묘소관리 일로 내 마음은 온통 그 일에 쏠리므로  그런 묘소돌봄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다음해를 편안한 마음으로 맞이하지 못하게 되거든.
어쩌다 보니 <창동인블루 6>에 대한 자네의 서평 한 마디에 내가 이렇게나 길 게 고백하듯 열거하게 되었네. 천주산은 너무 높아 이제는 더 이상 오르지 못하게 되었으나 해안가 마을인 반동의 야트막한 언덕길가에 있는 지금의 묘소들에 오르는 일은 마음과 몸에 생동감이 생기네. 자네는 그 글에서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을 언급했지만, 난 이 풀베는 도구들을 어깨에 메고 낮은 해안가의 능성위의 그 묘소들에 이르면서 그 작곡가의 보리수를 흥얼거리게 된다네.
이제 그만 줄이겠네.
See you



'연작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블 7-9-2  (0) 2019.01.20
창블 7-9-1  (0) 2019.01.20
창블 7-8-1  (0) 2019.01.19
창블7-7-2  (0) 2019.01.19
창블 7-7-1  (0) 2019.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