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창블 7-8-1

jhkmsn 2019. 1. 19. 20:11

덧없는 글의 매혹
1.
덧없는 글의 매혹에 빠진 우리들의 친구, 인문이 '창동인 블루' 6집을 또다시 세상 밖으로  내던졌다. 이번 시리즈의 주제 역시 창동을 무대로 한  지역화가들의 그림에 대한 자유로운 '그림읽기'가 중요한 요소란다.
그는 왜 창동을 벗어나지 못하고 연연하는 갈까?
그곳 창동에는 우리들이 미쳐 알아내지 못하는 많은 희노애락이 주마등처럼 흘러가고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조심스레 짐작해 보지만  소시민으로서는 그곳은 그저 한물 간 도시의 외로운 한구석일 뿐인데 말이다.
필경, 그는 창동에 대한 애착 때문에 그 고물 항아리를 끌어안은 채 '덧없는 글의 매혹'의 굴레에서 미완의 '창동인블루' 시리즈를 유작으로 남길 것만 같은 예감은 나의 지나친 예단일까?
마치 슈베르트가 남긴 의문의 '미완성교향곡'처럼 말이다.

위의 짧은 산문은 지난 달 <창동24갤러리>에서 인물사진전을 생애 처음으로 펼친 아웃사이더 포토그래퍼 제갈선광이 그들의 동기회보지에 실은 ,  인문의 근작 <창동인블루6>에 대한 서평이다. 누가 보아도 인문에게 던진 이 물음을 그 자신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친구의 말 마따나 어찌하여 나는 창동을 벗어나지 못하고 맴도는 것일까 라고.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이 물음이 그에게  마치 대답이라도 되듯 불쑥 떠 올린 것은, 신약서의 한 구절 인 '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몇 장? 몇 절?)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가  자신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하여  그 제목을 그대로 따서 쓴 단편의 소설 ' 탕아의 귀향'이었다. 그가 좋아하였던 글이라 무심 중에 그 이야기가  떠오른 것이었다.
그 소설의 뒷 부분 어딘가 쯤에  그 탕자가 이버지 집에서 자신의 동생(성경에는 등장하지않는 인물이다)과 이런 대화를 나눈다.
.........
.........
동생: 형은 어디에서 무엇을 보았나요?(*수정요)
탕자: .................. 나는 오랫동안  숱한 넓은 땅을 헤매고 다녔다.
동생: 황야인가요?
탕자: 황야만은 아니었다.
동생: 형은 거기서 무엇을 찾고 있었나요?
탕자: 어려운 질문이구나. 솔직히 나 자신도 모르겠어.
...........
...........
동생: 형의 어깨 넘어 뒤쪽 저 벽장위를 한번 돌아보세요.
탕자: 저건 야생석류가 아니냐. 껍질이 벌어져 속이 다 보이는구나.
동생; 저 야생 돌석류는 말인데요. 쓰기는 하지만, 그걸 생각만 해도 우리의 목마름을 금방 달래주잖아요.
탕자: 아, 그렇다면, 이제 너의 물음에 답할 수 있겠다. 황야에서 내가 찾고있었던 것은 바로 그 목마름이었다.
그리고 탕자는 어느 날 낯선 땅의 새로운 공기에 대한 목마름을 어쪄지 못하여   아버지지 몰래 집을 떠나는 그  동생을 배웅해주며 한마디 던진다,
"나는 비록 헐벗음과 허기에 못이겨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지만, 너는  이 형처럼 되돌아 오지는 말아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너의 그 목마름을 어쩌겠느냐." 
동생: 형, 안녕! 
탕자: 굿바이!

뭐, 대강 이런 내용의 그 글이 왜 친구의 물음에 답으로 떠오르게 되었는지 인문 자신도 알 수는 없다. 하여간  그에게 처음엔 하나의 공간적인 틀로 시작된 창동의 개념이 점차 광의의 추상의 개념으로 학대되어오면서 그 개념속에 그런 물음과 막연한  답이 함축되는 것이다.
그가 쓴 ' 창동인블루'는 그 이름 그대로의 창동이 제목아래 엮어진  산문으로   그림평이나 철학적 사유 등이 일기, 편지 또는 전자편지 단편의 소설체 등 여러 형식의 글 속에 녹아 있다. 전체적으로 매우 개인적인 사유의 글이라 일기체에 가깝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창동이라는 한 좁은 공간을 하나의 축으로 삼고 그 주변을 맴돌며 사색한 예술적 물음들을 매일 매일 조금씩 피력해 나갔기에 일기에 가깝다는 것이고, 그것의 절반이 몽상적인 이야기로서 현실속의 사실적 요소와 어울리며 꾸며져 있기에 fact-fiction이기도 한 것이다.
 창동이라는 곳은 비유적으로 그에게는 부모의 품과 같은 인격체이었다. 그 곳이 현실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그의 긴 삶에서 그를 위기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게 한  안식처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그 곳에 있지않았다면 지금의 그가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곳은 그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의미로서의 글쓰기의 행운을 누리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 곳이 아니었다면 그가 그 행운을 누릴 수 있었을까 자주 반문해본다.  모르긴해도 그에게 글쓰기는 실현될 수 없는 동경의 신기루로만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그 말은 그의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그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말과 거의 같은 의미이다.
깊은 노년기에 들어 선 그는 자주  그 인격체에게 진 빚을 갚아 나가는 일이 부모님에게 진 빚을 값아 나가듯, 어느덧 그의 삶의 일부가 되기도 하였다고 말하였다. 그가 삶의 빚을 갚고 싶다는 말 속에는 먼저 창동에서 그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지키며 ,또 자신이 꼭 지켜야한다 믿어 온 의무를 행하며 여기서 삶을 다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글쓰기, 덦없는 글쓰기의 매혹에 운좋게 빠져들다 어느 순간 아침이슬 처럼 홀련히 사라지고 싶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글씀은 그에게 주어진 특별한 은총으로, 그것은  빛과 그림자의 화학적 조화의 결과물이었다. 렘브란트의 그림을 이루는 핵심적 요소는 빛과 그림자의 대비였고, 화가 고야나 마네도 그러하였다.  어느 관람자에 의하면, 그가 고야의 그림이나 마네의 그림을 보다가 그 중 어떤 그림 앞에 섰을 때  그는 검은 색과 흰색의 대조에서 감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프랑스의 산문 작가 장 그러니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빛이 현실의 표현이라면 ,
그림자는 오직 빛이 있으므로 존재하고
빛 또한 그림자에 의해서 만이 그 가치를 지닌다.
마치 액자에 둘러 싸인 하나의 그림같이.
 인문에의 삶에서는 빛으로서 은비늘 반짝이는 유소년기의 아침 바다가 있었고, 그림자로서 청년기의 한  시기에 그가  기약없이 긴 시간 투병자로 은거했던 요양병원의  검은 색 희말리아 시다 숲이 있었다. 전자는 눈앞에 아른거리며 미래쪽으로 길을 열어주는 동경의 불꽃이었고, 후자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그러나 때로는  감미로운 첼로 선율이었다. 그의 회상에 의하면, 자신의 심안에 살아있는 그 둘은 곧 글씀의 샘물이 흘러나오는 수원이었다. 그의 글쓰기를 유도해준 것들, 이를테면, 먼 바다쪽, 화가들의 손, 플라멩코의 유혹, 시베리아의 숲 등이 하나같이  그의 삶에서 지울 수 없는 그 아득한 과거의 샘터에서 비롯되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글은 환하게 밝은 한낮의 담소가 아니라 어둠과 침묵의 아이이다", 라고 한 마르셀 프로스트의 이 표현은 후자의 그 검은 히말리아 시다숲이 왜 그에게 감미로운 바흐의 헌율처럼 흐르는가를 일깨워주었다. 아마도 그 검은 숲이 그에게 없었다면 어둠속에 홀로 있을 때 시작되는 글씀은 그의 내면에서 그저 비실체의 동경으로만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아들에게는, 탕자가 미지의 삶애 대한 목마름으을 가진 동생에게 하였듯이, 아버지의 집이 있는 창동을 벗어나 먼 미지의 땅으로 떠나라고 적극적으로 권고했었다. '너는 아버지가 지키는 이 곳을 잊고 먼 땅에서 자유의 공기를 마시며 너의 삶을 살아라. 그리고 돌아오지 말라'고. 창동이 주는 운명적인 의무의 굴레가 먼 훗날 그의 삶에 어떤  영감의 불빛이 될수도 있을지라도 말이다. 그것은 평범한 아버지로서의 소박한 바램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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