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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름없는 포토그래퍼의 표현주의적 사진 몇 점이 인문으로 하여금 사진을 예술로 바라보게 하는 눈을 갖게하였다는고 앞에서 말한 바 있다. 그 시점이래 그는 사진을 예술로 소중히 여기며 그림과 대비하며 바라보거나 문학적 상상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영국의 포토그래퍼 빌 브란트의 사진 '런던의 밤' 과 데 키르코의 그림 '굴렁쇠' ( 그 제목이 떠올리지 않아 편의상 그렇게 부른다)를 예술적 차원에서 견주며 바라보기도 하고, 에드워드 웨스턴의 사진 '누드'(사진예술 페이지 243)를 펼쳐보는 순간 마티스의 그림 '누드'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기도 하였다.
데 케르코의 그 그림은 현실 속에서 초현실의 정황을 비춘다. 텅빈 거리, 깊은 어둠, 반짝이는 빛, 긴 그림자 속으로 아이 하나가 굴렁쇠를 굴리며 모퉁이를 도는 모습을 통해 "깊은 적막과 우수, 부재의 멜랑콜리를 비춘다." 마치 현실의 심층부에서 건져올린 듯한 초현실적 풍경이다.
빌 브란트의 이 사진, '정전속의 런던'은 거친 톤, "강한 콘트라스트, 예사롭지 않은 구도",여기에 특히 진한 멜랑콜리의 정조까지 더하였기에 초현실주의적이다. 칠흙같이 어두운 도시의 밤,불꺼진 가로등 너머로 반달 만이 뚜렷히 하얗다 음산하기 그지없다. 사진으로 만날 수 있는 초현실의 세계이다.
이에 더하여, 어느 포토그래퍼의 사진, '베레모를 쓰는 두가지 방법'을 하나 더 보자. 이 사진은 2차세계대전후 프랑스에서 찍은 것이라고 하였다. 전쟁 직후의 황폐한 분위기가 흐르는 어두운 신작로에 두 아이가 각가 다른 스타일의 모자를 쓰고 서 있다. 아이들의 무표정한 얼굴들이 조용히 전쟁의 패이소스를 던진다. 이것만큼 깊은 공명을 주는 전쟁의 아우라를 보여주는 것도 드물 것이다. 이는 아이 둘은 곧 실존과 허무의 모습이다.
그런데 인문이 사진에 이끌리게 된 것은 그가 그림세계의 미로속에서 방향감각을 잃고있을 무렵 위와 같은 전후의 실존과 허무를 담은 사진들과 만나면서 였다. 그것들은 그가 젊은 날 탐독했던 보들레르나 까뮈,또는 장 그르니에의 문학적 색채와 동질의 것이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안톤 슈낙의 단상,'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도 쉽지않게 떠오르기도 하였던 것이다. 곧 이 사진들은 그로 하여금 예술성에 대한 깊은 회의감에 빠뜨리던 팝아트를 대신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데키리코의 그림 '굴렁쇠'
*빌 브란트의 사진 '정전속의 런던'
초현실주의화가 답게 그의 작품은 음울한 분위기가 특징적이다.
빌 브라운의 이 사진, '런던의 밤'은 거친 톤, "강한 콘트라스트, 예사롭지 않은 구도",여기에 특히 진한 멜랑콜리의 정조까지 더하였기에 초현실주의적이다. 칠흙같이 어두운 도시의 밤,불꺼진 가로등 너머로 반달 만이 뚜렷히 하얗다 음산하기 그지없다. 사진으로 만날 수 있는 초현실의 세계이다.
어느 포토그래퍼의 사진, '베레모를 쓰는 두가지 방법'을 하나 더 보자. 이 사진은 2차세계대전후 프랑스에서 찍은 것이라고 하였다. 전쟁 직후의 황폐한 분위기가 흐르는 어두운 신작로에 두 아이가 각가 다른 스타일의 모자를 쓰고 서 있다. 아이들의 무표정한 얼굴들이 조용히 전쟁의 패이소스를 던진다. 이것만큼 깊은 공명을 주는 전쟁의 아우를 보여주는 것도 드물 것다가오는 아이 둘은 곧 실존과 허무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