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꼭 아름다움이 있어야 예술인가?', '어떤 요소로 인해 예술과 일반 사물은 서로 다른가?'
등의 미학적 물음들을 마술사 조군은 자신에게 던지듯 중얼거리며 모더니즘 미술에 관한 자신의 견해 일방적으로 털어놓으며 인문에게 동의를 구하는 표정으로 시선을 보내는 것이었다. 이 날 마술 묘기라도 한번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 그가 이 자리에서는 두 손으로 마술사 시늉만 잠깐 할 뿐 미술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이었다. 이날도 그의 관심사는 마술이 아니라 미술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철학자 데카르트까지 들먹이며 , 현대의 모더니즘은 미술의 역사에 있어서 모더니즘은 하나의 중요한 시점을 표시하고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모더니즘 이전까지는 화가들이 인물이나 풍경 또는 역사적 사건을 눈에 드러나는 그대로 재현하고자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대상에 대한 주관적 특징들인, 회화의 평면성, 물감과 붓질에 대한 의식 등이 원근법이나 명암법 등 전통적 회화적 요소를 대체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모더니즘 이전의 미술로 부터 모더니즘 미술로의 이행은, 회화의 모방적 특질들로부터 비모방적 특질로의 이행을 의미했다는 것이다.
조군의 해박한 해설에 인문은 자신도 모르게 두귀를 잔뜩 모으기 까지 했다. 그에 따르면, 모더니즘의 개념이 그 이전의 화풍, 이를테면, 르네상스 화풍, 그 다음의 메너리즘,그리고 그 뒤를 차례로 이어온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태어난 하나의 양식이지만, 이에는 앞 선 여러 화풍과는 특징적으로 대비되는 한 가지 요소가 있다는 것이었다. 즉, 앞 선 화풍 들에서는 모방적 재현 자체의 중요성이 지속되었지만, 모더니즘에 이르러서는 재현보다 이를 위한 수단과 방법에 대한 성찰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른 바, 채색과 화풍에 있어서의 현저한 변화와 더불어 이 모디니즘은 특징적으로 앞선 사조와는 회화적 불연속성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조군은 이에 그치지않았다. 이 날은 이 자리에 함께 한 창동의 화가 이강용의 사유적 추상화와 지역의 원로화가인 윤종학의 기하학적 추상을 비교해가며 두 화가에 대한 비평까지 이어나가는 것이었다. 이강용은 탈춤 등을 모티브로 한 민중미술가로서의 초기 모습에서부터 점차 연륜과 사색을 쌓아가면서 인간의 본질적인 향수와 예술적 민족주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더라는 것이다. 마산의 '도섬', 어시장 앞 부두의 '홍꽁빠 풍경', 그리고 파스텔화의 부드러운 재질감이 잘 나타난 '불상' 등에서 특히 그러했다고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원로화가 윤종학의 경우, 그의 추상은 매우 내밀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기하학적 추상의 형태에 숨겨두고 있다고 말했다. 윤종학은 회화의 양식, 이를 테면 대상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아름다움과 예술의 상관관계가 그의 중요한 관심사였었지, 사회적 고통이나 관심사를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비교적 무관심 했었다는 것이다. 즉, 윤종학의 그림에는, 표현주의 화가 루오와 같은 사회고발적 표현은 전혀 없다고도 하였다.
근자에 이르러 현대미술 탐구에 더 몰입해 온 키다리 마술사의 그런 이론적 해설 자세에 함께 자리한 인문은 마술사 조군의 얼굴을 놀라움과 새로운 시선으로 한번 더 바라보았다. 이것은 아마도 창동예술촌의 입심이 이제 구 세대에서 이론으로 무장한 신세대로 바뀌고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리라. 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그대로 여기 옮겨보면 이러하다:
아마추어 마술사: 인문님, 요즘 건강어떠세요? 윤용님도 잘 지내시지요?
인문: 윤용이나 나나 아무래도 나이도 있으니 건강이 예전같지는 않지. 나는 요즘들어 시내 나들이를 어쩔 수 없이 점점 줄이는데, 윤용은 그래도 그림 전시장에 줄기차게 나타난다고해. 그런데 조군! 오늘 보니 마술에 대한 열정이 좀 시들한 듯 해요. 미술사 공부만 하나봐.
마술사: 아직은 둘을 함게 공부하지만 앞으로는 미술공부에 더 집중하고 싶어요.그래서 윤용님이나 인문의 뒤를 이어, 좋은 '그림읽기'를 이어가고싶습니다.
인문: 그렇지않은 것 같은데. 그 말 속에는 일종의 도전의 칼끝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요. 노인네들 이제 그만 쉬세요,.하는 것 같아요. 아니야. 농담이야. 앞으로 조군은 윤용이나 나와 같은 동네 해설사와는 차원이 높은 비평가가 되어야지. 결혼식 주례사 같은 그림평을 해서는 안되지.
마술사: 인문님의 지당한 말씀,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그래서 할 말은 하고 뾰죽한 말도 하겠습니다. 솔직히, 이 지역 화가 분들은 모더니즘에 관한 개념적 이해가 좀 부족한 듯 해요. 회화적 모더니즘의 요소들, 이른 바 인상주의 이후의 탈 사실주의, 비구상, 표현주의, 또는 추상표현주의 등은, 앞선 낭만주의나 고전주의 시대의 재현적 양식과는, 아름다움과 예술과의 관계에서, 본질적으로 다른 면이 있는데, 그런 점은 간과한 채 구상이니 비구상이 하면서 이 모더니즘 현상을 그저 한 시대의 특징적 양식으로만 받아들이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강용을 향해) 요즘 젊은 화가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는 이선생님의 견해는 어떠신지요
이강용: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르듯) 젊은 조선생이 마술사로서 마술에 대해 그렇게나 깊은 뜻을 담고 있을 줄은.....
인문: (키다리 마술사에 따뜻한 미소로) 조군의 미술비평에 솔직히 귀가 솔깃해요. 이왕 얘기한 김에 이 자리에 계신 이강용선생의 그림세계에도 그리고 저기 벽 한가운에 걸린 김은진 선생의 그림 한점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시게나
카다리 마술사: 뾰죽하게요 아니면, 주례사처럼요
모두들: 그 중간쯤으로
키다리 마술사: 저 그림을 한번 보세요. 모더니즘 전의 바로크적 요소가 특징적이지요.
렘브란트적 명암의 공간감, 안개가득한 화면, 그리고 사실주의적 형태를 이루는 유동하는 선들..... 그 어디에도 모더니즘의 요소는 없어요. 그렇지만 세련된 손길이 빚어낸 도자기의 이미지가 아름답지않아요? 이 카페를 찾는 이라면 속으로 탐내겠어요. 내친 김에 마음에 두었던 이강요 선생님의 그림 두어 점에 대해서도 말하겠습니다. 정법사 앞을 지나다 그의 그림전이 있길래 들어가 만난 작품이었어요. 그리고 인터넷 어디에선가 본 이 작가의 ' 충동시리즈'을 통해서도 보았구요. 이 작가의 그림들은 제 눈에는 모두 치열한 사색의 결과물로 여겨졌습니다. 예술성에서나 깊이감에 있어서도 제 발길을 한참이나 붙들던데요. 그렇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더니즘 관점에서 보면 이 분 역시 지난 날의 시대에 머물며 자기세계에만 만족하는 분 같았습니다.하기야 요즘 새로운 젊은 세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화가들이 시대의 흐름은 둔감한 채 자신들의 손재주에만 의존하고 있음은 사실이지요
인문: (감탄의 눈으로 혼자 중얼거리듯) 이걸 윤용이선생도 좀 들어야하는데.
마술사: (이강용을 향해) 선생님,과거 사회 비판적인 민중미술가였던 분이 사춘기 소녀의 마음이 가득한 어여쁜 꽃을 작업의 소재로 택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이강용:"보기에는 그저 아름다운 꽃이죠? 하지만 이것은 건조하고 강하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야생화예요. 온실화가 아니고 자생하는 야생화." 그의 거칠고 투박한 붓 터치와 두터운 물감이 만나 끈질기고 강인한 야생화가 캔버스에서 재탄생했던 것이지요.
마술사: 그리고 하나 더 물어보고싶어요. 해인지 달인지 구분 안 되는 붉은 원이 하늘에 떠 있고, 야생을 떠도는 표범이 그것을 매섭게 바라보는 사실적 묘사력이 돋보이는 그림도 있구요. 무언가를 항변하고 있는 듯한 동작이던데요? 그 작품의 제목은 '충동에서' 이던데요 척박하고 몽환적이되 아름답고 스산한 분위기의 그림들! 작품 속 장승, 꽃, 표범 등 사물들이 그들의 시선에서 꿈과 현실을 이야기하는 듯했습니다. 민중미술의 사실주의적 시선을 견지하면서도 소멸되는 존재의 운명에서 피어나는 영혼의 불길을 놓치지 않은 낭만주의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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