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창동인블루7-3-1

jhkmsn 2018. 11. 29. 17:44

     3 화가들의 그림세계

-윤종학, 이강용 그리고 카시오페-



     1.
0월 0일, 2018
Dear 카세오페!
며칠 전 이곳 창동 갤러리에서 원로화가 윤종학의 그림전이 있었습니다.
총 20점이 걸려있었는데, 아줌마 한 사람의 이미지가 특징적으로 강조된 탈재현성의 작품, '응시'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눈에 띄던데요. 원근법을 무시한 화면 분할도 특징적이었고, 양감과 명암의 부재 등으로 인한 화면의 평면성도 여전하고. 색채도 둔탁한 편이고.

윤종학 선생과 절친한 박춘성 원로화가는 그에 관하여 "다소 이질적이고 고집스러운 표현력이 윤 화백의 개성"이라고 말하던데요.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을까? 관객들은  뭔가 숨김이 있는 듯한 그 작품 앞에서 그런 궁금증을 가질만도 할 것입니다. 화가는 자신의 개인적인 내면세계를 화면에 그렇게 알듯 모를 듯 드러내고 있는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상지향적인 그 그림 앞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볼까요. 전체적으로 청회색 바탕의 화면에 그려진 데프로마숑된 여인을 중심으로 그려진 배경적 이미지들-나비, 초승달, 꽃병, 하단에  원경으로 그려진  건물이나 집들-이 기하학적 구성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비 재현성이 특징적인 그 화화는 조심스럽게  작가 개인의 내면적 이야기를 표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박춘성 화백이 윤종학을 두고 화가들 두고 '자유분방한 보헤미안 같은' 화가라고 한 말에는 고개가 갸우뚱 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느껴졌을까? 내게는 그가 자유분방한 분으로 여겨지지는 않았거든요. 개인적으로 그 화가를 잘 아는 분의 말이었으니, 그에겐 우리가 모르는 남다른 그런 면이 있나 봅니다.
한 편, 지난 9월호 창원도서관 잡지의 표지에 그의 회화 '동네이야기'가  올려져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추상화로 위의 '응시'보다 훨씬 더 기하학적이고 비재현적이었습니다.  화면은  수직의 두 굵은 직선에 의해 세로로 긴 3개의 면으로  분할되어 있었습니다. 얼핏  투명한 유리벽이 있는 어떤 닫힌 공간이 연상되더군요. 탁자위에 한 화병이 놓인 어떤 공간에서 그 유리벽을 통해 멀리 보이는 (동네집들의 지붕으로 상상되는) 사다리꼴, 네모꼴 또는 세모꼴의 다양한 형태들의 집합체가 들어있는 그 가운데 면에 그런 기하학적 형태와 화병 이미지로 조화 이루는 원과 직선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어쨋거나 눈에 쉽게 감지되는 하나의 물질적 대상이 그 위 그런 여러 기하학적 형태들과 어울려 화가의 ' 동네이야기'가 되었나 봅니다. 
이 화가는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않은  개인적인 이야기가 내면에 많이 숨겨져 있나 봅니다. 그는 전시 때 마다  자신의 내밀한 속내를 들릴 듯 말듯 소곤거려 관객들의 궁금증을 지속케 하는 화가입니다. 
 
그런데 이날 그림전 뒤풀이 자리에서 저는 그림과 관계없는 일로 마음이 혼란스러웠습니다. 함께 있었던  박춘성, 김병규,윤복희, 정은승 등 여러 원로화가들이  그림이야기는 뒤에 두고  바깥세상 이야기에  열을 올리며 너도 나도 흥분하는 자세로 한마디 씩 모습에, 그리고 그들의 주장에  맞장구 치며 한 수 거드는 저 자신에 대해 속으로 여간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래 놓고는 혼자 말로  "어 내가 왜 이래" 하였답니다. 정치이야기하는 화가들을 만나면 , '화가들이 글세 ....'하며  고개를 내저었던 저였잖았습니까? 오래도록 공부한게 국제정치학이면서 결과적으로 정규적인 공부한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림이야기'를  이십년이 넘도록 해온 제가 요즘 새삼스럽게  바깥세상 이야기에 열까지 올리다니요!?
소중한 지면을 한가한  군소리로 다 채웠군요.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See you again




0월 0일
안녕, 문!
뜻밖이군요. 여지껏 사회적 아웃사이더로 그림이야기나 하면서 사시던 분이 느닷없이 세상 걱정까지 하시다니! 마음에 무슨 큰 변화라도 있었던 건가요? 정치적 대립으로  온 사회가 들끓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림읽기' 이외의 다른 일에는 여지껏 무심하였던 분이었으니 좀은 뜻밖입니다. 인문이 정치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여지껏 한번도 없었으니까요.
여기 한국교민들도 새로운 정치적 출렁임에 우려 반 기대 반입니다. 남북한이 머잖아 서로 도우며 평화롭게 잘 어울려 지낼 날이 머잖아 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에 여기 교포들 중 어떤 이들은 큰 기대감으로 심지어 짐 싸들고 귀향하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대다수는 우려의 마음이 더 강합니다. 아침에 한 약속, 저녁에 이를 뒤집는 북한집단을 어찌 믿을 수 있나 하는 의심이  노년기 1세대의 마음에 깊게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영어에 익숙하지 못하니 보고듣는 일을 한국말로 된 신문이나 방송에 의존하며 살고 있으니. 아유, 여기나 저기나 골치 아픈 세상 이야기들! 
윤종학 화가를 생각하니 담박 이 곳 뉴욕의 잭슨폴록의 물감뿌리기 그림이  떠 오르는 군요. 저도 윤선생님의 그림에서 화가의 시선이 항상 바깥 사회보다 내면의 자아로 향해 있는 내향성의 화가로 여겼습니다. 특히 그분의 기하학적으로 정형화된 추상은  이성적 사고와 논리적 판단에 따른 긴 시간의 창작행위를 거친 결과물인데,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철저히 즉흥적인 감성적 행위의 결과물로 비정형의 극치이거든요.
그렇지않아요?
참 ,제가 이번 회신에 꼭 담아알려줄 일이 하나 있습니다. 8년전 315 의거김용실 열사추모 공연 장면이 담긴 유트브를 이 곳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무대에서 진행을 맡았던 공연이라 어떻게나 놀랍고 반갑던데. 그런데 그 녹화된 방송 화면에 어찌 진행자인 나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더군요. 인문도 몇 장면 스쳐지나듯 나오고. 혀여간 전 그 때  인문과 같이 한 그 공연일에 마음 들떠 있었고 행복했었습니다.
그때를 회상하며,
카세오페


창동 황금당 골목 앞에 '의자가 있는 카페' 개업식에서 였다. 창동예술촌에 입촌해 있는 도예작가 김은진과 화가 이강용, 그리고 인문이 한 자리를 이루고 있는데 먼저 와 있던 아마추어 마술사  조군이 이들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며 좀 있다 합석하겠다며 다시 안쪽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조군은 카페 주인의 요청으로 이날 개업식전에 간략한 마술을 하나 선보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조금 후  가짜 수염을 단 조군이 근사한 마술사 복장으로 임시로 설ㅍㅊ한 간이 무대에서 아래의 짧은 마술을 하나 선보인 후 다시 이들의 자리에 돌아왔다.
*마술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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