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창동인블루7-2-2

jhkmsn 2018. 11. 22. 07:38

2.
지난 13,4년전 북마산 가구거리의  카페 '시와 자작나무'에서 <천상병의 시 귀천을 플라멩코춤으로> 라는 제목아래 풀라멩코  해설을 곁들인 시 낭송회가 있었다.  바다보다  슬픔이 더 깊다는 집시춤인 플라멩코의 깊은 춤을 통해 그 시를 느껴보고자 마련하였던 자리였었다.그 자리에서 카시오페가 시를 낭송하였고, 학야라는 이가 플라멩코 춤 영상물을 TV 스크린으로 보여주며 "시는 순수한 춤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말을 주제로 삼아 해설했었다.  천상병의 '귀천'은 마산 사람 대부분의 귀에 익숙하다. 학야도 이 시를 퍽이나 좋아했었다. 그 시를 읽으면 플라멩코 댄서 에바 예르바부에나의 독무가 떠오른다며  그 영상물을 준비했었던 학야는 댄서 예르바부에나의 그 깊은 춤은 시인의 영혼을 달래주는 춤이라고  해설했었다. 샘물 흐르듯 시작되는 그 시 첫행은  다 아는 바 처럼 이러하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으로 잡고..........' .
이 시가 카세오페의 고운 목소리를 타고 빠르게 흘러나온 뒤에 학야가  이를 받아 그 자리에서  자신이 미리 써놓은 '떡갈나무 아래로'라는 싯적 표현의 글로 그 시에 응답하였다. 이 단상은 앞에서 천주산 고개마루에서 노인이 두 젊은 국악인과 더불어 가진 대금산조 연주회에 등장하는 그 떡깔나무를 담박에 떠 오르게 한다: 
"떡깔나무 아래로"
낙옆 더불어 부드러운 흙으로 돌아가리라.
자연의 삶은, 인간의 삶은, 잔혹하다고 말하지 않으리라. 나르는 새들, 먼 길 떠나기 전 먼저 병든 벗새 쪼아죽인다고 말하지 않으리라.
떡깔나무 아래로 낙옆 더불어, 바하의 첼로 서곡 더불어 육신의 생명 녹아 원래 그대로 소리없이 돌아가리라.

그런데  여기 등장하는 학야라는 이는 우리들이 창동인이라 부르던 그 인문이다.  당시에 서예가 변율관 선생이  그를 두고 부른 별칭이었다. 창동 골목의 만초에선가 아니면 문여사의 고모령에선가에서, 고전무용가 이필이 선생, 서예가 변율관, 영문학자 장자봉 교수,  미인도 화가 김대환과  그리고 카시오페와 더불어 가진 술자리에서  율관 선생이 인문에게 학야라는 호를 하나 붙여주며 그렇게 불러주자고 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천주산의 그 노인은 곧 그 학야이다. 당시에도 학야는 무의식중에도  천주산의 그 떡깔나무를 내면에 늘 지니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자신도 나중에 그  '스무살의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자신이 돌아가야할 곳으로 부지불식간에 여기고 있었던 게 아닌가 그렇게 여겨진다. 
 
그 때  인문을 학야라 불러주던 이들은 지금은 창동에 남아 있지않다. 미인도의 김대환은 노환으로 자신의 집에 칩거하였고, 이필이, 율관, 정자봉 등 인문의 소중한 선배들은  더 이상 이 세상의 분들이 아니다. 그리고 카시오페는 창동을 떠나 먼 곳으로 가 산다.
카시오페의 그림은 한 눈에 마티스의 분위기가 더러나는 그림이었다. 재현적 형상이나 묘사적 풍경과는 거리가 먼 ,갑각류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선의 동세, 거침없는 데프로마숑의 여체 누드의 선, 그리고 야수파적 원색의 화면! 그녀의 환한 미소가 인문의 시선을 붙든 것은 그녀의  그런 분위기의 어느 유화앞에서 였다. 그때 이래 둘은 지역화가들의 모임이나 전시회 등에서 한 사람은 화가로, 다른 한 사람은 인터넷이나 신문에  그림에 관한 글을 올리는 자유기고가로 자연스럽게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그러던 중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주던 그녀가  어느날 그 환한 미소를 남겨둔채 홀련히 창동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인문이 그녀로부터 그 첫 메일을 받은 것은 그녀가 창동을 떠난 지 근 3년 만의 일이었던 것이다.

0월 0일 2018
Dear 카시오페
지난 달  받은 그 오랜 만의 메일과 카세오페님이 그냥 서울  다녀올 것처럼 See you! 하고 떠난 그 날 사이에는 3년이라는 넓은 시간의 강이 가로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강의 폭은 점점 더 빠르게 넓어지겠지요.  세월은 그렇게 제게는 점점 그 폭이 넓어지고 있는 무언의 강입니다.
미국의 플라멩코 댄서 로레나와 저 사이의 세월의 강은 이보다 더 넓고 깊습니다. 10여년 이상을 만나지는 못했던 그녀와 이제는 메일 조차 1년에 한 두차례 인사 치례로 나누는 정도입니다. 지난 날 플라멩코 댄서로서 내 혼을 뒤흔들던 그녀와 제 사이의 그 그 무심한 세월의  강폭은 이제는 더 급속히 넓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내 안에 노화현상이 신속히 일어나고 있음이  감지됩니다.  천주산의 그 대금산조 연주회도 ,말하자면 신체적인 이런 변화에 대한 피할 수 없었던 일종의 반응이었습니다.  몸이 마음보다 앞서 미리 그런 변화의 신호를 보냈기에 그렇게 결행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여겨집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여름의 긴 늦더위는  제게는 혹서였습니다. 체질적으로 에어컨 바름을 싫어하는 제게는 적응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웟던 여름이었습니다. 이번 여름 이후이래 저는 창동나들이보다 집 서재에 머물며 회상과 몽상하는 날이 더 많답니다. 
아무러나 이번 메일엔 윤종학의 추상세계에 대한 느낌을 피력할 겸해서 메일을 열었는데 엉뚱하게도 내 개인적인 이야기로 그만 지면을 채우고 말았군요. 다음에 소식 보낼 때 이 곳 창동에서 요즘 잘 나가는 김은진 도예가, 카세오페가 잘 모르지만 새롭게 창동에 등장한 제갈이란  사진작가를 비롯한 여러 창동예인들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그럼 편안히 지내시기를!

 

0월 0일
Dear 문
올 여름 그곳 무더위 기약없이 길었다면서요? 뉴스로 보고 듣고 했읍니다.  에어컨 바람에 민감하신 문님이니 하루 하루 견디기가 오죽이나 힘들었겠어요?  짐작이 갑니다.
최근에 전 이곳의 한 전시장에서 마르셀 듀상의 '샘'과 라우젠버그의 '모노그램'을 보며 화가로서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 샘'은 제가 창동에 있었을 때에 여러 화가들 사이에  그런대로  '새로운 의미'의 충격으로 받아들려졌었던 작품이었지만 이 '모노그램' 앞에서는  머리가 혼란스러웠어요. 창동에서도 젊은 대학생들이 그런 류의 그림을 선보였던 걸 제도 기억해요. 솔직히 그 때  전 속으로 저런 지저분한 '짜집기'를 그림이라고 전시하다니! 했었답니다.
이 '모노그램'을 보면, 그 바닥에는 나무판자에 신문이나 잡지에 난  잡다한 사진 또는 그림을 붙이기도 하고, 군데 군데 거친 붓질 흔적도 남겼습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기성품인 자동차 티이어에 박제 염소를 끼웠습니다. 염소 머리에는 덕지 덕지 물감을 발랐구요.
글쎄요.. 여긴 이런 것들이 팝 아트라고 불리고있는데, 만화같은 러턴 스타인의 '키스'는 나 워홀의 '마르린 몬로'는 여기선 인기높은 대중예술이랍니다. 인상주의나 야수파 그림들 그리고 표현주의 작품들 같은 유럽의 현대 회화 분위기에 익숙한 저로서는 이런 것들도 예술이라고 불릴 수 있나 싶습니다.
그 쪽엔 이제 청자빛 하늘을 볼 수 있겠네요. 여긴 하늘을 제대로 느낄 수 없습니다. 비좁게 선 고층건물들 머리 사이로 조각난 하늘만 보이는데다 요즘은 날씨마저 변덕스러워 가을 하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합니다. 티없이 고운 시골의 가을 하늘이 그립습니다. 코소모스 꽃이 하늘그리는 들길이 그립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기를!
뉴욕의 라파이에트 거리에서
카시오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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