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허튼과 창동
*카시오페가 뉴욕의 <Sylvia & Po Kim>미술관에 걸린 한장의 사진- 인문 포김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인문에게 보낸 안부 이메일을 시작으로
1.
0월 0일, 2018
Dear Mn
안녕 하세요? 카시오페입니다.
창동에서 여전히 잘 지내시죠?
몇 년을 무소식이던 사람이 느닷없이 왠 소식인가 여기실 것 같아 좀은 서먹합니다만 이렇게 먼저 안부드립니다.
Mn에게 꼭 알려드리고 싶은 게 있어 메일을 열었습니다. 게다가 솔직히 창동소식도 궁금하고해서요. 제가 10여년 이상이나 행복하게 몸담았던 창동이 문득 문득 생각도 나r곤 해서요.
저는 지금 뉴욕의 맨해튼에 와 있습니다. 몇년전부터 서울과 뉴욕을 왕래하며 지내고 있습니다만 올해 들어 죽 이 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미국시민권자인 아들이 이곳 라페에트 가에서 공예품 상을 하고 있거든요
제가 어제 이 거리에 위치한 The Sylvia & Po Kim Art에서 전시중인 ‘A Time Before We Are Born’ 그림전에 들렸더가 뜻밖에 Mn의 사진을 보게되었습니다. 그 곳 학예사 사무실 벽에 뉴욕의 화가 Po Kim(김보연)과 두 분이 거창에서 나란히 선 그림입니다. 오래전 그 분이 Mn의 주선으로 그가 자신의 고향 거창을 방문했었잖습니까? 어떻게나 반갑던지!
겸해서 이 기획전의 분위기도 한 토막 들려드립니다.
This exhibition looks at how painters have drawn on existing mythologies, as well as inventing their own, to create visions of lost (or maybe promised) paradises, visual songs of innocence and experience that transcend periods and cultures, speaking to a deeply imbedded human need for images of hope and harmony. 이처럼 전시된 그림들의 주제는 제목 그대로 ‘아카디아의 동경’입니다. 마티스의 그림 ‘사치, 고요, 안락’이나 고갱의 그림 타히티 섬의 낙원풍경이 연상되는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마티스는, 그의 색채나 형태들은 Mn과 제가 공감하고 감탄했던 예술적 요소 였었으니! 이곳 한국인 큐레이터와도 마티스 예술세계에 관해 긴 시간 대화를 가졌었습니다. Mn과 Po Kim의 만남에 대한 일화도 들려주었구요.
혹시라도 귀가 솔깃할 소식 있으면 보내주세요.
건강히 지내시기를!
맨허탄의 라페에트가에서
카시오폐.
0월 0일, 2018
Dear 카시오페!
와! 이렇게 반가울 수가! 그동안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습니다.
거침없는 편지 글 흐름 보니 케시오페님의 활달하심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구나 싶군요. 전 지난 날보다 못합니다. 원래 튼실치 못하였던지라 세월 따라 이제 나들이보다 집에서 지내는 게 점점 더 익숙해집니다.
우선 저에 관한 소식부터 하나 전해드릴게요. 지난 주 대금산조 연주회를 제가 주선하여 열었습니다. 장소로는 인적 드문 천주산 정상 아래의 한 능선이었습니다. 대금주자와 고수, 그리고 1인의명의 관객, 이렇게 세사람으로 이루어진 특별한 연주회였었지요. 물론 그 1인의 관객은 저였고요.
실은 제가 거의 반평생동안 1년에 한번은 그 곳으로 올랐습니다. 추석을 전후하여 오르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한 겨울 눈이 쌓일 때 쯤 오르고도 했습니다. 아주 드물게 진달래 꿏이 피는 3월에 오른 적도 있었구요. 그렇게 거기 오르는 일은 제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잊지말아야할 분들이 거기에 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친 할머니 한 분과 아버지를 키워 주신 할머니가 계신 곳이지요. 그리고 나중엔 친 할아버지와 부모님마저 그곳으로 옮겨와 계시구요. 이제 혼자 그 곳으로 오르는 일이 무리임을 깨닫고 그날 그렇게 작별의식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나이 70을 넘어선 지금이라 허허로운 심정으로 그렇게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 개인적인 이야기는 그렇습니다.
그저께 삼진미술관에서 창동예술촌의 화가 정순옥의 그림이 눈에 띄었습니다. 현재호 그림의 구도가 연상되는 그림을 그려오던 정작가의 그림에서 새로운 변화를 느꼈습니다. 그건 마산의 앞바다가 연상되는 추상의 회화로 r 색감이나 형태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창동의 금감미술관에 전시된 정작가의 어시장 풍경 앞에 한참이서 서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현재호를 그렇게나 좋아하더니 이제는 스스로 화가의 길로 쉼없이 걷고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강용의 ㄱ림이야기도 한마디 해야겠군요. 그의 ‘도섬’과 ‘홍콩 빠’는 마산 앞 바다에 대한 향수를 물씬 풍기게 하더이다.'격식이 없고 자유스럽게 해방춤을 추는 남자와 그 주위에 피어오르는 무지개와 불꽃을 희망적으로 나타냈다'는 파스텔 유화 한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받은 반가운 메일인지라 마음이 좀 들떠 회신에 이렇게 두서없는 말을 많이 담은 것 같기에 오늘은 여기서 인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다음엔 아무래도 이강용화가에데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보낼 것 같습니다. 그 화가의 그림들이 자꾸 마음에 떠 올라 그렇습니다.
시요 어게인
문
0월 0일, 2018
Dear 문
산조 가락이 바다 건너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자의 귀에 까지 잡히는 듯 합니다. 거친 풀잎과 야생초로 뒤덮힌 산마루의 그 대금연주 장면은 있을 법 하지않는 초현실주의적 풍경을 이루는군요. 새소리를 실은 첫 진양조의 느린 가락은 아마도 바람을 타고 그 아래 숲 속의 산새들이나 다람쥐들의 귀에까지 번져나갔을 것 같네요. 2인의 젊은 연주자와 1인의 노인 관객만이 자리한 넓고도 높은 가을 산등성이! 허허로우나 더 아름답네요.
인문님! 창동 화가들의 그림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하시군요. 지난 십 수년간 지역 화가들의 그림싶어하는 마음이 어찌 그리 한결 같으신지요? 제가 창동지역에서 생활할 때 보았던 인문의 그 '그림읽기'가 지금도 이어지나봅니다. 이번에는 또 새로운 인물들을 모색하나보죠? 정순옥은 저도 오래전에 현재호 그림전에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이강용의 그림은 저도 궁금하네요. 그 화가의 그림에 담긴 한국 농민의 치열한 전통춤 형태의 추상화? 그의 작가적 내면성이 어떤 형상으로 표출되었는지 쉽게 연상이 되진 않네요. 그의 그림세계에 대해서는 다음에라도 꼭 좀 알려주세요
전 이 곳 뉴욕에서 자연스럽게 미국의 회화를 자주 접하면서 미국적 회화세계에 호기심도 동하지만 화가인 저로선 솔직히 당황스럽기 조차 합니다. 잭슨 폴록의 드립핑 추상표현주의나 앤디 워홀의 상업적 복제형 이미지들이 특히 그렇습니다. 만화의 한 작면 같은 눈물도 그렇구요. 이 그림들은 솔직히 예술에 관한 저의 기존 관념을 마구 흔들어놓습니다. 제게 익숙한 화화는 주로 파리의 화가들, 이를테면 제가 심취했던 마티스나 다른 야수파들의 그림들이었잖습니까? 칸딘스키의 추상화의 경우, 그림속의 다양한 선들의 움직임에서 정서적으로 예술적 아름다움을 불러 일으키잖아요.
여기 포킴 아트 미술관에서 전시중인 그림들은 그런대로 파리의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이해되는 회화분위기를 띠고 있어서 크게 낯설다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만. 이곳 맨해튼의 여러 갤러리에서 자주 눈에 띄는 어떤 그림들은 노골적으로 세속적입니다. (*예술의 종말 참조할 것)???????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좋은 시간 보내시기를!
라파이에트 가에서
카시오페
0월0일 ,2018
Dear 카시오페
요즘 제가 관찰하고 있는 이강용 그림과 카시오페의 그림의 회화분위기와는 좀 상반됩니다. 카세오페는 마티스의 그림에서 처럼 평화로움과 고요함이 묻어나는 탐미주의적 분위기라면, 이강용의 그림에서는 어떤 사회저항적 치열함이 느껴집니다. ?제목의 추상화는 횃불을 연상케하는 1인장구춤이 그 모티브인데, 자유를 향한 저항의 몸짓을 표현한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그는 마산 앞바다에 대한 회상이 깊은가봅니다. '홍콩빠'라는 그림은 마산의 수출경기가 좋았던 지난 시절 노동자 계층의 젊은이들로 북적되던 바닷가의 선술집들을 아련한 회상으로 재현해 놓았습니다.
마산 앞바다의 작은 섬인 도섬 역시 그에게는 그리움의 대상인 것 같습니다. 그 화가는 혹시 이 도섬은 작은 호수같은 바다에서 얼마나 갑갑할 까 이런 안쓰러움에서 그 섬에 자유를 찾을 수 있는 마음의 눈을 담아주고 싶어 저렇게 그려주었을까, 불현듯 그런 생각도 듭니다. 산으로 가로 막혀 좀은 갑갑한 바다이거든요. 이 바다엔 먼 수평선의 전망이 허용되지않습니다.
그의 '도섬'을 보면서 마치 이는 내면을 향한 눈동자 같다는 생각도 퍼뜩 들드군요. 이 바다는 큰 바다로 이어지는 통로가 좁아 해류가 자유롭지 못하므로 탁하기 쉽거든요. 깊이있는 색감과 단순한 형태로 재현그려져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어쨋거나 젊은 시절의 사회적 분노를 주로 형상화했다는 그에게 이런 미학적 내면이 있었나 싶었습니다. 난 전부터 남해의 매물도를 좋하했습니다. 그 섬에 오르면 이 곳 남해에서는 제일 멀고 넓은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이르는 아득한 안개띠를 만날 수 있었거든요.
어쨋거나 그의 다른 그림에서 뭔가 끌리는 게 있으면 또 메일에 담아 보낼께요.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아디오스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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