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창동인블루7-1-2

jhkmsn 2018. 11. 21. 09:06

                              2.

“정선생, 그동안 만나고 싶었습니다.”
“저도 뵙고 싶었습니다. 그간 건강히 지내셨지요? 지난 번 보내주신 판소리-플라멩코 공연 자료, 고마웠습니다.”
“정선생과 여기 고모령 연여사가 서로 잘 아는 사이라니 세상 좁긴 좁아요.”
“그렇지요, 마산 대동제 행사에서 뵈면서 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은 서로 아는 사이라니, 정신생은 이제 꽤나 유명해졌나봐요.”
하며 연다랑도 둘 사이에 끼어 들었다.
“얼마전 우연히, 정말 우연히 처음으로 정선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주 특별한 곳에서.”
라고 하자, 연대랑은 호기심을 동하여,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데요?“ 하며 노인에게로 시선을 돌려렸다.
“말하자면 좀 길어요.”라고 노인은 운을 떼고는 이어서, “ 계곡물 소리가 요란한 달천 계곡의 넓은 바위 위에서 만납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라는 말은 좀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내가 숲속 계곡물소리 사이 사이에 새어 나오는 누군가의 소리에 숲 속을 헤집고 그 바위 쪽으로 살금 살금 접근했으니까요? 정선생, 내 말이 맞지요?”라는 말을 추가하였다.
“그랬습니다. 그 때 계곡물 소리가 요란하기도 했거니와 나도 소리연습에 몰두하느라 선생님이  가까이 다가오는 걸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얼마 후 인기척을 느껴 뒤로 소리를 중단하고 뒤돌아보았더니 글쎄, 웬 노인이 등뒤 작은 바위에 앉아 계시지 않았겠습니까! 젊은 분이었다면 아마 나도 모르게 경계심이 났을 겁니다. 참, 우연한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제게 소중한 만남이기도 했구요. 제 소리에 끌려 그런 외진 계곡 밑으로 숲을 헤집고 들어오신 분이었으니!,” 라고 정영자도 그 때의 상황을 떠올리며 답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이어 말을 이었다.

 "이렇게 선생님을 다시 뵐 수 있게 되다니, "
“ 이겸 저겸 정선생과 자리 한번 갖고 싶다고 내가 여기 연다랑여사에게 부탁했었지요.”
“ 저도 선생님이 우편으로 보내주신 책이랑 팜프렛 받고는 한번 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때 마침, 그저께 연다랑 언니의 전화 받았습니다.” 
  노인은 잠시 머뭇거리다 연다랑과 그녀를 차례 차례로 바라본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실은 긴히 의논할 일이 있어서요. 소리 한 대목 부탁 좀 할까해서....”  
     
앞에서 말한, 천주산 재에서의 그 대금산조 연주는, 앞서 이렇게 그 노인이 지역의 소리꾼 정영자에게 판소리 한 소절을 부탁한 게 그 계기였다. 노인은 그녀에게 천주산의 그 재에 올라 심청가라도 한 대목소 소리해 달라고 요청한 게 그것이다. 그리고 그는 거긴 여간 높은 곳이 아니라, 게다가 청중이라곤 자신 혼자가 전부라고 했다가, 혼자말처럼 아니지, 풀과 나무도 그리고 산새들도 있지 하며 멋 적은 듯 머리를 긁적이었다. 그녀는, 희한한 공연이 될 것 것 같기도 하나 별 어려운 일은 아닌 듯하여, “그렇게 하지요”라고 답하였고, 노인은 이에  “그럼 날짜가 정해지는 대로 알려주겠다”고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소리로는 심청가 중에 심청가의 ?은 어떨런지요?", 하였다.
노인은 일전에 그녀를 달천계곡에서 처음 만나 들었던 소리가 바로 그 소리였던 것이다. 정영자는," 그 대목은 현재 계속 연습중이고. 아직은 몸에 익지않았습니다. 춘향가 중 이별가 대목이라면 제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라고 답하자, 둘의 대화를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만 있던 연여사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도대체 무슨 사연으로, 그런 부탁을?”.
이에 노인은 알 듯 모를 듯한 모호한 말로 답하였다.
“이제 더 이상 그 높은 산등성이에 오를 수가 없을 것 같아, 하직 인사라도 할 요량으로.”
연여사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직인사라니 누구에게요?”
노인은 한 참 궁리한 다음, “ 거기 계시는 한 새댁에게요.”라고 답하였다.
연여사는 궁금증이 더욱 커져, “어떤 새댁이 거기 계시는데요?” 하였다.
노인은, “ 20살의 저의 할머니입니다.”, 라고 답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였다.
“ 죽은 자와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기에 그렇게라도 해서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려는 뜻이구려” 하고는 “그렇다면 그런 높은 재에서는 말로 이루어지는 판소리보다 가락만 울려퍼지는 산조가 더 낫지않을까요? 그런 깊고 높은 산속에서라면 사람보다 산비들기나 다람쥐가 더 좋아할 만한 대나무나 바람소리가 더 나을 것 같거든요.”하였다.
“그럴까요?”
“이미 만들어진 말이나 글로서 어떻게 선생님의 그런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겠어요?”
정영자도 산조가 판소리보다 노인의 구상에 더 어울리겠다며 연다랑의  아이디어를 거들었다.
" 판소리나 산조 둘도  슬픔의 눈물단지 깨어짐과 뒤이은 희열의 벅차오름을 야기하는 소리들입니다. 그런데 좀 더 냉철히 생각해보면이지만,  판소리는 그 중심이 이야기 들려주기에 있지만, 산조는 가락과 장단 만으로 그런 세계를 유도해줍니다. 산조가 탈언어적 표현이라는 점에서 보다 근원적이지요."

이런 대화 중에 노인은 불현듯 아래의 한 구절(장 그러니에의 산문에서) 이 연상되어 그 자리에서 대금산조를 판소리 대신 선택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그 어떤 무엇도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말도, 행동도, 이미지도, 꿈도,........
하지만 때때로 하나의 외침소리가 우리를 해방시켜준다“

세 사람이 이렇게 저녁을 보내고 있는 이곳 고모령에는 작가 미상의 초상화 한 점이 걸려있다. 그 인물화에는 현실과 맞닿은 어둠이 얼굴에 넓게 깔려있고, 그 얼굴 한 부분은 대조적으로 빛을 가득히 받고 있다. 빛을 받고 있는 다소곳한 표정은 티없이 곱고 선하다. 고와서 슬프다. 이 색조는? 그렇다. 저건 판소리 계면조의 색조다! 누구의 손이 그려낸 것인지는 알수 없으나 모르긴 해도 이건 렘브란트가 그린 빛과 그림자의 초상화에 깊은 인상을 받은 자의 솜씨임에 틀림없다.
이곳은 근자에 이르러 노년기의 두 창동자유인이 드나든다. 영시를 전공한 김정규 교수와 전상윤 테니스 해설가가 그들이다. 워즈워스의 무지게를 읇조리는 전자는 현학적 언어의 유희로, 몸은 소인이나 마음은 대인은 후자는 친화력이 넘치는 유머로, 창동 골목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창동예술촌의 화가들을 부러워하는 그들은 이곳의 어느 예인보다 더 예인답다. 덜 세속적이다. 두 자유인은 남에게 뭔가를 얻으려 하지 않는다. 그냥 주고 싶어한다. 두 자유인이 건들거리며 이 곳 고모령의 지하공간으로 들어서면 주인 연다랑은 머리를 메만지며 환한 미소로 밎이한다. 
원래 고모령은 창동예술촌의 외곽에 있었다. 문자연 여사가 주인이었던 그 곳은 창동의 예인들의 아지트로 그들은 빈 호주머니로도 드나들었던 주점이었다. 당시 그 곳 주인은 문자연이었다. 그 때 어시장의 화가 현재호와 창동 허새비 이선관은 그 곳에 드나드는 손님들로부터, 그리고 주인으로부터 특별 대접을 받았던 인물들이었다. 술값 걱정 없이 술을 마실 수 있는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그 둘이 대접 받는 밥과 술은 그냥 공
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 말은 주인과의 일종의 물물교환이었 것이다.
현재호의 경우, 즉석에서 드로잉한 그림 한 장이 그날의 술값이었던 셈이고, 이선관의 경우, 술잔 든 채 허공으로 던지는 어눌한 시낭송이 곧 자신의 술값이었다. 옛 남성동 곁 창동갤러리에 걸린 현재호의 ‘초록색 누드’ 소품 한 점이나 이선관의 시 ‘애국자’는 문자연의 고모령에 주시만 되면 그들이 빈주머니로 드나들던 시절에 태어난 것들이다. 그때 그녀는 손이  아름다웠던 , 예인들의 큰 누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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