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의 '마산만'과 '창동거리'
인문은 최근 흐려진 시야로 인해 의외로 삶에 새로운 의미를 맛본다.
그가 일주일에 한두번 꼴로 찾아가는 창동길과 마산 앞바다가, 눈이
좋을 때는 시각적으로 느끼지 못했던, 싯적 회화의 풍경이 된다.
지금의 바다는 ,공장 폐수와 생활하수로 탁해진 해안의 바다물빛은,
기억속의 유소년기의 푸르른 옛 바다로 보이는 것이다. 그 옛 바다는
그 소년의 기질에 꼭 맞아 그 눈부신 은빛 반짝임의 잔물결은 눈에,
새벽녘 수많은 청둥오리떼들의 날개짓 소리는 귀에, 밀물때마다
훈풍에 실려오는 갯벌내는 소년의 코에 익어 있었다.
소년은 베게 너머 가까이 들리는 잔물결 소리에 잠을 깨고 반쯤 감긴
눈으로 여명의 바다와 마주했었다. 그 바다에는 계절마다 소년에게
선명히 구별되는 빛깔과 소리와 그리고 내음이 있었다. 소년은 무엇보다
햇살을 담뿍 안은 겨울의 늦은 아침 수면이 마당 높이에까지 오른
햇살가득한 수면의 은빛 반짝임을 제일 좋아했었다.
인문이 흐릿해 진 시선으로 바다를 바라보면 건너편 멀리 떠있는
대교가 눈에 아른거린다. 그 대교가 떠 있는 반짝이는 해면은, 옛날엔
멸치떼를 뒤따라 온 '물치'라는 이름의 덩치 크고 순한 고래가 한 두 마리
드나들던 먼 바다쪽으로 열린 물길이었다.
창동은, 네온불빛이 넘처나 경박해진 초저녁의 창동거리는, 언뜻 언뜻
흐릿해진 시선 앞에서 고골의 네프스키 대로의 야경을 연상케하는,
번성한 도심으로 둔갑하는 것이었다. 최근 들어 한번은 창동 골목길에서
마주친 어릿광대 배우 차림에다 이국적인 모자를 쓴 젊은 이가, 인문이
오래전부터 상상으로만 만나곤 하였던 해믈린의 마적수로 연상되어
순간적으로 가슴 뛴 적도 있었다.
지난 날 인문은 토요일 오후면 창동에 나와 인파의 물결에 휩쓸리기를
좋아했었다. 젊은 인파의 리듬을 타고 걷다보면 삐꺽거리던 자신의
'정신적 기계'가 다시 활력을 얻게 되고. 창동거리를 누비는 젊은 이들의
행복한 웃음과 방자한 몸짓, 그들의 호기심을 끄는 거리화가들의
초상화 그리기, 그리고 학문당 서점 맞은 편 레코드 점에서 흘러나오는
탱고 리듬의 기타곡 등등. 인문으로서는 그런 창동에는 가물거리는
매혹의 과거와 기억에 뚜렷히 남아있는 뼈저림의 과거가 스며있다.
창동과 그 앞 바다는 둥구나무고, 자신은 가을바람이 땅에 뿌릴
나뭇잎 하나이다. 가을이 깊어지면,자신은, 한 잎 나뭇잎은 ,
그 나무 아래 흙으로 되돌아가 그 둥구나무의 일부가 되리라.
그는 눈이 흐릿해지기전에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지금 그는 그 바다를 바다 아닌 곳에서도 만난다. 그리고 그 창동의
초저녁을 한낮에도 보고 싶으면 본다. 창동 갤러리에서, 그리고
인터넷으로 ,그 바다와 창동을 본다. 한 화가의 그림을 통해,
실재와 비실재의 혼재로 아른거리는 그 둘을 만난다.
'20여년 동안 항상 혼자서 들로, 바다로,
산으로 회화적 탐색자로서 나돌아 다니며,
산에 가면 새가 친구가 되었고 ,
바다에 가면 파도가 친구가 되었다'는
창동예술촌의 화가 이용수의 풍경들을 통해
그는 회상속에 담긴 그 바다를, 그리고 그 창동을 본다.
"오직 하나만을 소망할 때,
그리하여 다른 많은 것들에 무심할 때,
마음은 순수해진다."
다른 많은 것에 무심하였던 이 용수의 푸른 '바다'는 순수하다.
이용수의 '창동거리'는, 실체와 비실체의 혼재로 이루어져있다.
그의 '창동거리'에는 실체의 선이 없다. 실체의 아른거림만 있을 뿐이다.
그의 무심함의 긴 방황이 마음에 심어 준 회화적 탐미성으로 인한 탓이리라.
회상의 풍경 ,
이룰 수 없는 동경,
캔버스에 담긴 것은 그런 것이다.
잔잔한 햇살을 듬뿍 받은 ,때로는 함박눈 내리는 부두.
네온의 신비한 불빛의아래 신화가 되어가는 창동의 저녁길,
등등......
대상의 형태는 전통적인 원근법에 기초하고 있지만,
붓의 터치는 인상주의적이다. 그래서 실체가 없다.
슬쩍 묘사한 대상은 서술적이 아니라 회상적이다.
푸른 빛이 가득한 바다 먼 곳에 무중력으로 떠있는 듯 서있는 긴 대교와
앞쪽 한편에 녹색, 노란 색 붓터치아래 드러나고있는 작은 선박들이
풍경의 회화적 균형을 잡아준다. 그 실체는 형태의 선이 아니라,
색깔과 빛과, 엷은 푸른 빛 대기의 조화로 그려져있다.
인문은 한 화가의 인상주의적 풍경을 통해 지난날의 해안가여행을,
그의 아련한 과거가 스며있는 창동을, 그리움으로 그리고 슬픔으로
회상한다.
Monet's own psyche ,and by his intense need to be heard,
seen, and imagined by others, while immersed in his search for
himself'연작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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