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r창블인5-4-3

jhkmsn 2017. 1. 30. 09:52

                3.

          이림을 생각하다.


인문:

전 이림의 작품 중 향토적 색감을 띤 '누드'에 시선을 두고 막연하나마

박춘성(두 화가가 오래전 사제지간이었음을 알게 된 탓인지) 의 그림속의

시골 아낙을 연상했습니다만 형태에 있어서는 그는 박춘성 그림의 인물들이

대체적으로 아카데익한 인체비율을 이루고 있으나, 이림의 '누드'는

철저히 데프로마시옹된 형태였습니다. 저는 그 '누드'의 탈 재현적 형태가

마음에 들더군요. 처음 대하는 다른 그림들도, 실제 작품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진 이미지를 통해 본 그림들이라 그 색감이나 마티에르를 제대로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 세련된 분위기나 탈 재현적 형태라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달과 여인' 등에도 시선이 한 참이나 머물더군요. 

그제께 토요일 창동의 금강미술관에서 보았습니다. 이성석 관장이

컴푸터에 저장된 이미지들을 고맙게도 하나 하나 찾아내 보여주었습니다.

이 관장을 통해 이 지역에서 이림의 작품이 가장 많이 소장된 곳이

그 곳 금강미술관이라더군요. 그런데 그 화가와 관련된 단상이나

그림평을 담은 신문이나 책자를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참 아쉽더군요.

1960 년전후 미산에서 활동했던 여러 화가들의 그림평은 지역 신문을 통해

읽을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이림, 누드, 유채, 37×45, 1975,

이림, 무제, 유채, 80F, 연도미상

이림, 달과 여인, 유채, 45×37, 1980

.

박춘성:

인문이 이림 선생님의 그림에서 나를 얼핏 느꼈다면 아마 그 분의

그림이 항토색 주조에 흙모래까지 도입한 토속적 따뜻함을 띠고있었기

그렇게 느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림 선생님은 내가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인도해 주신 분입니다.

내가 마산 고등학교3학년때 개인적으로 그 선생님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의 화실에서 먹고 자고도 했으니까요. 그 분은 마산태생으로 일본 동경의

데이고쿠 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유학중

중도에서 자퇴하고 마산으로 돌아와 홀로 작품 활동에 매진하였다.

마산의 중·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를 지내며 혁토사()·흑마회() 등의

그룹에 참가하는 등의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였습니다.

주로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시각의 자연 풍경이나 선창가 풍경 등을 주된

소재로 삼았다. 마산의 백랑 다방 등에서 8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제 11회 국전에서 특선을 하였던 분입니다.


윤용.

전후 동경의 화단에 소개된 유럽 풍조를 당시 그 곳에 유학하면서

체험했던 흔적들이 그의 그림에서 나타난다.

박래현의 그림에서처럼 고전주의 풍에서 벗어나 distortion된

인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모질리아니나 엘 그레코의 긴 몸체가

연상되는 그림들. 후기 르네상스 시기의 목이 긴 마돈나 그림이나

그 이전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의 그림에서 처럼

목이 길고 머리가 옆으로 조금 기울어진 인물들의 우아한 모습이

이림의 그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 때 아카데미즘 화풍, 이를테면, 정확한 인체의 비율, 원근법을 기초로 한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낸 양식이 주류를 이루어었던 시절에서

그렇게 인위적인 왜곡형의 그림들이 눈길을 끌다.


인문

전번 박화백의 부산 개인전 관람후 두 가지 점에서 저는 자책의 시간을

좀 가졌읍니다. 창동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야가 여지껏 한 곳에

머물고있어 창동미술의 큰 흐름을 여지껏 제대로 보는 눈이 없었습니다.

마산 태생의 이림이나 거제의 양달석의 그림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니!

내가 창동을 드나들기 훨씬 전 이분들은 이 곳 창동의 화가들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에서야 그 분들의 그림을 바라보며 그분들의

그림세계를 나름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지난 날 창원 성산 아트홀에서 정은승의 개인전을 보면서

그림에만 몰입하는 화가의 손은, 묶어두지않으면, 스스로 자란다는 점을

깨닫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화가의 손은 두뇌와는 별개로 묶어 두지만 않는 다면,

제 힘으로 스스로 진화해간다는 걸 말입니다.


 윤용:

나도 전에 화가들의 손은 어느 시점에 이르면 성장이 멈추는가보다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고남정현을 창동에서 사흘이 멀다하고 어울릴 때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작업실에서 같은 그림들이 나란히 놓여있는

듯한 착각이 들곤 했었지요.말하자면 그림들의 구도, 패턴 색감이 한결같이

거의 닮아있음에 좀은 의문스럽기도 했었디니까요. 물론 화가인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좀은 부끄럽기도 하구요. 전 지금 솔직히 그림 그리는게

두렵기도 해요. 화가인 내가 언제부터인가부터 그림이 아니라 말로

그림을 그린다니까요. 남의 그림 평이나 하고 미술자 책이나 손에

들고다니지 않습니까? 화가는 붓을 놓으면서 급격히 그 손은 성장이

멈추나 봅니다. 허허 오늘은 좀 쑥스럽구먼.


정숙:

제 그림은 좀 어때했어요.

제 손도 좀 무디어지진 않았나요.


윤용:

전에 어떤 그룹전인가 에서 얼핏 보니 정작가의 스타일이 자리잡고있다는

느낌이 들던데요. 그동안 그림들에서는 어렴푸시 서구풍, 측히 샤갈의 그림들이

연상되었거든요. 이제  객관적 실체로서의 자연을 넘어 화가의 심상에서 퍼올린

자연이 자리잡아가고있었습니다. 얼마전 정은승의 개인전을 보면서 참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섬들이 떠 있는 거제와 통영 앞바다 풍경을

마음의 눈에 떠오르는 대로 단순화 시켜 놓았더군요. 그 심상의 풍경을

선 채로 한참이나 즐겼습니다. 감성적인 친근감마져 들어서요.

 

정숙:

정은승의 그림에서요?  정은승화가는 두 분이 이렇게 칭찬해주시니

참 좋겠습니다. 부럽네요.화가의 손은 스스로 자란다고 하섰지요.

아니, 물감냄새만 맡고 어떻게 스스로 자랍니까? 이렇게 칭찬을 받아야

자라지요. 관객들이 그림도 사주어야 제대로 자라는 것이지요.

 

인문:

정작가가 금방 정은승에게 질투를 하네요. 재미있는데요. 요즘 들어

아닌게 아니라 정은승작가의 그림이 시선을 붙들던데요. 그 참,

아무리 여성분이라도 그렇지, 동료 화가의 괄목할 만한 성장에

대놓고 질투를 하시다니. 어른답지 못해요. 미안. 미안.

그러고보니 정작가의 언번도 중진급으로 무게를 띠고있습니다.

오해 마십시요, 웃자고 하는 소립니다. 사실 정작가의 최근의 그림들은

색상도  더 고와지고,형태도 더 자유로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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