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스카르 코코스카, 카르멘의 간주곡, '아를르의 여인' 마네, 헤믈린의 풍적수, 이중섭,
'황소' 그림, 은박지화, 시베리아 철도 여행, 로버트 브라우닝
인문과 윤화백은 부산 해운대쪽의 시립미술관에서 이중섭 회고전을 관람한
후 지하철로 사상터미날로 향하고 있었다. 마산행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붐비는 지하철이었으나 노인석에는 좌우쪽에 빈 자리가 하나씩 있어 둘은
따로 따로 나마 앉아 갈 수 있었다. 출발지에서 사상역까지는 50여분 소요되는
지라 인문은 앉은 후 얼마쯤부터 그저 눈을 감았다. 한 동안은 지나는 역을
확인할 필요도 없고 모르는 옆사람들에게 말을 눈길 주기도 어색해서였다.
둘이 탄 지하철은 그새 한참이나 달리고 있었고 어느 시점에서부터 눈을 감은
인문의 마음에 앞서 보았던 이중섭의 그림들이 눈앞을 스치기 시작하였다. '
황소' '길 떠나는 가족'
'욕지도 풍경' ,'등 유화작품 외에 '소, 새, 게'의 은박지화
드로잉 작품들에 이어 전시실 입구에 크게 걸린 그 화가의 사진도 나타났다.
손바닥 만한 크기의 작은 은지화는 담배갑 속 포장지인 은박지 표면에 그리거나
긁거나 하여 나타낸 그림이다. 몇 몇 은박지화에서는 얼핏 옛 상감청자의 비색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지난 1950년대 6.25 전쟁기간에 화가가 가족과
이별하고 부산 범일동의
피란민촌에서 힘겨운 피란 생활을 했던 시절의 자취가 담긴 그림들이었다.
이중섭의 대작들을 만날 수 있겠거니 하도 들어선 전시실의 그림들은
우명한 화가의 그림으로서는 예상밖으로 대부분 소품들이었다. 인문은
어느 새 혼자 버릇인 중얼거림을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그 삶이 그 참 애틋해.
6.25 피난민들 모두 당시엔 하루 하루가 살기 힘들었을테니
화가인 들 별 수가 있었겠나.
캔버스나 물감 장만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겠지.
그나 저나 그림들에 비해 화가의 몸체는 정말 당당하더군.
이중섭,기품있고 잘 생겼어. 체격도 당당하고.
그런 인물이 나이 40에 안타깝게 무연고자 노숙인으로
거리에서 세상을 떠났다니!
다음역이 서면이라는 안내방송에 잠시 순을 떠 윤화백을 바라 보았다.
그는 손에 쥔 스마트 폰에서 뭔가를 검색하느라 여념이 없는 것 같기에
인문은 한마디 던질려다 그만 두고 다시 눈을 감았다. 사상역에 이르려면
앞으로 몇 십분은 더 달리야겠기에 감은 눈이 더 편했던 것이다. 감은 눈으로
지나는 역 이름들을 듣던 중 불현듯 해믈린의 풍적수 이야기가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에 읽은 그 이야기는 인문에게는 그 학창시절이래 늘 마음속에
잠재되어있었다. 인문이 나이 40대 쯤인가 마네의 화첩에서 본 그 그림
<피리보는 소년> 앞에서 느닷없이 '그 화가도 해물린의 그 이야기를
읽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속 소년의 손에 든 플루트 악기에서
그 이야기 속의 마술피리가 연상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 이번에는 코코쇼카의 그림< 음악 마력>이 인문의 머리에
중첩되어 떠올랐다. 그 그림은 화가가 50대에 그린 표현주의적 그림으로
그 그림의 주인공은 나팔수였다. 그림속 인물이 나팔수였으므로
이야기 속에서 피리를 부는 마적수와는 거리가 먼 악기의 소유자였지만
그림속의 다른 대상들들, 이를테면 어린아이나 강아지 등이 짓는 놀란
표정으로 미루어 보건대, 코코쇼카 역시 그 마적수 이야기를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지하철에서 인문은 감은 눈으로 그렇게
그 미적수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지난 날 혼자 돌아다닌 여러 곳의 풍경들을 떠올리며, 어떻게 그렇게나
조심성없이 혼자 나돌아 다닐 수 있었을까 하며 자신의 그런 만용의 여행이
잘 믿기지 앉았다. 뉴욕의 타임스퀘어와 그리니치 빌리지를 서성거리던 일도
그러하거니와, 빠리에서 노트르담 성당과 몽마르트르 주변을 기웃거린 일도
그러하였다. 미국의 포틀란드에서 뉴욕으로의 긴 대륙간 횡단 버스 여행이나 ,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의 도시들을, 이 호스텔에서 저 호스텔을 전전해 가며,
유랑한 것 그리고 60대에 홀련히 혼자 나선 긴 시베리아 철도 여행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어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런 사실이 꿈만 같았다.
그런 무모한 여행은 혹시 자신의 마음 속에 담겨있던 해물린 이야기가
혹시 자신을 부추긴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였다. 그 이야기가 마음에
다시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그 마적수 뒤를 따르는 무수한 쥐들이라?
얼룩들룩한 옷의 여행객 차림이라,
글세 어떤 모습인지 상상이 가질 않아
모자는 ?
그의 피리소리엔 어떤 마력이 숨어 있었기에,
아이들이 춤 추며
그의 뒤를 따라 강쪽으로 사라졌을까?
아이들을 차례로 삼키는 강물을
그리고 그는 건너편 강가에서 그대로 지켜보기만 했을까?
작가 로버트 브라우닝은 정말 대단해.
전래의 전설을 그렇게나 맛갈스럽게 쓸 수
있었다니!
해믈린마을의 그 사람들은 풍적수에게 한 약속을 겁없이
바려. 그 돈이 얼마나 큰 것이었길래. 아무러나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그 풍적수의 잔인한 보복이 자초 하였어. 소중한 아이들을 다 잃는 불행을
자초하였어.장말 불행한 일이었어.
그나 저나 그런 보석같은 이야기를 그 작가는
어찌그리 생생하고 재미있게 그랴낼 수 있었을까.
참 부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