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문신미술관, 인상주의, 반추상, 파스텔화, 홈리스, 부림동 정법사,
에콜드 파리, 유트릴로, 백색그림,문신의 조각품 보석,
뮈르제, 아폴리네르, 모딜리아니, 보헤미언 예술가
어떤 초연성. 세속인의 속성을 경멸하는 듯한 태도. 기타를 타고내리는
그의 긴 손가락이 빚어내는 반짝이는 토레믈로 등이 자신의 삶의 무거움을
잠시 잊게해주고 해주는 기타리스트 몽씨의 얼굴을
조인애 화가가 어떻게 그려놓았을까?
12월 초 원로작가회 개막식 날. 인문은 개막식 시간에 좀 일찍 들어선
것은 내심 그게 궁금해서 였던 것이다. 물론 자신의 단상 '문신 미술관 가는 길'을
윤화백이 한지에 쓰기로 한 글씨도 보고싶어 윤화백 더러 서둘러 가보자고
보채기도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전시장에 들어 선 인문은 윤화백의 손을 끌고 조인애의 에스키스 그림이 걸린
벽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의 눈에 들어온 그녀의 그림은 그가 머리속으로
그려본 것과는 거리가 먼 반추상의 파스텔화였다.
첫 눈에 그림의 회색빛 색감이 좀은 낯설게 느껴져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단순한 여러 색의 면과 선이 가로로, 세로로 어우러져 하나의
얼굴인 듯한 형태를 이루고 있지않는가!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윤화백이 앞서 한 말을 생각하며, 그것은 실제의 얼굴형태에서는
좀 벗어난 탈 사실주의적 초상화이겠거니 하였던 것이다.
그림은 예상을 크게 벗어난 반추상이었다. 얼른 알아보기 힘든 형태의
그림이었다.얼굴로 여겨지는 형태의 한 부분의 색면은 직사각형과 반원으로
이루어진 것이 마치 기타의 머리부분과 몸통을 얼핏 연상케 하였고,
윗 부분에 세로로 비스듬히 그어진 두 줄의 굵은 어두운 색선은 사람의 이마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저 굵은 선, 가는 선, 반달 모양의 곡선과 직선의
어울림 등이 얼굴의 입부분을 뜻하는 듯도 하였고, 눈의 자리엔 가는 선이 그어져
감은 눈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거의 추상에 가까운 형태였다.
그림 앞에서 화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의직적으로 손이 가는 대로 그린 것이었을까,
술에 취한 채, 아니야. 색과 선의 어울림을 보면
이성적인 사고의 흔적이 역력해.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까지 막연히 상상해 본 그 기타맨의 이미지와는
다른 형태의 그림이기에서 인문은 머리속이 그저 복잡해졌다.
저 향태는 정말 뜻밖이야.
는 창동에서 자기를 진심으로 대한다고 믿는 한 무숙자 음악인을
저런 반추상으로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을까 ?
아니면, 그 순간에 포착된 것은 그 기태맨의 얼굴이 아니라,
조인애 자신의 심상이이었을까,
어쩌면, 우선은 손이 가는 대로 반쯤 그리다 미완성으로 남긴
것인지도 몰라. 어쨋거나 저 파스첼화는 볼수록 그 색감이 따스해.
그렇게 한 참이나 그 그림을 바라 본 다음 그는 자리를 옮겨 윤화백이
붓필로 쓴 자신의 글 ' 문신미술관으로 가는 길' 앞에 서서 더없는
고마움으로 찬찬히 읽어 보았다. 그 글귀는 아래와 같다.
'아래'
'문신 미술관 가는 길'
부림동 정법사를 지나
철길 횡단 보도를 지나
왼편으로 휘어진 경사로를 따라
이 곳으로 오르는 길은,
흑갈색 돌담과 잎이 엉성한 가루수만 좀 있다면
에꼴드 파리 화가 유틀릴로가 그린
몸마르트르 언덕길 같을거야.
뮈르제, 아폴리네르, 모딜리아니 등 보헤미언 예술가들이 드나든
카레 라뺑 아질 앞의
그 언덕길 같을거야.
더 늙기전에
또 훌쩍 여행길에 나설 땐,
그리하여,
세고비아를 다시 찾을 땐,
문신의 보석조각상품을이라도 몇점
배낭에 넣고 나설 수 있다면.....,
아니야, 그 조각품의 사진 엽서가
여행자에겐 더 어울려.
젊은 시간이라면,
안달루시아에 다시 간다면,
조각품 보석 중에,
'내 이름은 미미',
혹은
'그대 잠들지 못하리'
이 두 조각품 정도는 혹시라도
품에 지닐 수 있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