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더 나누고싶은 이야기
1.
0월0일
s작가에게.
우연히 눈에 띈 선생의 90년도 수묵 인물화 한 점과 그리고
92년도 습작으로 여겨지는 한 수묵인물화가 수묵 담채나 채색화의
다른 인물들보다 더 마음이 들기에, 문득 앞으로 저런 수묵화의
여인들을 더 다양하게 더 새롭게 낳을 수는 없을까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현묘한 먹색의 여인을 선생님의 자유로운 운필로
표현한다면 어떤 미인을 낳을까 하고 말입니다. 제게는
교당의 자유로운 손이 담백한 먹의 선 만으로 그려낸 사의적
수묵화 한점,'춤추는 여인'화 한점이 다른 여러 채색화 여인들보다
더 마음이 들었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에 제가 교당의 채색화 여인들에게서 막연히, 아마도 편견일
수도 있겠ㅈ만, 일본의 전통적인 채색화의 흔적이 느껴져
그런 그림을 얼마간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본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 흔적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인데도
말입니다. 그림에 그 화가 태어난 자란 토양의 흔적이 묻어나지
않는다면 그건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지요. 교당은 일본 태생이었습니다.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 부모님 아래 태어나 사춘기에 이르기까지
그 곳에서 자란 교당의 손과 붓에 에 일본의 전통적인 채색화의 영향이
묻어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필자의 그런 정서가 얼핏 편견일 수
도 있엤군요. 일본과의 역사적 악연을 겪은 한국인들은 대개 저마다
일본의 문화적 영향을 무턱대고 경계하면서 살아왔으니까요.
jh
2014년 0월0일
s작가에게
교당의 화첩에서 우리 이웃 사람들의 삶을 수묵으로 리얼하게 표현한
사실주의적 그림 한 점을 보았습니다. 뜻밖이었습니다, 인물화의 경우,
그의 그림에 담긴 대상들은 대개 실재하는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
그의 마음에 살아 온 사의적 대상들이었습기 때문입니다.그의 그림속의
미인,달마, 또는 포대화상 등이 모두 그의 마음에 살아 온 인물들이지
우리 이웃에 실재하는 인물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그림을 보며
불현듯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가 시베리아 기차여행을 통해
그 광활한 평원의 눈내리는 숲의 풍경을 한번 그의 눈으로 보며 느끼는
감흥을 자신의 수묵화 화풍으로 표현해볼 수 있다면!
아니면,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역의 헐벗은 거대한 검은 빛 산세와
산길 그리고 그 위 구름 한점 없는 푸른 하늘을 여행자의 손과 붓으로
그려볼 수 있다면! 그 거대한 산세는 나무도 풀도 기름진 토양도 없는
헐벗음의 웅장한 산들의 이어짐을 한번 수묵화로 한번 담아 볼 수 있다면
하였습니다.그분의 그림중에 뜻밖에 우리 이웃의 삶을 사실주의적 필치로
담은 스케치 한 그림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jh
s 작가에게
교당이라면 마티스의 춤이라는 그림 앞에서도 마음을 다한 그림이
아니라 한가한 유희적 그림쯤으로 여길 것입니다. 언젠가 교당은
마티스의 그림 앞에서 그 단순성, 형태의 단조로움과 묘사력의 미비
등에 대해 실망하더군요. 반 사실주의적 회화에다 자연색을 무시한'
인위적인 화려한 색조가 마음에 들지않았던 것입니다.교당이 서양화의
비사실적인 대상에 뜨악한 시선을 가질 수 있는 분이기에 그런 비판적인
시선이 당연할 수도 있겠지요. 어쨋거나 그 자리에서 문득 s작가를
떠 올렸습니다.선생만큼 마티스를 이해하고 좋아하는 분이 교당의
그런 시선을 느낀다면 얼마나 실망할까 싶었습니다. 선생은 화가로서
주변에서는 드문 마티스 연구자 이기도 하니까요.
나는 선생이 아래의 마티스의 말도 인용해 들려주지 않았습니까?
'손에 물감을 쥔 바로 그 순간 , 이것이 바로 내 삶이라고
나는 확신했다',라고 한 마티스의 그 말을! 사실 선생 덕에 나도
그 색채화가를 좋아하게 되었구요.
많은 사람들이 마티스의 작품을 그저 장식적이고 어여쁜 편안함을
추구하는사람들을 위한 예쁜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들 하지만 ,
그는 창조에 대한 격렬한 의지의 소유자였음도 내 마음을 움직였구요.
그의 마음에는 항상 뭔가 새로운 것을 그려내려는 '...간신히 억누른
불길'이 타오르는 화가임도 선생을 통해서 느끼게 되었지요. 이런 점은
그의 달콤하고 예쁜 그림에서조차 느껴진다고 선생은 말했습니다. 나는
그 편안한 그림을 그린 화마티스가 고질적인 불면증으로 끔찍하게 고통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저어기 놀랐습니다. 그 화가는 눈이
제대로 보이지않아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여든 다섯에도 햇빛이
담뿍 내리쬐는 프랑스 남부에서 훌체어에 앉아 선명하게 채색된
종이들을 오려 작업실 벽에 붙임으로써 끊임없이 그림작업을 해
나갔다는 화가였다는 점도!
jh
2014년 0월0일
s작가에게!
며칠 전 3.15 아트센터 전시실에서 정경현이라는 한 청년 조각가의
도마뱀 조각품이 시선을 끌더군요. 조각품대 아래에 '자연'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 조각품의 두가지 점이 발길을 멈추게
하던데요 .그 하나는 도마뱀의 형상이었습니다, 조각품으로서의
그 도마뱀은 발이나 몸이 실제 도마뱀보다 훨씬 긴 형태를 띠고
있어 자연과학자라면 그 점이 얼른 눈에 띄었을 것입니다.
어린 아이도 아니고 저렇게 잘못된 도마뱀을 제 마음대로 만들어도
되나 할 것입니다. 사실주의 화가라면 더더욱 못마땅할 것입니다.
그 조각품 앞에서 교당이라면 아마 노파심에서 그 조각가에게
자연의 도마뱀을 좀 더 관찰하라고 조언하지않을까 싶기도
하였습니다. 그 순간 마티스의 충고가 떠 오르더군요:
과학자 선생, 저건 도마뱀이 아니라 조각품입니다.
조각품의 다리가 좀 길면 어떻습니다. 다리가 셋이면 또
어떻습니다. 그렇게 만들고 싶어 그렇게 했는데, 라고 조각가는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가지 점은 그 도마뱀이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들어졌는데 그 은색의 형상물이 앙징스러운데다 그 표면 광택이
문신의 추상 조각품처름 미끈하고 세련되었습니다. 젊은 작가의
세련된 솜씨였습니다.게다가 도마뱀이 앉은 바위구조물은 단순한
입체형의 바위형상물은 그 앙징스러운 도마뱀의 유려한 몸매와 잘
대비되더군요
나중 알게된 일이지만, 그 청년 조각가는 교당의 외손자이더군요.
할아버지의 재능을 잘 타고 났구나 싶었습니다. 구상을 추구하는
자세나 그 손재주하며.... 교당과 차이점이라면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 외손자 조각가는 할아버지의 재능을 닮은 것 이외에
교당이 누리지 못한 사회적 공교육의 혜택을 풍부하게 누렸더군요
대학의 정규적인 미술교육과정을 두루 청년이었습니다.
그 청년의 할아버지가 속으로 얼마나 자랑스러우겠습니까.
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