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미화교김 12

jhkmsn 2013. 12. 10. 11:00

                                 4. 수묵.채색의 그림들

 

 

 

2. 도석인물화

 

 포대화상도

 교당이 1990년대 들어 자주 그려내는 포대화상은 그 모습이 자신을 닮은

듯 해! 포대화상을 자주 그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 화상이 자신을 닮기

시작했나봐. 포대를 어깨에 멘 자세에 웃음기 가득한 선한 얼굴의 편안한

모습  꼭 자신을 닮았어!

 

교당은 천성적으로 자신이 거진 것을 이웃과  나누는 사람이다.

평소 친교를 나누는 예인들을 만나 술이라도 한 잔 할 경우, 그가 자주

대접하는 편이다. 그의 포대화상은 화가 자신의 평범한 인간적 면모를

연상케 한다.옛 화가들,  이를 테면 김명국이나 한시각이 그린 포대화상은

첫 인상에 높은 경지의 도인의 풍모를 보이는데 반해, 교당의 인물은

걸인의 차림새에다  천진스런 얼굴표정이다. 몸짓이나 모습 어느 곳에도

도인의 비범함이 느껴지지않는다. 게다가 ,옛 화가들의 포대화상들은 

핵심을 찌르는 간결한 필선으로 탈속적 풍모의 인물로 표현하였으나,

교당의 그림에는  인물의 전체 모습이 담겨 있다. 얼굴과 몸 자세 그리고

포대와 지팡이 등이 모두 그려져 있어 그 전체 묘사가 자칫 고승의 탈속적

 비범성을 떨어뜨리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포대화상 /72p,73p)

 

포대(布袋)는 후량(後梁)의 한 고승으로 늘 작대기에 포대를 메고 다니며

무엇이든 동냥한 것을 그 속에 담곤 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별명을 얻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 포대화상은 배가 나오고 대머리인데다, 때로는

호탕하게 웃고, 때로는 거칠면서도 선종의 높은 경지에 이른 인물로

미륵보살의 현신(現身)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는 10세기 초에

죽었다고 알려졌는데, 죽은 지 얼마되지 않아서부터 벌써 그의 초상을

그리는 것이 양쯔강과 저장(浙江)지방에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시각의 포대화상도가 현존 유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의 그림에 묘사된 포대는 짧은 수염이

나있고 자루는  직접 어깨에 메고 있다. 배는 튀어나와 있지 않고 허리띠로

묶어져 있다. 앞에서 언급한 포대의 이미지-  부드러운 얼굴에 뚱뚱하게

튀어나온 태고(太鼓)를 두드리며 너털웃음을 짓는 천하태평의 호인상을

지닌 포대상과는 차이가 있다. 한시각의 경우,윤곽선은 짙은 묵선으로

간결하게 처리하여 선종화 특유의 감필적(減筆的)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그의 작품으로 이와 유사한 포대도 2점이 더 알려져 있다.

 

달마도

이 지역의  이 곳 저 곳 상점에는 교당의 달마도도 눈에 띈다.

달마도엔 어떤 영험한 기운이 나온다고 여기는 세상 사람들이

달마도를 집이나 가게에 걸어놓고 싶어한다. 선승이나 이름난 화가들의 

달마도에 탐을 낸다.퉁방울 눈, 주먹코, 툭 튀어나온 이마와 두광,

거친 마대옷 차림...그리고 선명한 안광 등이런 인상착의의  달마상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들은 김명국을 통해 달마에 친숙하다. 9년동안 면벽으로 선적 수행을

했다는 고승 달마의 초인적인 집중력, 깨달음의 표정이 그러하였으리라

믿는다. 이 옛 화가의 달마도를 보면 거침이 없고 군더더기가 없다.

본질이 아닌 부차적인 요소들은 모조리 떨구어 낸 순수한 형상들이었다.

몇줄의 짙고 옅은 먹선이 대상의 강력한 의지와 고매한 기상들을 어찌

저토록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저 얼굴의 의지와 기상은

원래의 인물의 것인가 ?아니면, 화가의 창조적 상상에 의한 것인가?

 

달마도는 대개 인물의 눈동자가 한쪽으로 집중되어 있어 직관과

집중의 힘을 보여준다.이런 점과는 좀 달리 교당의 달마도의 경우,

인물의 진지한 표정에 촛점을 맞춘 듯하다. 그는 아마도 고승 달마의

인내의 긴 수련과정에 그의 상상이 모아진 것 같았다. 간략한 필선들이

만들어낸 엄숙한 표정, 수행자 인상의 진지한 눈빛, 게다가 굳게 다문

입술에서 그렇게 느껴진다. 모르긴 해도, 화가로서의 그의 특별한 체험

내부에서 어떤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으로 숙성되어 나타난 결과물이리라.

 

0월 0일

수문형!

교당의 여러점의 달마도 중에 특별히 시선이 멈추는 그림이 있기에

한 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수묵의 간결한 선과 점으로 그려진  

달마도로 눈빛의 집중력이 두드러지게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현자의 정신적 집중과 깊이감을 맛보게하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그림의 상단부분에 쓴 제발자의  큰 글씨의 '인' 가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저건 어느 서예가의 글일까?

글씨와 그림이 제각기 독림적이었습니다.

그림은 그림대로 달마의 정신적인 특징이,글은 글대로 忍에 담긴

교훈적인 점이 서로 평행선을 긋고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서화의 어울림은 교류의 멋과 정취가 우선입니다. 이 달마도의 경우,

그림과 글은 판소리와 고수의 어울림을 가져야 제맛일 텐데,

눈에 띄게  서로 개별적이었습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이중주에서도 개성이 잘 드러나야하는 점도

중요하지만 제일의 강조점은 두 음색의 어울림에 있습니다.

그 달마도의 그림과 글체에는 두 예인간의 부조화였습니다.

한 마디로 그 둘은 그림의 예술적 정취를 삭감시킨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글자의 교훈적인 뜻이 강조되면서 전체적으로

 그림의 본질적 요소가 약화되고 있었습니다. 화면의 리듬과

서예가와 화가의 아름다운 교유를 위해서서는 글과 그림사이의

강약, 고저가 있어야 하고, 글은 그림을 배려하고 또한 그림은

글을 통해 더욱 향기가 짙어지고...그랬어야 하는건데. 그런

점에서 忍자는 그의 달마도의 본질를 살리지 못하고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게다가 창동의 양지 카페에 걸린 다른 달마도에서도 윗 부분의 忍이

진하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좀 더 가까이 다가서 보니 그 글체는 교당

자신의 것이기에 한 참이나 머리를 갸웃거렸습니다. 그 자신도 일부러 

그런 글자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인가? 저건 俗에 가까운 붓놀림이야,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그는 자신의 달마도를 집에 걸어두고 싶어하는

후원자(?)의 눈과 마음을, 자신의 그림의 예술성보다 더 소중하게 여긴

탓이었습니다. 식당이나 주점의 주인으로서는, 단골의 발길이 뜸해질

때에도, 주정뱅이 손님이 소주 한병 차고 앉아 일어날 줄 모르는 상황에

처하게 되거나, 또는 시비를 거는 불량 손님을 달래야하는 상황에서

우선은 참고 견디야 함을 교당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그래서 '忍 '을

그의 달마도에 눈에 띄기 농묵으로 담아놓음으로써 그 주인의 마음을

쓸어주고 싶었을 것입니다.한 참후에야 그 점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또 연락하겠습니다.

학야

*그림과 해설

72p

 

 

  500인 나한도

 교당은 500인의 나한들을 제 각기 다른 개성의 얼굴로 그린 대작을

나이 80을 넘긴 나이에 창의적으로 그려내었다. 나한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달은 성자를 가르킨다고 하는데, 그의 나한도 인물들은

언뜻 보기에 아직 깨달음을 얻기 전의 얼굴인듯 저마다 다듬어지지않은

타고한 심성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그 나한도 앞에서 수호지의 

인물들이나 소설 임꺽정 속의 산채 두목들의 얼굴이 연상되기도 하고,

그의 달마도나 포대화상을 닮은 얼굴들도 있다. 심지어 교당 자신의

얼굴까지도일본의 목판화가 호꾸사이가 그린 다양한 표정의 인물들도

들어있어.대머리에 눈섭이 짙고 긴 노인, 이빨이 빠진 노인의 웃음,

수염이 덥수룩한 장년의 심각한 얼굴과 시선 등등 후꾸사이의 인물들,

심지어 교당 자신의 즐거운 표정과 닮은 얼굴까지도!

 

그 500 나한도는 그의  80수기념전 개최장인 대우백화점 갤러리

홀안의 사방 벽에 두루마리 화선지 가로로 길게 이어져 전시되어

있었다. 화선지위의 500인 나한들은 각양각색의 인물들로 그려져

있었다.저마다 다른 얼굴, 다른 표정으로, 다른 체형으로, 심지어

제각기 다른방향으로 향한 시선으로 그려져 있었다. 팔순의 중반에

이르런 나이 임에도 저렇게 다양한 인물들을 창의적으로 상상해내다니! 

그의 변함없는 회화적 상상력이  신기하기조차 하였다. 그 작품은

손재주 만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었다. 어떤 인물화의 어떤 전형적

틀에 매인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나한의 얼굴들을 상상력으로,

어린아이가 그림놀이에 몰입하고있는 듯한 그런 몰입으로 인물들을

 그려내었다. 서예가의 혼신의 노역으로 쓴 길고 긴 두루마리 글씨를

전시장에서 더러 대하긴하였으나 특별히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들은

만나지 못하였다. 그 글씨에 담긴 것은 예술적 상상이 아니라,

깊은 종교적 신심이었던 것이었고, 그것은 필자의 생각으로는,

상상을 낳는 예술성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어쨋거나 그가 수묵의 달필로 인물 하나하나를 특징적으로 그려낸

'500인나한도'는 한 화가가  온 마음을 화선지위에 쏟은  상상과

몰입의 산물이다. 그 인물화를 대하면 평소 우리들을 대할 때의

 그 웃음기 머금은 편안한 얼굴모습과는 전혀 다른 진지한 표정을

연상케 한다. 이를테면,그림을 그리기 전  먼저 뜻을 세우고,

전체적인 구도를 잡고  화면에 배치될 인물들 마다 개개인의 표정과

자세를 머리속으로 떠올리곤하며 작업에 몰입하는 그의 깊은 표정을

상상케 한다. 그런 몰입 순간의 그의 얼굴은 진중하기 이를 데 없다.

그리고 그 인물들은 그 순간 그의 머리에 떠오른 수많은 인연의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목교당의 얼굴, 아버지의 얼굴, 그가

625전쟁중 그가 보급대 요원으로 봉사하면서 목격한 민간인

희생자들, 등등...

 

어느 날 신문에 난 나한도에 관한 기사 한줄을 읽고 교당은 불현듯

자신의 500인 나한도를 상상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미국 보스톤의

한 박물관에 누군가의 나한도 한 점을 비롯한 조선의 회화작품이

전시되었다는 게 그 기사 전부하고 하였다. 그 나한도는 그 기사로

인해 그렇게 그려지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의 집 서재에서 본 

소설책 '죄와 벌'이 떠올랐다. 그 소설은 저자 토스토에프스키가

한 신문에서 읽은 어느 전당포 주인 살해사건이 그 집필 동기였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신문의 그 사건 기사가 

소설가의 머리속에 그 소설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를 잉태케 하였던

것처럼, 교당의 500인 나한도 역시 그가 우연히 본 신문 한 편에 난

기사 한 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그렇게 긴 두루마리 종이에

그렇게 다양하고 독특한 인물들은 그 한줄의 기사가 불러 일으킨

영감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누구나 불성이 있기 때문에 부처, 보살, '나한'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각자라는 점에서는 같다고 한다.

좀더 들어보니,중국불교의 나한신앙에서 나한이란 석가모니의 수기에

따라 미륵이 올 때까지 이 땅에 남아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아끼는

역할을 하는 불제자들이다. 나한은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하며 

변신이 자유롭고 또 마음대로 비를 부르기도 하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고도 하였다. 그리고 보살과는 달리 대부분

이 땅에 존재했던 수행승에서 출발하여 깨달음을 이룬 분들이므로

일반 중생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인식되면서 일찍부터  많은이들의

예배 대상이 되어왔다.  

*500인 나한도 그림 추가

'연작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화교김 14  (0) 2013.12.11
미화교김 13  (0) 2013.12.10
미화교김 11  (0) 2013.12.10
미화교김 10  (0) 2013.12.10
미화교김 9  (0) 2013.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