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미화교김 10

jhkmsn 2013. 12. 10. 10:54

               3. 학교밖에서 배운 화가

 

1. 타고난 화가의 손

 

교당은  스스로 그림그리기를 터득한 화가이다. 젊은 날 일본에서  

일본인화가 목교당의 사숙에서 두어달 동안 그의 가르침을 받은 것

이외에는 공 교육기관에서에서 정규적인 그림수업을 받아보지 못한 ,

스스로 그림그리기를 터득한 화가이다. 정규적으로 받은  공교육은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태어나 사는 동안 받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이 

정규교육의 전부이다. 해방으로 귀국하여 마산에 정착한 이후에도 

가정 형편으로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기에 일본에서 받은 초등교육이상의

정규교육을 한국 사회에서 받을 기회가 없었다. 그림공부와 관련하여

청년기 사고로 다친 한쪽 눈을 고치고 싶어 일본에 다시 들어가 머문

몇 달 동안  한 일본인 동양화가의 화실에서 그림  기법을 배운 게

그가  체계적으로 그림공부를 한 전부였다.

 

이 글의 서문에서 말했듯이, 그가 서너살의 아이일 때 누나들 곁에서

큰 누나의 그림 흉내내며 크레옹과 연필로 벽과 방바닥에 혼자 즐기는

놀이로 그림낙서를 하였던  그 손이 나이 20살 무렵  6.25 전쟁시절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돈버는 손이 되었고, 그 후에는  극장건물의

판그리는 간판호가의 손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미인도 화가의 손이

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에게 그림그리는 일은 '숨을 쉬고 걸음을

걷는 것처럼 ' 그렇게 일상화되었던 것이다. 그의 그림은 untaught art 즉,

배우지 않고 스스로 터득한 예술이 되었던 것이다.

 

 그에게 그림은 삶의 작업 그자체였다. 자신의 삶을 지켜주는 수단이자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이었다.붓은 그의 가정을 지켜주고 자식을

키우고 위한 도구였다. 그는 그작업을 하는 과정에 집중하고 오로지

그 창의적 행위에만 몰두하였다. '화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사람들이

숨을 쉬고 걸음을 걷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고 작업을 하는

것이다.' (에밀 놀데) .

 

교당에게는  세가지의 특징적 자질이 있었다. 첫째로 미를 탐색하는 눈이

현실주의적이다. 그는  미의 대상을 꿈속에서 찾는 낭만주의자가 아니라

실제의 대상에서 찾는 사실주의자이다. 실학적 정신이 담긴 조선후기의

화가들 ,이를테면,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이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 그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낀 대상이나 인물, 풍경 등을 화폭에 담았듯이, 

사실주의자 쿠르베나 인상주의 화가 모네가 눈에 보이는 대상을 그렸듯이

교당 역시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자신의 회화적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조선 초기의 화가 안견의  비현실적 풍경이나 고전주의적 화풍의 신화적

존재가 그의 탐미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꿈속에서가  아니라,눈으로 

본 것을 그린, 자연을 재현하는 화가이지 ,추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신화

추구적 화가가 아니었다.

 

두번째로 그의 손은 눈을 통해 마음에 자리잡은 심상을 화선지위에

창의적으로 재현해내는 능력이 천부적이다. 그리고 그의 손과 붓을

통해 그려지는 대상은 언젠가 그의 눈으로 들어와 마음에 자리잡은

심상이지 비대상적 추상의 것이 아니다. 그 심상을 그의 손은

충실히 그림으로 재현시킨다. 그렇지만 표현적으로 재현한다.

그의 미인은 꿈에 나타난 미인 아니라 그의 누나들의 얼굴이고

이웃집 처녀의 눈빛이다. 그는 그가 보고 만났던 인물들이

그림속의 미인으로 그려졌던 것이다. 산수화도 그렇다.  그가 살아 온

 지역의 야산이거나 산에 올라본 주황산의 바위 풍경을 포착해

화폭위에 옮긴 것이지 옛  중국의 산수화를 흉내낸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마산인들이 교당의 그림을 좋아하였던 점이다.

마산은 그의 손이 점점 자랄 수 있는 토양이었다. 학교 밖에서

스스로 그림의 길을 터득해 나갔지만 그 손이 제대로 자라게 한 곳이

곧 그의 삶의 터전인 이 지역 마산이다.부림시장의 가게 주인들, 이 곳

 상공인들이 그의 모란화, 노안도 달마도 등을 사무실이나 집안에 걸어

둔 마산 사람들의 마음에서 그의 손은 점점 자라기 시작하였다.

마산이즐은 화가로서의 교당을, 그리고 그림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교당은 자신의 그림에 대해 설명할 줄 모른다. 그를 사랑한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집안이나 사업장에 걸어두고 보는 것으로 족할 일이지

그림속의 뭔가에 대해 의문을 던지지않았다. 그는 부림시장이나

어시장의 상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화가이다. 부산 자갈치 시장이나

마산의 어시장의 화가로 알려진 현재호 역시 그는 자신의 그림을 글이나

말로 설명하려 않았다. 그저 손으로 그림을 그렸을 뿐 글이나 말로

그림을 설명하려들지않았다. 피카소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설명하기를

거부한 화가였다. 몽마르트르의 한 카페에서 피카소는 그의 그림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화가 지망생 청년을 권총으로 위협하고 그를 밖으로

내쫓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대부분의 경우, 한번 어떤 것을 배우고 나면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재미로 해 본다거나 하는 행위를 중단해 버리는 것이 규칙을 준수하는

행위의 본성이다. 그리고 그 행위는 기계적인 마인드에 의해 지배받는다.

규칙에 얽매이지않고 새로운 세상에 걸음을 내딛는다는 행위 자체를

두려워하게된다.규칙이 새로운 길을 들어서는 데 등대가 되어 준다는

생각에 그 규칙을 벗어나 스스로 창의적으로 길을 모색할 엄두를 내지않는

게 보통이다. 사실상 규칙은 우리가 시야를 가려서 예술활동을 통해

진정으로 얻고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볼 수없게 된다. 심지어 규칙을

배우는데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하고자 했던 활동을 아예 시작조차 못하게

되기도 한다.

 

 

교당은 어떤 일을 앞에 놓고 주저하거나 망설이지않았다.젊은 날 다친

눈을 치료하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한 일도 그렇고, 일본의 상대적인

높은 의료 수준으로도 그 눈이 치유될 수 없다는 걸 알고는 ,  그 대안으로

일본인 스승 목교당을 스스로 찾아가 그에게서 먹과 붓을 다루는 기법을

배우며 스스로 절망을 이겨내는 자세에서도 그러하엿다. 20세의 나이에

처음 미군병사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주문에 자신의 방식대로 거침없이

그렸다. 극장 간판을 그릴 때에도 그러했었다. 영화속 주인공을 자신의

구상에 따라 창의적으로 자신의 방식대로 그려내었다.남들이, 다른

간판화가들이 어떻게 그릴까, 어떻게 생각할까 를 놓고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았다. 

 

' 너 언제까지 간판쟁이로 지낼 것인가'라는  두 선배화가 문신과 최운의

충고에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을 끌  일이 아니다'라는 판단이 서자 

설임없이 18년이나 손에 익었던 극장 간판 일을 거두고 오로지

화가로서의 길에만 몰입한 두척시대를 열어갔던 것이다.

 '내가 규칙을 배우기에 내가 너무 재능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규칙을 미리알았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규칙을 모르면 다른 사람이

나를 무시하지않을까? '이런 걱정이 앞서게 되는 게 보통이나,

 

교당에게는 학교에서 배우는 그림공부의 어떤 규칙을 모르는 편이 더

나았다.  규칙을 알게되면 기계적으로 규칙만을 쫒게 되는 위험이

뒤따르고 , 예술활동ㅇ로 인해 우리가 느끼는 잠재적인 즐거움과

개인의 성장을  놓치게 된다. 그는 그렇게 생각햇었다. 그림그리는

일이 그에게는 숨쉬는 일이나 걸음을 걷는 것처럼 자연스런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규칙에 얽매어 있을 때는 기계적으로  세부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느라 전체를 놓쳐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전체에만 초점을 맞추느라 세부적인 것을 놓쳐버리기도 한다.

 

앙리 마티스의 스티디오를 방문했던 한 여성은 그가 막 완성한 작품을

찬찬히 살펴 본 후에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여성의 팔이 너무 기네요',

마티스는 재빨리 대답했다.

'부인 한 가지를 잘못 보셨군요. 이것은 여성이 아니라,

그림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규칙이라는 잣대로 작품을 평가하면서 진정 위대한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우리의 그림은 단지 그림일 뿐이다.

캔버스에 3차원의 숨을 쉬는 사람을 그려넣는 일은 불가능하다.

ㄱ렇다면, ㄱ냥 ㅇ리가 좋아하는 것을 그리자. 머리가 둘 달리고,

팔이 아주 길며, 눈이 없는 그림이라도 상관없다. 자기 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우는 일, 그것이 중요하다

 

 

 

 

2. 두가지의 집중

 

홀로 창작하는 예인, 예컨대, 시인이나 화가들은 작업에 임할 때

정서적으로 깊고 아득한 몰입상태를 겪는다. 시나 그림들은 그런

몰입상태에서 일어난 창작의  결과물이다. 그런 정서적 몰입

속에 피어난 아이디어나 심상을 마음 안에서 밖으로 표현해내는

작업은 그 창작자의 손이 맡아 한다. 시인이나 화가는 안다, 그들의 

시나 그림은 집중의 산물임을! 한 주제에 대한 개인적인  몰입 중에 

홀연히 심안에 포착되는 영감이 그 몰입자의 손의 노역으로 눈앞에 

표현되어 밖으로 드러난 것임을. 

 

그 작업을 위한  깊은 몰입과정이 지나면 그 반대로 정신적인 이완과

허탈감이 그 뒤를 뒤따른다. 그 풀어진 마음은 어느 시점이 지나 다시

몰입의 고요속으로 빠져든다. 멀리서 보면, 그림그리기나 시 짓는

일같은 창작적 행위는 내면의 이런 긴장의 상승과 이완의 반복일 수

있다. 교당의 평소의 천진한 소년티의 표정은 그가 몰입했던 회화작업

이후의 이완된 마음 상태의 모습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구수한

토속어와 흥에 겨운 몸짓이나 가락그의 그런 이완된 마음의

표현들이다. 몰입중의 그의 탐미적 열정이나 손의 흐름을 따라

일어나는 눈매의 진지한 변화는 우리들의 눈에는 감지되지않는다. 

그의 그림의 감상자들만이 그의 작품을 통해 단지 이를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모르긴 해도,그의 채색화 '8명의여인들'이나 수묵화

'500인 나한도'의 작업에서는 그런 탐미적 눈매아래 그려졌을

것이다. 그 과정후의 풀어진 마음과 그리고 그 일을 다 이루어 낸

충만감은 평소 술자리에서의 그의 흥취와 어깨춤에서 무의식중에

드러난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한 가지 주제에 몰입하고, 그 집중에서

벗어나면 사람 곁으로 다가가 술마시고 노래하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한다.

 

교당에게는 두가지의 집중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 순간의

깊은 집중이 그 하나이고 , 깊고 얕음의 리듬이 반복된 시간의 폭이

넓은 집중이 그 다른 하나이다. 깊은 집중, 다른 표현으로, 수직적

집중은 바닥에 펼쳐진 화선지 앞에서 그 빈 백지위로 운필하기 직전

한 순간에   마음이 그 깊음의 바닥에까지 이르는 몰입의 상태가

그것일 것이고 , 다른 하나는 한 가지 주제에 매달린 채  긴 시간의

몰입이 이어지며 그 깊음과 얕음이 리듬을 이루는 탐색과 몰입이다.

일필로 휘몰아가듯  그린 수묵화,'춤추는 여인'은 전자에 해당될 것이고, 

긴 시간동안 작업한 수묵화  연작,'500인의 나한도'는 후자일 것이다.

 

교당 김대환은 마산이 그의 삶의 터전인 미인도의 화가이다.  

전통적인 한국 여인의 기본복식인 치마 저고리를 입은 다양한 자태의

여인들을 붓과 채색으로 그려낸 마산의 예인이다.  월하미인,

장구춤을 추는 기녀, 목련꽃과 여인, 수국앞의 여인 등등 그는 수많은

미인도를 그린 예인이다. 사군자화나 포대화상이나 달마도같은 신선도,

그리고  노안도(갈대와 기러기) 등 동양화의 보편적인 주제의 그림 역시

그의  손길아래 창작되어왔다. 티없이 정결한 한복차림의  여인들은 

경남해안 지역이나 전통기질이 성한 진주권 사람들의 눈에 더 친숙하다. 

한국의 옛 풍습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그는 전통적인 미인도 화가로

존경받는다.반면에, 천경자의 서구적 미인이나, 현대 서양화의 인상파

그림을 좋아하는 그림애호가나, 서구 문화에 익숙한 현대의 이성적 

 교양인들은 교당을 속으로 그저 그런 구태의연한 동양 화가로 여기는

편이다.

 

 

 

그의 미인도는 그의 주변의 어떤 실제의 여인이 그 바탕이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그의 큰 누나의 모습이, 혹은 이웃집 처녀의 얼굴이

빈 백지위에서 그의 붓을 통해 현실밖 그림속의 미인으로 새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세필화에 의한 사실주의적 묘사력이 두드러진

그 여인들은 결국엔 심상의 표현이지 실제의 모델은 아니라는

뜻이다. 수필가 정목일 선생이 그의 그림 앞에서 느낀 아래의 글을

읽어보면 교당의 사실주의적 묘사력이 마나  뛰어난지 짐작할 수

있다 :

 

아, 나는 자신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방바닥엔 놀라웁게도 너무나 곱고 아리따운

미인이 누워있지않는가!....연한 옥색 치마 저고리의 부드러운 선엔 여인의 숨소리가

흐르고, 옷에선 향긋한 체취가 풍기고 있었다. 난향일듯 싶었다.

 

 

요즘 교당의 그림들을 자주 본다.며칠 전에는 창동의 만초집에서 

그의 노작도를 , 그리고 창동의 나삼수 사무실에서는 그의 화첩을

통해 여러 점의 미인도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들을 보았다.어제

점심 시간에는 식당 양지집의 포대화상을 몇 번이나 바라보았다.

필자가 그의 그림을 대할 때는 탐색적  시선으로 그림과 마주한다.

이를테면, 그림의 선과 색채의 어울림을 피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여백이나 화면밖의 뭔가를 능동적으로 탐색하는 편이다. 연상과

상상을 운용하여 더욱 깊은 차원에서 세세하게 음미하고 깨달으며 ,

작품의 예술성을 탐색하는 편인데 , 그렇게 하면 원래의 화면에서는

그려지지않는 사물과 뜻을  자신도 모르게 눈 앞에서 보게된다.

 

 

 

그의 그림세계와 관련하여, 필자의 개인적인 관심에 따라 편의상 

세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미인도를 하나의  항목으로 묶고, 

달마도, 포대화상도, 500인 나한도 등 도석인물화를 다른 항목으로,

그리고 영모.화조화 등을 세번째의 항목아래 묶어 탐색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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