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학교밖에서 배운 화가
그림그리는 일로 평생을 살아 온 교당을 만약 예술심리학자나
인문주의자들이 만난다면 다소 의외의 예인으로 여겨질 것이다.
예술가라면 스스로 몰입하는 그림이나 시적 세계 이외엔 그 어느
것에도, 심지어 사회적 규범과 윤리적 옳고 그름에 무관심한 시선을
가지고 있어, 보통사람들에게 가끔은 호기심이나 경외감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인물로 여겨지지 마련인데, 교당은 그런 기질의 화가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게나 오래도록 미인의 얼굴을 그려 온 교당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 성품이 너무 반듯하고 옳바른 예절을 지니고 있다.
그림그리는 재주가 특출한 손으로 집 서재의 방바닥에 펼쳐놓은 흰
종이와 씨름하며 그림을 그리면서 이를 팔아 가정의 생계를 성실하게
꾸려나가는 성실한 가장인 교당을 누가 보아도 괴팍스런 고갱과 같은
보헤미안 예술가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과학적 이론이 풍부한
르네상스 형의 지성인 화가도 아니다. 남에게 다정다감한 품성의
평범한 이웃 노인일 뿐이다.
남을 배려하는 이 노인과 대화를 해보면, 그가 예술이란 주제를
놓고 깊은 철학적 사고에 빠져들 인문학적 연구가가 아닐 것임을
느낄 것이다. 그는 조선 후기의 유랑인 화가 오원 장승업이나 19세기
빠리의 베헤미안 시인 베르레느 처럼 그가 속한 사회와 이웃에
무관심한 반사회적 예술가 형이 아니라 ,예의 바르고 선량한 이웃
노인으로 그와는 서로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그는
그림그리는 일이라면 누구에게 뒤지지않고 그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실천적 예인이다. 소설가 마크 퉤인이 스스로 터득한 말과 글로서
자신의 창조적 재능을 사회의 관심을 모으듯, 교당은 천부적인 손재주로
이웃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와 술잔을 나누다보면 엉뚱한 몽상을 꿈꾸게 된다. 그와 먼 여행길에
나서는 일이 그 몽상이다. 그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동네를 , 그리고 그의
가족이 함께 살고 있는 편안한 집을 떠나 낯선 곳의 메마른 모래언덕과
낯선 유랑객들이 붐비는 먼 땅의 어느 커피 향 가득한 광장에 그와 함께
들어선 여행객이 된다면? 교당은 마음만 먹으면 팔순 중반의 나이에도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여행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유혹적인
몽상을 하게 된다. 그와 나서면 여행경비 걱정을 하지않아도 마음 가는
곳 어디든지 가 머물 수 있다. 여행에는 비행기 값만으로 나설 수 없다.
먹고 자고 하는 일이 여간 돈 많이 드는 일이 아니다. 돈 없으면 현지에서
꼼짝도 할 수 없는 게 여행 현실이다. 뽀죽한 대안없이 그런 먼 여행을
그와 함게 나서면 구걸하지 않더라도 어려움 없이 경비를 장만할 수 있다.
어디에 가던 간에 우리가 머문 곳에서 그가 붓과 종이로 그린 그림으로
대처할 수 있기때문이다.그가 그린 그림이 그 자리에서 현금처럼 쓰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새로운 '혹보'가 되어 그림 주문을 위한
통역 겸 안내자 역을 해낼 것이다. 혹보라면 그의 청년시절 거제포로
수죵소에서 미군들 초상화를 그려주며 돈을 벌 때 그 일거리를 주문
맡아 오던 그의 이웃 할어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