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미화교김 6

jhkmsn 2013. 12. 7. 07:56

                       2.회상의 개울  

 

 

교당은 ,곁에서 느껴보면, 정적 사색이나 이성적 논리보다 감성적인

동적 직관의 성향이 더 강하다. 그에게서는 숲이 있는 산의 고요보다

수평선이 유혹하는 바다의 변화와 출렁임이 연상된다. 아닌게 아니라

그는  바다에 친숙하다. 그가 사춘기를 보낸 곳이나  그 후 평생을

살아온 마산도 밀물과 쓸물이 교차하는 해안이다. 소년기를 회상할 때 

그는 대분시의 바다와 그 곳에서 함께 놀던 동무,'깜치'를 그리움으로

떠올린다.  자신의 소년기를 회상하는 글을 보면, 그는 자신의 소년기의

바다를 의식적으로 떠올리는 게 아니라, 눈만 감으면 그 바다가  눈앞에

나타난다고 하였다. 

 

해방되던 해 17세의 청년 김대환이 일본에서 귀환동포로 귀국하여

마산에 정착한지 두해 쯤 지날무렵 한쪽 눈을 잃게 되었을 때 그의

절망감이 어떠했을까?  절박한 심정에 의술이 더 좋다는 일본으로 

밀항선으로 사생결단으로 다시 건너가기까지 하였으나 그 실명은

돌이킬 수 없다는 최종적인 진단을  받고 눈 앞이 캄캄했을 때의

그 심경은? 그때 그 곳 일본에서 그는 스스로의 결심으로 일본인 화가

목교당을 찾아가 그 도양화가에게서 먹과 붓을 다루며 사군자 치는

법을 배우면서 그 때의 그 좌절감과 막막함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회고하였다. 그후 20여년이 지난 무렵인  1969년에 마산 창동에서

미인도화가로서의  그의 첫 개인전이 열리게 되었다면서, 지금도

그 절망의 순간에 목교당과의 만남이 자신의 삶의 진로를 바꾸는

전환점이었다고  회상하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필자는  뜻밖에도

자신의 청년기의 한때를 연상했었다. 22살의 청년기에 폐결핵으로

몇 년간을 결핵요양원에 묻혀, 언제쯤 회복되리라는 희망도 없이 병실

침대에 누어 매일 매일을 보내던 시절에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을

읽고 읽었던 그 때를 떠올리게 되었다. 필자의 경우, 그 절망의 늪에서 

'마의 산'을을 몇 번이나 읽어가며 ,내가 살아 세상에 다시 나가면 ,

그 때는 글쓰는 사람이 되고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잇었다. 그런 막연한

소망이 그후 30여년이 지날무렵 '구강의 바다'라는 산문집의 출간으로

구체화되리라고는 그 전에는 생상도 못했었던 일이다.

 

우리들에겐 살아가는 동안 삶의 진로에 미치는 획기적인 사건들을

만나게 되지만  그 순간에는 그것을 잘 느끼지못하고 지나기 마련이다.

어떤 사건이 자신에게 삶의 전환점이 되었음을 깨닫게되는 것은

그 후 많은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다. 그것은 교당에게도, 나에게도

그러했었다.  삶의 어느 순간에 일어나는 어떤 절망과 어떤 셤광, 

그  둘 사이에는 끊어지지않은 어떤 연길 고리로 이어져 있었음을 

깨닫게되는 되는 것은 그 이후 아득히 지난 다음의 어느 시점인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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