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샤갈의 손이라면
1.
문신의 그림 '마산항'이 학야의 시선을 붙든 것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 그림의 안이 아니라 바깥이었다. 그림 틀 밖 아래의 빈 벽이었다.
하얀 벽위로 홀연히 떠 오른 낯익은 해안의 아침 바다와 넓은 갯벌이었다.
그리고 호롱불이 켜진 그 바닷가의 한 초가였다. 아득히 먼 날들의 흔적들이
그림의 틀 밖 빈 벽 위에 떠올라 아른거리는 것이었다. 그 바다는 늦은 아침의
눈부신 은빛 잔물결로, 새벽녘 수많은 청둥오리 떼의 날개짓 소리로,
그리고 밀물 때마다 바람에 들바람에 실려 오는 진한 갯내로 늘 소년의 곁에 있었다.
그 바다는 소년에게 새벽마다 새롭게 다가왔었고, 소년은 그 순간마다
가슴 설렘을 느꼈었다. 그 바다는 계절마다 소년에게 선명히 구별되는 빛깔과
소리와 냄새가 있었다. 소년은 그 중에도 햇살을 담뿍 안은 겨울의 늦은 아침 들물로
집 마당의 방축 바로 밑에 이르러 은빛으로 반짝이는 잔물결을 제일 좋아하였다.
소년은 베게아래 들리는 부드러운 새벽바다의 파도소리에 잠을 깨고 반쯤 감긴
눈으로 일어나 그 여명의 바다와 만났다. 그 바다는 새벽마다 소년에게 늘 새롭게
다가왔었고 소년은 그때마다 새롭게 가슴 설렘을 느꼈다.
그 바다엔 계절마다 선명히 구별되는 빛깔과 소리와 그리고 냄새가 있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햇살 가득히 머금은 겨울의 아침 수면이 집 마당 높이에 까지
오른 그 작은 바다의 은빛 잔물결이었다. 소년은 집의 기와지붕에 오르기를 좋아하였다.
바다를 마당에서 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어서였다. 그는 몸놀림이 빨라 집을 드나들 때
집 대문을 통해서보다 담장을 넘어 다니는 경우가 더 흔하였다.
대문이 잠겨 있지 않을 때에도 그 위로 타고 올라 집으로 들어왔었다.
대문위로 올라 아래에서 나를 향해 뛰고 절고 하는 바둑이를 애타게 하는 게
재미 있어서엿다.팽이를 들고 동네의 타작마당에 나설 때에도 바둑이가 따라 나서지
못하도록 앞마당 방축을 넘어 나섰다. 밀물 땐 방축아래엔 그냥 맨바닥이었던 것이다.
내게 화가의 손이 있다면,
눈앞에 아른거리는 갯가의 집 마당과 바둑이를 나무 널빤지나
종이위에 그려 내 곁에 상상 머물도록 붙들어 두었을 텐데!
샤갈의 손이라면 보나마나
그 그림의 바탕색은 모르긴 해도 푸른빛을 띠겠지.
지붕위에 올라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다쪽을 향해 앉은 소년을
이 화가라면 어떻게 그려낼까?
초현실주의적 회상의 그림들,
이를테면 무중력의 상태로 나르는 신부,
날개달린 시계,
떠다니는 염소나 바이올린 연주자를
몽상 중에 그렸을 이 화가라면?
햇살 따스한 오전의 잔잔한 바다 수면아래에 보이는
은비늘 고기떼의 질주와 빈 갯벌위에 가득한 밀게 떼의 햐얀 게다리 군무를!
학야는 가물거리는 회상에 빠져들었다. 자신이 소년이었던 그 아득한 날들의
밤과 낮 속으로 되돌아 가 있었다. 굴밭의 돌 밑에 두 눈만 내 놓고 숨은 꽃게들과
벌이는 눈씨름은 또 어떻고. 새벽의 고요한 수면을 차고 오르는 무수한 오리 떼의
비상 앞에서는, 그리고 그 비상의 우뢰소리에 가슴이 얼마나 벅차 오를까 !
그뿐이겠는가. 동네 건달들의 아지트인 그 오두막, 새벽을 이고 '서끝샘'으로
물 길러 나서는 어머니의 뒷모습, 호야 불을 켜 든 앞 선 소년과 바둑이. 그리고
갈릴리 교회의 새벽 종소리..........
한번은 소년에게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아마 아홉 살 때 쯤 어느 날의 오후였을 것이다.
때 마침 어머니도, 여동생들도 집에 없었다.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소년은 이 때다
싶어 벽장을 열고 찐 살이나 곶감 등이 어디 없나 싶어 그 안을 두리번거리던 중,
눈에 처음 보는 이쁜 상자가 하나 눈에 띄었다. 속에 무엇이 들어있나 싶어 그걸
꺼내들고 얼른 뒤뜰 쪽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그걸 뜯고 열어 보았다.
고습스러운 병이 하나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그 안에 가득한 불그레한 빛깔의 액체에
소년은 뚜껑을 열기도 전에 입맛을 다셨다. 달콤하고 싸하게 입안을 도는,
그땐 귀했던 사이다 맛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한 참이나 애를 써
병뚜껑을 열고 목을 뒤로 젖힌 채 그 액체를 입안 가득히 부어 얼른 꿀꺽 삼켰다.
그 순간 그 액체는 숯불 덩어리보다 더하게 목안을 태우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기도를 막는 것이었다. 소년은 방안에서 헉헉거리다 마당으로
내려와 빙빙 돌기 시작했다. 눈에 번갯불이 번쩍이었다.
이번에는 마당의 방축 아래로 뛰어내려 모래와 자갈위로 몸을 뒹굴었다.
그러던 중 어떻게 간신히 숨길이 열리고 방축 위에서 자신을 향해 짓고 있는
바둑이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 집안엔 바둑이외엔 아무도 없고
그 작은 바다는 쓸물로 갯벌을 드러낸 채 멀리 나가 있었다.
샤갈이라면, 텅빈 갯가의 집 마당, 그리고 그 안에서 맴도는 두 귀가
쫑긋한 바둑이와 철딱서니 없는 소년의 겁에 질린 얼굴 표정을 어떻게 그려낼까?
문신의 그림 '마산항'이 되살려주고 있는, 지금은 사라진 그 갯벌을!
샤갈의 손이라면.... 하며 감은 학야의 눈앞에 소년이 그렇게 떠올라 아른거렸다.
샤갈의 그림에는 동물들이 무중력 상태에서 공중에 떠다니고 사람들은 창문으로
드나든다. 그리고 바이올린은 제 혼자 땅위에서 춤추며 선율을 낳는다.
그 화가의 '나르는 연인들'에는 한 쌍의 젊은 연인들이 서로 껴안고 지붕위로
나르고 있다. 어떤 그림에서는 꽃을 들고 방으로 달려들어오는 젊은 여인과
두 발이 공중에 뜬 남자의 곡예와 같은 입맞춤이 그려져있다.
농부와 그의 아내가 공중에서 마차를 타고 달리며 노래하고있다. 그의 세계는
무중력의 세계이며 그것은 모든 빛을 담고있는 가벼움이며 비물질의 것이다.
샤갈의 그림은 그 앞에 선 모든 이들을 몽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무지개를 타고 달리는 염소가 있는가 하면 밤중에 태양이 빛나는 세계도
그려져 있다. 그의 그림에는 초록색 돼지와 분홍색 소들도 살고 있다.
이런 현상들이 그 화가에게는 마치 자신의 현실인 것처럼 자연스럽다.
그의 그림엔 땅과 하늘의 위치가 서로 구별이 없다.
땅이 때로는 위에 있고, 하늘은 그 땅 아래에 있다.
그 화가는 우주인 유리 가가린처럼 상상속에서 지구밖 아득한 허공에 떠 있는
푸른빛을 띤 신비스러운 구체를 때때로 보았음에 틀림없다.
염소나 당나귀 첼로처럼 지구 자체가 우주 속에서 무중력의 상태로 떠다니고
있음이 그에게는 자연스러웠던 모양이다. 그의 '청색 당나귀' 속에는
화면 한가운데를 가로 지르며 느리게 흐르는 강물위에 구름 떠 있는
하늘이 비치고 있다. 그 강의 이편과 저편을 있는 빨간 돌다리가 있다.
이 쪽 푸른 기슭에는 덩치 큰 청색 당나귀가 한 마리가 꽃들이
가득히 담긴 청색 화병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오른쪽 모퉁이에는 모자를
쓴 조그마한 사나이가 그림을 바라보는 나와 눈길을 마주한다.
이 그림은 청색의 당나귀가 중심인물이다.
그 갯벌 해안이 눈에 아른거리면 학야는 삶의 무거움이 언제 그러했던가 싶게 깃털처럼
가벼워짐을 느낀다. 그의 내면엔 그 순간 자유로움이 가득해지며 마음을 들뜨게 한다.
소년의 바다는 부채꼴을 띠고 있었다. 소년이 그 지붕위에 앉으면 부채꼴의 바다가
그와 마주하였다. 그가 앉은 지붕은 앞쪽의 그 부채꼴 해안의 한 끝점과 등뒤 쪽으로
보이는 마름모꼴의 놀이터와 서로 맞닿았다. 지붕위에 앉아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면,
왼편으로 길게 늘어선 해안의 갈대숲이, 정면으로 먼 쓸물 끝자락에 이는 흰 물거품 선이
그리고 오른 편의 큰 바다 길목에 자리 잡은 해안 방파제가 각각 하나의 끝점이 되어
이루는 일종의 부채꼴의 바다였었다.
2.
소년은 언제나처럼 그 바다는 항상 곁에 있으려니 하고 예사로 여겼다.
그런데 어느 날 소년이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그 바다가 쓸물 따라
그 큰 바다로 향하는 길목의 산 아래에 서서 한참이나 자신에게 눈길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그에게 다가오지 않고 그 산모퉁이 너머로
사라지려는 것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바다는 해안의 갈대밭과 갯벌과
함게 소년에게서 더욱 멀어졌다. 그로부터 소년은 그 바다가 있었던 곳 주변의
흔적과 냄새를 통해 그 바다와 만날 수 있을 뿐이었다.
앞서 말한 문신의 그 바다그림의 액자 밖 왼편 모퉁이 공간은 곧
그 소년의 바다였다. 물이 들고 나는 폭이 가장 큰 사리가 되는 날의
밀물 때에는 은비늘 빛으로 반짝이는 잔잔한 바다가 되고 쓸물 때에는
꽃게, 밀게, 쏙들이 소년과 바둑이를 유혹하던 갯벌 천지였다.
문신의 손으로 되살아난 마산항의 원래의 모습 앞에 학야는 흐릿해지는
두 눈을 부비며 서있다. 이 조각가의 편지에 의하면, 어린 날에 어머니 따라
나선 이 갯벌의 어딘가 모래 터에서 밀물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모래성 쌓기에
몰입하였던 일이 그 조각가의 예술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하였다.
소년의 놀이공간이었던 그 갯벌 바다는 그의 단짝 동무였다.
아득한 날 그 바다는 바둑이만큼이나 호기심이 강했다. 여간해서는
소년의 손에 붙들리지 않는 바둑이보다 더 당돌한 존재였다.
그 바다는 햇살이 따스한 계절의 늦은 아침에는 졸음에 겨운 경아지의
표정이나 아니면 잔물결 위로 느릿하게 선회하는 갈매기들의 윤무를
닮고 있었다. 바람이 드센 날의 쓸물 때에는 왼편 끝자락의 해안가를 따라
이어진 갈대숲 노래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먼 바다로 향하는
오른쪽의 바다 길을 응시했었다. 그 작은 바다는 소년의 집 마당의
방축 바로 밑까지 차올라 그 흐름을 멈추면 소년은 바둑이와 함께
방축위에 걸터앉아 수면 아래로 투명하게 비치는 꼬시락이나 농어새끼들과
눈씨름을 하거나 아니면, 조심스레 그들 곁을 지나는 민첩한 갯강구들에게
놀림당하는 맛을 즐기곤 했었다. 그 작은 바다는 바둑이와, 연과 자새, 널빤지,
스케이트 등을 챙겨두는 헛간이 소년에게 그랬던 것처럼 소년의 일상적 삶의
일부였었다.
아마 그 바다는 어느 날 쓸물을 따라 마산항의 돗섬을 지나
큰 바다로 향하는 길목까지 나와 거기서 먼 마다에서 온
낯선 조류와 큰 파도를 만났음에 틀림없어.
모르긴 해도 그 여행자들은 그 호기심 많은 구강의 작은 바다에게
자기네들을 따라 조금만 더 멀리 밖으로 나가면
수면위로 튀어 오르는 은백색의 날치 떼들이나
큰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집채만한 물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고
속삭였음에 틀임없어.
더 나아가 그 방문객들은 작은 바다의 손을 이끌며 더 넓고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 거대한 문어가 사는 바다 동굴로 들어가 보자가
유혹했음에 틀림없어.
그냥 우리들을 따라 오기만 하면 돼.
좀 더 나가면 통영 앞 먼 바다가 나와. 넌 매물도 섬을 모르지.
더 먼 바다의 유혹이 시작되는 곳이지.
그 섬에서 동남쪽의 수평선으로 곧장 향하면 더 넓은 인도양이 나와.
우리는 좀 더 나가 수평선 쪽 해로를 따라 홍해로,
그리고 에메랄드빛의 지중해로 나갈꺼야.
그 바다엔 머리가 6개나 되는 괴물 스칼라가 산 동굴도 있었고 ,
트로이의 용사 오디시유스를 유혹했던 사이렌도 살았었대.
먼 바다의 파도와 조류는 이런 꿈같은 이야기로 그 작은 바다의 마음을
교묘히 뒤흔들었을 것이다. 호기심 많은 그 바다는 먼 바다의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한번 씩 소년과 바둑이에게 고개를 돌리면서
그 조류와 파도를 점점 더 멀리 따라 나섰을 것이다. 그리하여 소
년의 그 작은 바다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으로 점점
더 큰 바다 쪽으로 나아가, 급기야는 남해 쪽으로 물러나는 거대한 쓸물의
조류에 휩쓸려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길로 들어섰을 것이다.
3.
우리에겐 해야 할 말이 많은 순간 오히려 침묵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기 마련이다. 해야 할 말을 글로 좀 쓸까 싶어 펜을 드는 순간
편지지만 축내는 때도 더러 있다. 말이나 글이 마음 밖에서 겉돌기 때문이다.
그런 때는 화가들이 부럽다. 그들은 손으로 말한다.
침묵으로 더 말을 많이 한다. 그들은 비밀스레 간직한 그리움이나
마음에 깊이 새겨진 상처를, 혹은 특유의 미적 영감을 소리없이
그림이나 조형물로 단순화한다. 그 순간 그것들은 단순하고 자유롭다.
화가들의 손을 떠난 그 창작물들은 스스로 살아 색채의 바다에서
유영하거나 때로는 미세한 사유의 떨림을 일으킨다.
렘브란트의 그림에는 화가의 유년기에 그가 드나들었던 방앗간의
작은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깥 늪 지대위의 빛과 그늘이 그대로 옮겨져
있다고, 그러니에는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방앗간 바깥의 늪 위에 깔린
어슴푸레한 빛이 곧 그 화가의 그림에 옮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학야는 렘브란트의 그림을 볼 때마다 언뜻 그 부채꼴의 작은 바다와
그 소년이 드나든 오두막의 작은 봉창으로 스며드는 저녁 빛으로 인해
화투 패를 손에 쥔 그 주인 명구아재 얼굴위에 생기는 빛과 그늘을 떠 올린 적이
있었다. 시력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명구아재는 소년에게는 이야기 창고였다.
'열려라 참깨', '용마산 뫼구' '암행의사 박문수' 등은 다 그가 들려 준
이야기들이었다.
소년이 노름판이 벌어지는 그 오두막 방으로 들어가 명구아재의 등 뒤
이불 속으로 손을 넣고 앉으면 그는 화투장을 눈에 바싹 대고 노름판에
열중하면서도 연신 소년 쪽으로 고개를 돌리곤 했었다.
전날 동네 타작마당에서 벌어진 두 맞수 건달 간의 한 판 대결에서
누가 어떻게 이겼는지를( 물론 그는 한 건달로부터 이미 그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다.)직접 목격한 것처럼 현장감 넘치게 설명해주었었다.
그 뿐 아니었다. 한 겨울 눈 내리는 동네 자갈길을 달리는 미군용 트럭위로
건달 둘이 표범처럼 뛰어 올라 양담배와 미군 담요, 레이션 박스를 내던진 후
도둑고양이의 발걸음으로 뛰어 내리는 무용담도 있었다.
명구아재는 잘 보이지 않는 눈을 깜빡이며 실감나게 그 이야기들의
실타레를 풀어나갔고, 소년은 그의 뫼구 이야기에 얼굴을 이불위에 묻은 채
귀만 잔뜩 열어놓았다. 그는 오두막의 그 골방을 드나드는 덩치 큰 젊은
건달들과는 다른 인물이었다. 호롱불이 흔들리는 그 어둑한 골방에서 아랫목에
놓인 화롯불을 끼고 앉은 그 아재는 만날 때마다 그렇게 진기한 이야기의
세계를 펼쳐주거나 끊임없이 소년의 호기심과 먼 곳에 대한 어떤 동경을 불러
일으키는 유혹자였다.
어느 해 여름. 학야가 먼 여행에서 돌아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을 것이다.
창동 나들이 중에 현재호의 아뜰리에로 향했다. 두 눈을 깜 빡이는 명구 아재의
얼굴이 아련히 다가오고 뒤이어 중첩되는 어시장의 화가 현재호 얼굴이
서로 닮았다는 생각에 퍼뜩 들어서였던 것이다.
지금 학야는 샤갈의 손을 생각한다. 그 손으로 까마득히 아득한,
그리고 그렇게 멀지 않는, 과거의 한 모퉁이 해안을 심안에 포착한다.
그것을 푸른 빛 원경으로 해 두고 전경에는 소년의 발이 담긴 수면 아래
꽃게들의 은밀한 음모와 학꽁치 떼들의 은빛 퍼득임이,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어두운 색의 하수구와 병든 개 한 마리가 그려진다.
샤갈의 '나의 마을'을 연상하면서 그린다. 그렇지만 샤갈이라면,
그가 다시 태어나 이 땅의 우리들 곁으로 온다면, 정작 그 화가는
자신을 좋아하는 구술자의 이 풍경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 같다.
시정이 풍부한 샤갈의 '나의 마을'과는 달리 구술자 학야의 이 상상의
그림 한 편에 그려진 도심의 이미지나 색이 잿빛으로 메마르기 때문이다.
학야는 눈 앞에 아른거리는 다른 영상을 또 붙들려고 시도한다.
목과 머리만 물 위로 내놓은 채 물 속에 서 있는 소년의 즐거움 가득한,
간지럼을 참고있는 얼굴이 그것이다. 아마도 소년의 그 표정은 물 밑 바닥의
발가락 사이로 꼬물거리는 작은 물고기 꼬시락의 감촉으로 인한 것일 것이다.
이곳에서 소년시절을 보낸 이라면 누구나 소년의 그 묘한 표정에서
그 물밑 상황을 훤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즈음 알몸의 조무래기들이
소년이 서 있는 물속으로 한 둘씩 들어간다. 얼굴 목둘레가 태양아래 까맣다.
삐죽거리는 궁둥이들마저 까맣다. 그 조무래기들은 이른바 수영복이라는 것을
모른다.
이번에는 이 도심의 외곽에 남아있는 ,보통 때는 기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철길이 학야의 심안에 포착된다. 해질 무렵 그 위로 도심으로 향하는
검은 석탄 기차가 노인네 걸음으로 악을 쓰며 들어온다.
철로를 깔고 앉은 노점 상인들에게 길을 비켜달라는 신호를 반복하며
보낸다. 생갈치 파는 여인네는 기차야 오건 말건 뽕짝 노래에 어깨 춤추며
허리춤에서 깨낸 잔 돈 세기에 바쁘다. 한 더위가 지난 오후 물이 더러운
개천가의 그늘은 깊으나 철길가의 이름 없는 들풀과 주인 없는
강아지의 머리 위로 내리는 햇살은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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