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신의 회화 한 점
1.
지난 해 마산의 문신미술관에서 열린 조각가 문신의 회화 작품전의
바다풍경 작품들 중 특히 가로로 긴 유화 한 점 '마산 항'이 학야의
눈길을 한 참이나 사로잡았다. 그 그림에 재현된 옛 해안의 갯벌이
그 풍경이었다. 학야는 자신도 모르게 그 회화 속으로 몰입되었다.
그 해안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 지금 그 해안의 옛 실체를 기억하는
이들도 거의 없다. 그 곳에서 멀지 않는 마산의 도심 창동에서 노후를
보내는 이들 사이에 간혹 이야기 되고 있거나, 아니면 그 바다와 더불어
삶을 살았던 지역 작가들의 회상 속에서 만나는 이른바 비물질의
이미지일 뿐이다. 오래전에 사라진 그 해안이 놀랍게도 한 화가의 캔버스 위에
재현되어 그 형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어른 키 깊이의 물속에서 군락을
이루는 해초인 질피 뿌리의 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단 맛이,
그리고 밀물이 차 오를 즈음 얕은 물가로 은비늘 빛을 퍼덕이며 달려오는
농어새끼들을 낚아 올리는 짜릿한 손맛이 그대로 몸속에 녹아있는 자의 눈앞에!
"제 멋대로 자란 강아지처럼 그 바다는 한 곳에 잠깐 동안도 머물지
않는 녀석이었어. 아침에 집 마당에서 꽤 멀리 보이던 것이
내가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돌아온 정오쯤에는 슬그머니
집 마당의 축대에까지 다가와 있거든. 어떤 경우, 한 밤에 집 마당 곁에서
찰랑거리며 놀던 것이, 새벽에 일어나 보면 어느 새 빈 갯벌을 남기곤
청둥오리 떼들 뒤따라 멀리 떠나 있기도 했었어. 그 뿐인가.
맨발 바로 밑에 까지 다가와 잠이 든 듯 꼼짝도 않고 웅크리고 있던
놈이 혼자 물결 춤을 추며 내게서 달아나기도 했었고.
그러던 게 언제쯤인가부터 영 나타나지 않았거든. "
그림비평가라면, 모르긴 해도, 이 도회인의 그런 주관적 회상과는
거리가 먼 감상의 눈을 가지고 그 그림을 대할 것이다. 그들은 그림과의
사사로운 문학적 교감에 몰입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 화가의
심미적 태도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그들은 그림을 그 속의 대상물이나
내용이 아니라 그림 그 자체로서 바라볼 것이다. 인물, 꽃이나 과일 혹은
자연과 같은 어떤 대상을 찾으려 하기보다,
' 그림이란 구체적인 일화이기 전에 그건 색으로 덮여있는 평탄한 평면'이라는
어느 화가의 말을 따라, 그림 속에서 화가의 어떤 미의식을 탐색하고자 할 것이다.
그들이라면, 조각가 문신의 회화작품에 흥미를 가진다면,
그건 그림의 주제보다 그 형태로 인한 것일 것이다. 이를테면 재현적인
사실주의적 회화의 그 '마산 항' 보다 오히려 모더니즘적 요소가
강한 탈구상적 성향의 다른 그림들에 더 많이 시선이 끌렸을 것이다.
특히, 형태의 뒤틀림을 통해 표현주의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는
'소 나 '소녀상' 혹은 자유분방한 붓질을 통해 시각적 겉모습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한 '어부들'이 그런 그림 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신의 1957년 도 회화작품인 '소'는 이 조각가의
회화적 족적에 중요한 의미를 제공할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변화의 시작인 엥포르멜의 비정형적 추상이 이 그림에
적극적으로 수용되어있기 때문이다. 이 화화들은 문신이 조각가로
성장하기 전 입체파와 야수파의 성향의, 이른바, 모던아트 그룹에
참가했었던 시절의 작품이었다. 박고석, 천경자 , 유영국 등이
그 그룹의 구성화가들이었다고 하였다.
그 시기에 문신은 화가로서 단순, 명료한 형태를 선호하였고,
대상은 탈구상적으로 간략하게 처리했었다. '나리꽃'의 경우,
재현성의 형태적 군더더기는 사라지고 평면적으로 분할된
색채 화면이었다. '정물'에서는, 대상의 전체적인 주조가 주황빛이었다.
그리고 구상회화의 근간이 되는 명암은 그에게는 이미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던 것 같다. 유화 '덕수궁에서'는 덕수궁의 석조전을 자연주의적 묘사는
외면하고 시각적으로 알듯 모를 듯 상기시켜 주는 날렵하고 세련된 손길의
그림이었다. 이 화가의 도회적 선호경향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덕수궁에서'라는 제목이 없다면 무엇을 대상으로 나타내보였는지
분명하지 않은 인상주의적 분위기의 풍경이었다.
다시 학야의 개인적인 사색의 길로 들어서보자.
이곳 문신미술관의 전시장 벽에 나란히 걸린 문신의
이 '마산항'과 또 다른 바다풍경인 '잔설'은 둘 다 마산 앞 바다를
재현한 보편적인 자연 풍경들이다. 그런데 두 그림은 내용에서보다
그 액자로 인해 학야에게는 더 흥미롭게 비교되었다.
'마산항'의 경우, 유난히 그 액자가 그림을 압도하기 탓이다.
그 액자는 단순한 그림의 장식적 기능을 넘어 그 자체로 하나의
조각품이라는 의미이다. 그 그림의 흑단의 액자위에는 꿈틀대는
여체의 누드들이 부조되어 있어 그 그림 앞에 서면 얼핏 시선이
그림 안으로보다 그 액자 자체에 머물기 십상이다. 흑단나무로 된 틀에
부조된 해녀들의 동적 형태미가 눈에 두드러져, 자연주의 형태아래
고요가 가득한 이 회고적 바다풍경이 너무 평범하게 보일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특징적으로 문신은 1950년대를 전후하여 구상적 묘사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형태의 구성에서 표현주의적 요소를 강하게
드러낸다. 예컨대, 바다를 배경으로 한 유화 작품, '암초'는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 에밀 놀데의 가을 바다와 많이 닮았다. 둘 다 대상의
형태를 과감히 해체시키고는 있지만 그 고유한 형태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점에서 그렇다.
2.
문신은 전에 이 도회인이 마음이 아니라 머리로 만나는 조각가였다.
흑단이나 대리석 또는 청동으로 제작된 작품들은 그 표면이 보석처럼
정묘하고 세련되게 연마되어있는 추상성의 조각가이다. 무엇보다
비대칭적 조화의 시메트리 양식을 띤 그의 조각품들의 시각효과는
탁월하다. 작품이 어떤 때는 반짝이는 '이슬방울 같은가 하면, 때로는
단단한 수정체 같기도 하다.' 문신의 조각품은 언제나 탐구적 사색을
요구했었다. 작품 속에 내재된 구상성과 비구상성의 조화를,
파리의 모더니즘속의 샤마니즘 등등을 간파하는 데는 깊은 통찰이
요구되었던 터였다.
문신은 그 의 조각품' 태양의 인간' 으로 인하여, 학야에게는 얼핏
루마니아 조각가 브랑쿠지의 단순성을 추구하는 손길을 연상케 하였던
조각가였다. 그렇지만 단순한 호기심으로 찾은 그의 회화 작품전에서
이 예술가를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만나는 뜻밖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아래는 이 날 문신미술관의 그 전시실에서 한 학예사와 나눈 대화의 일부이다.
: '난 그의 회화세계, 특히 이 회상의 풍경화 '마산항'을 통해 예술가 문신과
매우 가까워진 기분을 느낍니다. 전에 그의 조각품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 '큐레이터로서의 저도 사실 그렇습니다. 솔직히 저에게도 문신과의 개인적인
교감이 일어나는 경우는 그의 이런 회화세계이지 조각품 앞에서가 아닙니다.'
: ' 예술가 문신이 나와 고향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내게 남다른 분이지만,
그의 조각 작품들 앞에서는 늘 소외감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그와 거리감이
느껴졌거든요. 지금 이 그림앞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가슴이 설레기 까지 합니다.'
: '이번 전시회의 회화들은 1950년대 전후에 그려진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도록에서처럼 그의 초상화, 가을고추, 정물 , 그리고 추산동의 하늘 등이
모두 조각가로 나서기 전의 작품들입니다.'
: '학예사 선생은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가 봅니다. 마산의 창동거리에서
나와 얼굴이 마주치지 않는 걸로 보아.'
:' 아, 예. 그동안 서울의 문신연구소에서 근무했습니다.'
: '혹시, 저 아래 창동거리에 나오시면, 북 카페 '시와 자작나무''에 한번 들리십시오.
커피도 마시고 이 지역 화가들도 만나실 겸. '
: ' 선생님은 이 지역의 화가들을 많이 아시나 봅니다.'
: ' 그냥 이 지역 화가들에 관련된 글도 쓰고 .......'
: ' 문신의 회화들이 조각품보다 더 마음에 드신다는 말씀에 개인적으로
깊게 공감합니다. 저쪽 벽의 드로잉 작품들도 한번 보세요. 조각가 문신이
얼마나 뛰어난 소묘가인지 금방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작은 소묘들 중 한 인물화에 학야의 눈길이 멈췄다. 보편적으로 선묘중심의
소묘라고 하면, 윤곽선이 그 생명인 것인데 종이에 펜 끝으로 그려진
이 인물 드로잉이 특히 그러하였다. 첫눈에 화가의 냉철한 관찰력이 느껴지는
이 드로잉은 이 지역의 이름 난 화상이자, 동서화랑 관장인 송인식의 젊은 날의
얼굴 그림이 아닌가! 그 학예사의 말처럼 문신의 드로잉은 선의 흐름이 유려하다.
그의 채색 드로잉의 경우에도 그 치밀한 선의 흐름이 거침이 없다.
문신의 드로잉은 '마치 모래밭위에 낙서하는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막힘이 없다.'
이러한 선의 예리함과 자유로움은, 그의 조각품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좌우대칭의 미학 이른바 시메트리의 원리를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의 색채 감각도 탁월하다. 특히 채색 드로잉의 경우, 그것들은 그의 3차원의
조각세계의 설계도 일뿐 아니라 그 자체가 지닌 조형성으로 인해 독립적인
예술품이 되고 있음은 다 아는 일이다.
학야의 발길을 붙든 그 소묘의 인물은 창동이 그의 삶에 얽혀 들어오기
시작한 이래로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 소묘의 인물은 창동의 화가들의
골목 어디에서나 그의 보이지 않는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화상이었던
것이다. 지역화가들의 삶에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다.
그는 현재도 노익장의 풍모로 이 창동거리에서 아직도 주변의 시선을 끄는
스타일리스트이다. 그런 노익장의 청년기 얼굴이 여간 흥미롭지 않았다.
선 드로잉으로 포착된, 반소매와 노타이 차림의 조용하고 비교적 지성적인
외모였다. 그림속의 이 젊은 얼굴은 지금의 그런 노익장의 인상과는 무척이나
대조적이었다. 이 소묘에 담긴 젊은 얼굴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진지하고
순수하기 까지 하였다.
현실속의 그의 외모의 특징은 한 마디로 붉은 넥타이와
흰 와이셔츠 소매 끝 단추의 고급스런 반짝임이다. 그리고 이 스타일은
잘 가다듬은 콧수염과 잘 어울린다. 그의 콧수염은 금테 안경 너머로 상대를
꿰둟는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속내를 능란하게 가리는 세련된 눈웃음과
문화적으로 잘 어울렸었다. 자칫 홀로 튈 소지가 높은 자신의 콧수염이
풍모 전체의 미적 조화에 손상을 입히지 않으려는 데 포인터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존재의 독자적인 미보다 그것이 처한 상황과의
조화가 더 큰 의미를 가진다고 믿었던 것 같다.
3.
문신의 유화 '마산항'은 지금은 사라진 한 갯벌 해안을 학야의 내면에
옛 그대로 선명히 그대로 되살려 주었다. 아득한 날의 그 갯벌이
눈 앞에 선명히 재현되는 것이었다. 쓸물로 텅 빈 바다 한 가운데의 갯벌에
퍼질게 앉아 깜부기의 긴 줄기로 갯벌의 구멍속의 '쏙'을 꼬여 잡던 순간이!
' 우리의 관심은 회화일세. 채색된 평면이지, 이야기의 줄거리나 전설은 아닐세'
라며 핀잔까지 주면서 나의 문학적 그림감상에 동의하지 않는 화가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야는 그들의 눈치를 살펴가며 혼자 말처럼 그 순간을
그림이 아니라 말과 글로 포착하고 싶어한다, 몽글 몽글 떠오르는 그 갯벌을.
그 갯벌의 '쏙'은 모양은 가재처럼 생겼으나 가재처럼 행동하지는 않는다.
'쏙'은 물속에서 무리를 지어 수평으로 기어 다니지 않는다.
갯벌 바닥에 깊은 구멍을 스스로 만들어 그 속에 살면서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
껍질이 비교적 연한 갑각류이다. '속'은 눈치가 빠르고 민첩하여 아무에게나
잡히지 않는다. 갯벌 바닥에서 숱한 시행착오로 그 일이 손에 제법 익어야
그들을 잡아낼 수 있다. 이 '쏙'을 잡는 데는 주로 오른 손의 엄지와 집게손이
주로 활용된다. 보조도구로는 젓가락만한 길이의 보리깜부기와 호미이다.
호미의 경우, 이 도구는 바닥 고르기를 위해 필요할 뿐, 더 이상은 아니다.
바닥의 표면을 얇게 조심스럽게 걷어내어 엄지손가락 크기의 구멍에서
맑은 물이 송송 올라오면 그 땐 호미의 역할은 끝난다.
그 다음 작업은 깜부기가 도맡아 한다는 말이다. 이때 곡 필요한 재로로
된장 조각이다. 그 재료는 그들의 후각을 자극하는데 필수적이다.
온 바다가 쓸물 때 갯벌천지가 되면 그 갯벌의 중앙쪽으로 들어가 먼저
사방으로 바닥표현을 면밀히 살핀다. 갯벌의 바닥 아래 조개류나
쏙, 작은 밀게 등이 들어 사는 곳의 표면에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올라오는,
바늘 귀 만한 크기의 작은 구멍들이 있어 사방 여기 저기에서 그런 표면이
눈에 포착된다. 이 때 가급적이면 가늘게 솟아오르는 물줄기들이 한데
모여있는 바닥을 선택해야한다. 호미질 한 차례에 여러 구멍들이 한꺼번에
드러나는 곳이라야 요지가 된다. 장소를 옮기면서 호미질로 시간을 보내서는
제대로 수확을 올릴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 빈 갯벌이 얼마 잊지 않으면
밀물로 인해 다시 가득함의 바다로 되기 때문이다.
문신미술관의 전시장에서 그날 학야의 시선이 유난히 쏠린 곳이 한 군데
더 있었다. 그 곳은 그 그림 안이 아니라 밖이었다. 그림틀 밖의 빈 벽이었다.
그 하얀 벽위로 떠 오르는 작은 동네의 영상이 그것이었다. 해안 가에 위치한
그 동네 한 복판으로 가로지르는 자갈투성이 신작로, 그 길 왼편의 잎이
무성한 노목과 교회의 종탑 그리고 길 오른편 모퉁이의 초가 한 채를 동반한 채로.
그 순간 호롱불 빛의 그 초가에서는 소곤거림의 알리바바 이야기가,
그리고 그 교회 종탑아래서는 귀에 익은 풍금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추산동 언덕
문신 미술관은
문신의 옛 집.
유료 골프놀이터였다.
인어 조형물
모형 물레방아와 폭포
미끄럼틀 등
눈에 보이는
놀이 설치물 마다
하얀 공에게는 넘기힘든 장애물.
오동나무 고목의 가지 사이로
황혼빛으로 물든
창동 한 모퉁이와
먼 바다의 물빛이 내려다보이는
문신의 옛 집이었다.
부림동 정법사를 지나
철길 횡단보도를 지나
왼편으로 알맞게 구부러진 경사로를 따라
이 곳으로 오르는 길은,
갈색돌담과 잎이 엉성한 가로수만 좀 있다면
유트릴로가 그린
라뺑아질 카페가 있는
몽마르트르 언덕길 같을 꺼야.
뮈르제, 아폴리네르, 모질리아니 등이 드나든
카페 라뼁 아질 앞
그 돌담 언덕길 같을 꺼야.
그의 '마산 항' 그림의 왼쪽 모서리에서 대각선을 따라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그림속의 낮은 산과 작은 섬 사이에 먼 바다로 향하는 물길이 눈에
들어온다. 오래전에 은빛 반짝임의 그 작은 바다가 멈추어 서서 머뭇거리다
떠나버린 바로 그 바다 길목이다. 소년이 청년이 된 후에도 그의 시선이
늘상 향하던 바다 길목이다. 학야는 그 화가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더 멀리 두며
장 그러니에의 한 마디를 떠 올린다.
'시험 삼아 샤갈을 따라가 보라.
그러면 그 화가는 네가 원하는 곳으로 너를 인도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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