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과거의 우물 9

jhkmsn 2014. 9. 30. 19:24

                                 동경

 

 

나의 글쓰기는 여행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내게 먼 여행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 글도 없을 것이다. 나의 대부분의 배낭 여행은 글을 위한 것이었을 뿐, 여행 그 자체가 주된 목적이 아니었다. 내가 머물었던 낯 선 도시에서 시선을 끄는 어떤 대상이 아무리 특별한 전통성이나 문화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도, 어 떤 창작적 주제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그건 내 발걸음을 붙들지 못했다. 여행 중의 모네가 그림그리기 이외의 그 어떤 것에도 무관심했던 것과 같다. 모네가 순수한 회화적 탐닉자로서의 여행자였듯 나는 오로지 문학적 탐닉자로서의 여행자였다.  

 

앞에서 잠시 말하였듯이 나의 첫 먼 여행길에서 운명적으로 손에 쥐게 된 책 한권이 있었다. 지난 1990년 봄 런던의 노점에서 눈에 띄어 내 손에 들어 온 이래 여지껏 내 책장에 머무르고 있는「Cafe Society」가 그것이다. 이 책과의 만남을 두고 나는 스스로 ‘운명적’이라고 말한다. 그 책으로 인해 그 때부터 내 손이 작가적 인식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원서를 마음을 다하여 번역한 후 그 역서의 후기에 담은 글 한줄을 시작으로: ....그 때 먼 천둥소리 들리고.....그 한 줄이 나의 글쓰기 행위의 첫 곡갱이질인 셈이다. 고갱은 40이 넘은 나이에 가족을 버리는 화가가 되었다.

 

나는 그 화가보다 좀 더 늦은 나이에 어머니를 탄식케 한 글쟁이의 길로 들어섰다. 어머니 눈에는 삶에 아무 쓸모도 없는 무직자가 된 것이다. 나는 틈만 나면 집에서 도망치듯 여행길에 나섰고, 돌아와서는 노모의 낙담과 자조를 견디어야 했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그로 인해 전혀 예상치 못한 효자가 된 셈이었다. 어머니가 아흔이 넘게 내 곁에서 반짝이는 눈으로 장수하신 까닭은 그런 모자라는 자식을 노모가 도리어 건사해 주어겠다는 마음 다짐이 크게 작용한 탓이었다. 당신이 몸소 잘못 키운 아들의 가정을 보호해야겠다는 단호함이 있었기에 그토록 오래도록 허리 꼿꼿함과 총명함을 유지하신 것이었다.

 

그라나다에서

어느 새벽

꿈속에서

내게로 향한,

어둠보다 더 깊은,

노모의 시선을 보았다.

 

바다 쪽으로! 나의 첫 여행의 목적지는 바다가 바라보이는 해안이었다. 그 때 나의 심안이 향한 곳은 언제나 해안이었다. 햇빛과 고요함으로 가득한 아침바다나 들물과 밀물이 교차하는 오후의 움직이는 갯벌이었다. 마음이 바다로 가득하여 세상 일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면의 흐름을 한 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내게는 오래 오래전 바둑이만큼 친숙한 작은 바다가 있었다. 그 바다가 내 곁에 있었을 때 나는 베개아래 들리는 부드러운 파도소리에 잠을 깨고 반쯤 감긴 눈으로 움직이는 여명의 물빛을 보았다. 그 바다는 새벽마다 늘 새롭게 내게 다가왔었고 나는 그 때마다 새로운 가슴 설렘을 맛보았다. 그 바다는 계절마다 내게 분명히 구별되는 빛깔과 소리와 냄새가 있었다.

 

Cafe Society의 글 속에 보면,  한 젊은이가 불현듯 한 겨울 무작정 고향을 떠나 파리행 야간 열차에 몸을 싣는 구절이 들어온다. 고향에서는 아마도 미친 사람으로 여겨졌을 인물들이 커피 잔을 앞에 놓고 그냥 앉아 서로 마주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그 아늑한 아지트, 카페 <돔>에 가고 싶은 억누를 수 없는 충동이 그 젊은 이에게 있었다. 어느 날 홀연히 내가 중년의 나이에에 바다 쪽을 향해 처음으로 먼 길을 나선 것은, 오래전에 사라진 나의 소년기의 놀이터이었던 그 작은 바다- 밤바다의 잔물결소리-가 더 넓은 바다 쪽 어딘가에 있으리라는 마음이 생기면서 그 소리를 다시 듣고 싶은 그런 억누를 수 없는 충동이 내면에 있었던 것이다.  

 

누구든 여행길에 여행지의 호스텔에 투숙해본 적이 없다면 여행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이다. 호텔에서의 안락한 독숙과는 거리가 먼 고단한 합숙에 뒤따르는 아기자기한 소곤거림이 그런 배낭여정의 맛 중의 하나이다. 푸른 눈의 처녀. 배낭을 벗어 내리며 내게 담뱃불을 청한다.그녀 이마위로 보이는 티 없이 푸른 하늘 눈이 부시다.

 

언젠가 여행지 시애틀에서 처음으로 들어간 호스텔 침실 문 옆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에 난감해하였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일주일분의 숙박비를 선불한 뒤라 도로 나올 수도 없고 그렇다고 첫 느낌에 도깨비굴 같은 실내로 들어가 잠을 잘 수도 없을 것 같고 해서 였다. 숙박비가 헐한 만큼 좀 낡고 좁은 공간이겠거니 하며 문을 연 호스텔의 방안은 놀랍게도 누워있는 10명 정도의 젊은이들이 여러 침대에서 일제히 나를 향해 얼굴들을 내미는 것이 아니겠는가. 2층 구조의 윗칸, 아래칸 침대에 누운 형태가 피부색이 각양각색인 젊은 얼굴들이었다. 순간적으로 지갑이 든 안 호주머니위로 손이 가면서 아차! 싶었다. 이들과 더불어 일주일을 어찌 함께 잠을 잔단 말인가? 하는 마음에서 였다.

 

요즘엔 카드가 있으니 지갑에 돈을 많이 넣고 다니지는 않지만 그 때만 해도 먼 길 나서면 돈 든 지갑은 곧 생명줄이었다. 한번은 뉴욕 맨해턴의 루즈벨트 호스텔에서였다. 그 호스텔에서의 첫날, 깊은 밤, 나는 그 낯 선 허름한 건물의 긴 복도 화장실에 혼자 앉아있는 내 쪽으로  둔중한 발걸음 소리가 내 쪽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어 화장실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 발걸음 소리가 뚝 끊어졌다. 한 사람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온 것이 분명한데? 나는 앉은 채 헛기침을 했다. 너무 조용해서였다. 그래도 역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두렵고 이상한 느낌이 들어 시선을 위쪽으로 향하는 순간 천정이 트인 그 화장실 칸막이 위에서 검은 얼굴의 두 눈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놀라움으로 숨이 막힐 듯한 순간, “하이, 프랜드 !” 하며  하얀 미소를 띤 그 순한 검은 얼굴은 그나마 나의 가슴을 진정시켜주었다. 화장실에서 한 밤 그렇게 만난 그 키 큰 흑인과의 친분을 통해 흑인 청년들과 어울리며 한 밤에도 맨허턴의 타임스퀘어 뒷골목을 겁 없이 배회할 수 있었다.

 

느닷없이 마음속의 주제와 관련하여 한 도시에 강열한 끌림이 느껴지면 우선 그 도시의 여행자의 호스텔에 예약한 후, 저녁 나즐 이웃 마실 나가듯 별다른 준비 없이 길을 나선다. 언젠가부터 나는 항상 그렇게 먼 길을 나섰다. 그런 길 나섬에는 언제나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의 긴 이동이 있었고, 그런 이동 중의 차체 흔들림 마다 고단한 나그네에게 때로는 싯적 중얼거림을, 때로는 회상의 독백을 낳게한다:

그레이하운드와 나란히 달리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 그 내밀한 반짝임의 소곤거림. 와, 아름답구나. 저 깊고 푸른 고호의 밤하늘의 풍경!’

 

오, 다니엘라!

불렉베리 향기 가득한 7월이 오면 ,

윌라미트 강 건너편으로 향할 것입니다.

슈바르츠발트의 상아빛 독일 처녀가 

토요일 밤마다 플라멩코를 춤추는 그 곳 카페,

볼레로로 갈 것입니다.

그녀는 내게 그 빛나는 상아빛 미소를 보내며 솔레아를 춤출 것입니다.

그녀는 우리들의 거실에서 나를 위해 솔레아를 춤추며

그 빛나는 상아빛 미소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혼자 아파 누었을 때, 

블렉베리로 나의 허기짐과 외로움을 달래주었노라고.  

 

포틀란드의 도심에 있는 인터네셔날 호스텔 건물 앞쪽에 카페 월드컵이 있다. 그 카페에는 이 호스텔의 다양한 투숙객들로 붐빈다. 창가에 앉은 어떤 백인 젊은이는 탁자에 노트북을 펼친 채 인테넷에 열중하고 있고 벽난로 가에는 남녀 여행객들이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카운터 자리엔 동양계의 한 중년층이 커피 잔을 앞에 두고 신문을 뒤적이고 있고 모퉁이 자리엔 흑인 젊은 이 하나가 들고 온 기타의 줄을 고르고 악보를 들여다보고 있다. 나는 장곡토의 스케치 그림이 인쇄된 엽서에 카뮈의 글귀 하나, 왜, 저 길이 아니고 이 길인가? 를 휘갈긴다. 그 엽서를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어서 이다.

 

그림엽서에는 글을 쓰게 하는 이상한 힘이 있다. 그리고 그 엽서는 자신의 뒷면에 무슨 글을 써든 개의치 않는다. 그림 엽서는 어떤 글과도 어울리는 신통력이 있다. 거기엔 백색의 빈 종이가 주는 설명하기 힘든 중압감이 없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그림엽서는 아무렇게나 휘갈겨 쓰여지는 글꼴들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 후 몇 년쯤인가 포틀란드의 그 호스텔에 세번째 투숙하게 된 늦가을의 밤 혼자 누어 바깥의 찬 비바람 소리에 잠들지 못한다. 옆자리는 그날따라 거의 비어 있어 실내가 썰렁하여 담요를 둘 더 얻어 덮는다. 감기 기운으로 굳어 있던 몸과 마음이 이제 풀리기 시작한다. 이날따라 굵은 빗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고 시선은 점점 더 안으로 향한다. 어두운 침상의 한쪽 벽위로 홀련히 피어나는 애니 딜라드의 충고 한마디:

겨울이야기는 여름에,

여름 이야기는 겨울에 쓰라.

그리고 더불린에 관해 쓰고 싶으면

파리에 앉아 회상하라.

 

‘나는 나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그 도시들의 의도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머리속에서 떠 올릴 수가 없다........ 나폴리, 불행과 아름다움을 알게 했던 곳.’ 나는 여행에 관한 한, 장 그르니에의 위의 감상에 공감한다. 지나온 여행에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말처럼 그 도시 자체가 아니라 그 속의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뉴욕은 타임스퀘어 광장의 뒷골목, 헨리밀러가 묘사한, 맨허탄의 질척한 거리 속의 낡은 루즈벨트 호텔의 2층 복도가 베일 먼저 떠 오른다. 런던이라면,  어느 지하철 역 앞 노점에서 「카페 소사이어티」를 사 품에 안았던 순간의 거친 비바람이다. 베를린의 그 몰인정한 젊은 놈들! (그들이 앉은 자리의 바깥 복도에서 근 10 시간이나 선채로 흔들리며 달려야만 했었다.)  

 

나는 언제나 혼자 여행길에 오른다. 그 길에는 마음의 순화가 있다. 가슴 속의 분노가 녹는다. 길을 나설 때 마음속에 든 딱딱한 어떤 덩어리들이 돌아 올 때쯤 어느 새 녹아내리고 있다. 그 덩어리를 녹이는 데는 혼자 길 나서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었다. 지평선 위로 동터 오르는 새벽을 부드러운 엔진음 속에서 맞이할 때 그 덩어리들이 녹았다.

바다 쪽으로의 여행이 준 첫 선물은 홀연히 눈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물빛 공간에 한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경이로운 전율이었다. 남해안 바다 한 복판의 외딴 욕지 섬의 산 정상에서 구름 한 점 없는 한낮에 마주한 그 바다의 빛의 과다함 탓이었다. 일시적인 현기증 증세이후 귀가 먼저 열리고 다음에 눈이 열렸다. 벼랑아래로부터 암괴에 부딪쳐 치솟는 파도의 굉음이 들리고 수평선위에 쟁반위의 수석 같은 때로는 소박한 초가 같은 섬들이 한 둘 검은 색을 띠고 아득히 떠 있음이 눈에 들어왔었다. 

 

여행길에는 영감의 빛줄기가 내린다. 영감은 불현듯 어느 한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혜성의 꼬리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 중국인 조각가의  말처럼 '끊임없는 탐색의 누적'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많은 것에 대해 무심해지면서 부터이다. 여러 욕구로 차 있는 눈앞에서는 영감의 불꽃은 나타나지 않는다. 스페인 여행길에서 난 하나의 욕망, 글쓰기에 다한 생각 이외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해 무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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