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폐허와 꽃,
그 두 가지 중에서 어떤 것이 더욱 나의 마음을 끌어당겼는지
나는 그것을 알 수가 없다.
- Jean Grenier (1898-1971)-
그림 읽기
50의 나이에 이르러 나는 비로소 자신의 창작 산문, ‘구강의 바다’를 펴낼 수 있었다. 논문 형식의 글이나 번역작업의 굴레에서 벗어나 내면의 소리를 처음으로 쓰게 된 것이었다.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둔 한 작은 바다의 들물 소리와 갯벌냄새가 사유하는 손의 도움으로 종이에 담긴 글이 된 것이었다.
눈앞에 나타난 그 첫 글은 ‘... 내게는 늘 마음으로 그리는 바다가 있다.’이었다. 그 한 줄은 점점 자라면서 길이 있는 곳에서는 숨 쉴 틈 없이 내달리고, 험하지 않는 언덕은 부드러운 땅을 따라 새로 길을 내어 나아갔다. 그리고 잡목과 바위투성이의 높은 야산에서는 제 스스로 곡괭이가 되어 길을 뚫어내었다. 빠른 속도로 길을 내면서 나아갔다.
내닫는 글줄의 뒤를 내가 따르기가 힘들어 주저앉으면 그 한 줄의 글은 저만치 앞에서 나를 기다려 주었고 마침내 그 길잡이는 높고 험한 재에 이르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곳에만 이르면 탁 트인 시야로 길 나서기가 용이할 것 같아 숨이 턱에 닿는 것도 무릅쓰고 그 위에 올라섰다. 맑은 공기부터 들이마시고 앞을 내려다보았다. 먼 전망은 정말 새로운 것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험한 산속의 연속이었을 뿐 길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거기서부터는 그 한 줄의 글도 더 이상 안내자가 아니었다.
그때 화가 루오가 다음 글의 길을 열어 주었다. 어떻게 하면 내 자신의 마음에 드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내게는 ‘어떤 글이어야 하는가?’라는 부단한 자문에 갇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헤맬 때, 그 화가가 길을 열어 주었다. 그림으로써가 아니라 한 마디의 단어, ‘예술은 열렬한 고백이다.’가 곧 길잡이였다. 나는 그렇게 하여 그 산문을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구강의 바다>에 이어 쓴 다음의 책들 중, 특히 「한 여행자의 플라멩코 이야기」는 특히 그렇다. 만약 루오의 그 한 마디와 만나지 못했다면 그런 글들을 감히 쓰지 못하였을 것이다.
유럽의 현대 화가들, 이를테면, 모네, 모딜리아니, 르누아르, 드가, 루오 등이 나를 그림의 세계 속으로 끌어들인 통로였다면, 물감냄새가 물씬 풍기는 현실 속의 화실을 기웃거리게 한 첫 화가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마산 도심의 현재호이다.
무엇보다 이 화가를 통해 내 고향의 화가들의 삶과 그림들이 나의 주요한 관심사가 되면서 이 지역 화가들이 누비고 다니는 도심 창동의 골목길이, 마음 한구석의 아픈 기억들로 인해 의식적으로 멀리하였던 과거와는 달리 정겨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호를 만나고부터 창동의 다른 화가들과도 어울리면서 그림전시회의 그림들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창동 골목 선술집들의 담배연기 자욱한 취기가 내게도 잘 어울린다는 기분이 들게 되었다. 현재호의 그림이 지닌 묘한 흡인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것은 그와의 만남 이래 내 스스로에게 늘 던지는 물음이었다. 그의 그림의 대상은 거의 대부분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비실재적 얼굴들이다. 그 인물들의 부끄러워하는 듯한 감은 눈, 나무뿌리처럼 투박하고 굵은 손과 발이 그 인물들의 특징이다.
그림 속에는 인물들의 무언의 신뢰와 그리고 무한히 적은 소유가 주는 무한히 큰 자유가 담겨 있다. 그 침묵은 물안개 빛 몽상의 평면 위에서 부드러운 검은 선을 타고 애잔하게 흐른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 화가의 그림 앞에 서는 이는 저마다 달콤한 맛의 서러운 취기를 맛본다. 어떤 점에서 그의 그림은 회화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소곤거림의 시적 산문이다. 무형식의 자유시이다.
그의 그림 속의 비실재적 인물들의 마술적 형상은 곧 화가의 영적 시선에 포착된 이웃의 삶의 뼈저림이다. 그의 동료 화가 한 사람이 내게 현재호는 현실의 절망감을 면제받은 운 좋은 보헤미안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에콜드 파리의 모딜리아니나 슈틴을 상기시키면서 그를 에콜드 창동(창동의 화가)라고 불렀다. 전자의 경우 두 화가들이 파리라는 외지에서 비극적인 짧은 생을 살았던 보헤미안들이었으나, 현재호는 이곳 마산의 창동에서 어시장 서민들의 애정 어린 눈길을 받으며 육신의 나이를 환갑이 넘도록 어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화가 현재호는, 나의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겸허한 자의 심안으로 현실 너머 존재하는 또 하나의 현실을 사는 자이었다.
- 현 선생의 화실을 사람들은 식탁 앞에 겸허한 자가 거처하는 곳이라 합니다.
- 식탁 앞에서의 겸허함이라니?
- 저는 현 선생과 함께 식사할 때마다 그렇게 느낍니다. 이분만큼 김이 오르는 밥상을 그렇게 소중히 대하는 분은 드물 겁니다.
- 현 선생의 말에 의하면, 부산 자갈치 시장 아지매들이 그에게 그걸 가르쳐 주었대요. “그들 노점여인네들은 한겨울 모닥불 앞에 모여 앉은 채 따뜻한 밥그릇을 두꺼비 등 같은 두 손으로 감싸 쥐며 점심을 먹습니다. 문득, 바로 저들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지요. 내 그림 속의 여인들은 바로 그들입니다.”
- 자갈치 부두에 앉아 현 선생과 소주 한 잔 나누고 싶은데요. 요즘도 고래고기 안주 있나 몰라!
- (혼자서 중얼거리듯) 소주에 안주 찾는 거 보니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군.
- 전에 이선관 시인이 현 선생의 오래된 이 그림전시회 안내장 둘(78년도 것과 88년도 것)을 보여 주며 10년 새 큰 변화가 있음을 말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 어떤 변화인데요?
- 이 둘을 한 번 비교해 보십시오. 78년도 안내장 그림에는 인물마다 모두 외부와 단절된 채 혼자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고립되어 있는 데 반해, 88년도의 경우에는 무리들이 한데 어울려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서로 체온을 나누면서 말입니다. 전자에는 작가 자신으로 여겨지는 인물이 외진 곳에 몸을 반쯤 숨긴 채 뭔가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마치 알을 품고 있는 어미 산새의 자세로, 후자는 이와는 대조적인 분위기입니다. 새끼 새들이 어미 새 품 안에서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지 않습니까! 고개를 들고 서로 웅얼거리는
놈도 있고.
- 후자의 경우, 색감도 따뜻해진 느낌인데요.
- 전자의 그림에서는 화가가 드물게 얻은 영감의 알이 화가의 품 안에서 부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퍼뜩 드는데요. 자갈치 뱃머리에서 잉태된 그 알들이 말입니다.
- 그런데, 선생은 유난히 ‘이루어지다’는 말을 자주 한다면서요?
- ...
- 아, 그 점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제가 현 선생을 대신해서 말씀드리는 게 좋겠군요. 그 알쏭달쏭한 ‘이루어지다’의 말에 대해서는.
- ㅂ기자가 통역을?
- 전 그 점에 대해 감을 좀 잡고 있거든요.
- 그래요?
- 그 말에 앞서 들려 드려야 할 말이 있습니다. 현 선생은 남다른 특이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그림으로나 몸으로 이웃들에게 삶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힘이 아마도 그 요소일 것입니다.
- 그런데 그게 그 ‘이루어지다’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 그에게는 언어의 주 기능이 의미전달에 있지 않습니다. 그의 언어는 소주와 함께 상대방과 믿음의 온기를 나누는 데 주로 사용됩니다. 말수가 적은 그가 입을 연다는 것은 순전히 그런 의미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의 말은 매우 원시적입니다. 그의 말은 세분화된 의미를 띠지 않습니다.
- ㅂ기자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듯하군요.
- 저는 현 선생을 대할 때 그의 그림들을 일종의 여과지로 미리 머릿속에 깔아 둡니다. 그림 속 무리들의 부끄러워하는 듯한 감은 눈, 굵고 긴 손, 화면 가득히 깔린 화면이고요, 그리고 환상과 자유를 일구는 암갈색, 금빛 여운 등등이 하나의 여과지 역할을 하고, 그의 주요 어휘들인 ‘이루어지다’, ‘홀로’, ‘안개의 골짜기’ 등이 그 여과지를 통과하도록 한다는 뜻이지요. 그렇게 한 번 걸러서 들어 보면 그의 말은 뜻밖에 쉽고 이루어지게 되지요.
J님
얼마 전 함안 문화센터의 그림전시회장의 그림 한 점 앞에한참이나 기분 좋은 느낌으로 서 있었습니다. 이 지역의 한 여류화가의 유화로 저의 미감에 꼭 어울리는 작품이었습니다. 사실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난 풍경이었지요.
그녀의 그림들은 이따금 볼 때마다 새롭습니다. 교차하는 두터운 유선, 두터운 흰색 물감의 꿈틀거림, 직선과 곡선의 유기적 교차, 그리고 구도의 조화를 무시한 유희적인 역동성의 붓질! 미와 본질에 점점 더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그림을 보고 있는 동안, 새삼 그림에 관해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한참이나 내 시선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림들을 만나는 것은 제게는 의미 있는 일입니다. 눈이 맑아진다는 뜻입니다.
요즘은 저의 눈과 마음이 줄곧 춤과 무용수에게로 향하고 있습니다. 노베르의 발레를 생각했습니다. 이사도라 던칸을 머릿속으로 그렸습니다. 무용수에 반한 고티에의 경구를, 보들레르의 시에 관해 사색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은 살풀이춤을 추는 J님을 떠올렸습니다.
흰빛 저고리 아래 숨겨진 J님의 어깨선의 리듬, 관능적인 두 손의 율동과 생명감 가득한 비상의 몸짓을 머릿속에 그렸습니다. 우리 전통춤의 경우 그 아름다운 의상 아래 율동하는 육체의 선의 흐름이 완전히 숨겨져 늘 아쉬웠습니다. 춤에서는 무엇보다 육체의 마술적 율동이 그 진수이니까요.
저는 춤과 그림 사이에, 그리고 화가와 무용가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를 느낍니다. 그림과 화가는 두 경우 다 매혹적인 경우는 흔치 않지만, 춤과 무용수에게는 둘 다 똑같이 마음이 이끌립니다.
그림의 경우, 대개 마음이 끌리는 것은 화가 쪽이 아니라 그림이거든요. 화가의 손은 유혹적이지만, 그들의 몸은 대개 평범하거든요. 이에 반해 춤의 경우, 춤도 무용수의 육체도 다 함께 가슴 두근거리게 합니다. 무용수의 육체는 그 자체가 예술품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왜 내가 그렇게 험하고 먼 여행에 몰입해 왔을까? 그런 의문을 가끔 했었는데, 요즘 어슴푸레 그에 대한 답이 생각났습니다. 이런저런 근사한 여행 명분과는 다른 중요한 요인이 내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오랫동안 마음의 여인이었던, 슈바르츠발트 숲길의 나무처녀를 여행길 어딘가에서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그것이었습니다.
그 처녀는 오래전에 독일의 그 숲의 한 나무에서 태어났습니다. 맨 처음 목수의 손에 의해 조각되고, 다음엔 그의 동행자였던 신부의 기도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또 다른 동행자였던 시인으로부터는 시와 춤을 배웠습니다.
그녀는 그 검은 숲에서 자신을 낳아 준 동행자들을 위해 시를 노래하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들이 그 검은 숲을 다 지날 즈음 목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눈빛이 번들거리는 남자들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나무처녀를 두고 서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숲속길 동행자들인 신부, 시인, 그리고 재단사 그 어느 누구도 그녀를 두고 양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그들은 한 마을의 판사 앞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판사는 그 나무처녀가 판사 자신의 소유라는 이상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 나무여인의 상아빛 젊음과 빛나는 눈동자는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아닌 판사인 자신이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진 것 없는 숲길 방랑자들에게 아름다운 그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이었습니다. 어느새 판사까지 탐욕자가 되었던 것이지요.
그렇지만 그녀는 몰래 그들의 굴레에서 벗어나 달아났습니다. 그들은 그녀가 그렇게 사라지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목수를 제외하고는.
나의 여행은 사실은 그 이야기와, 좀은 연관이 있습니다. 검은 숲에서 그 나그네들을 위해 모닥불 앞에 앉아 시를 암송하던 그 나무처녀를 여행길에 우연히 만나기라도 한다면 가슴 벅차오름이 얼마나 클까! 먼 땅 어딘가에서 지금도 여전히 춤추고 있으리라. 그렇게 상상한 그 처녀가 나의 먼 여행길 어딘가에서 불쑥 나타날 것 같아서였습니다.
J의 춤을 좋아하는,
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