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는 손
이쯤해서 나의 개인적인 글쓰기에 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히는 게 좋겠다. 실은, 나의 글쓰기는 컴퓨터의 글자판을 두드림으로써 이루어져왔는데도, ‘글 작업’을 그냥 ‘글 쓴다’는 말로 쉽게 표현해 왔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렇게 말할 때마다 맞는 말이 아니라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글 쓴다'는 말은 내게는 정확히 '문자판 두드림'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노트북이 없다면 글 작업이 어떻게 이어져나갈 수 있겠나 싶을 정도이다. 이제 원고지에 글 쓰는 일은 내게는 이제 옛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판 두드리기의 글 작업에 익숙하기 전 가장 우려되었던 점이 있었다. 글쓰기에 앞서 떠 오른 영감이 글자판 두드림 소리에 위축되어 시들어버리거나, 이에 더하여 상상의 개울마저 메마르게 될 것이 아닌가? 염려스러웠던 것이 그것이었다. 그건 기우였다. 문자판에 손이 점 점 점 익숙해짐에 비례적으로 문장은 화면위에서 스스로 커 나가는 것이었다. 전과는 달리 문장은 화면위에서 마치 생물처럼 제 힘으로 자라고, 손은 그렇게 자라는 문장과 함께 놀이를 즐기는 편이라는 게 더 옳은 말일 것이다.
글 쓰는 이라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감촉 좋은 만년필이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던 시절이 있었으리라. 손 바닥에 닿는 그 촉감은 원고지 앞에서 피어나는 영감에 상상의 날개를 달아준다는 느낌이 들기고 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순수한 열정의 손길은 거의 대개 그 두려운 빈 백지위에서 방황하는 일 만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기세 좋게 떠오른 영감과 상상은 머리속으로만 무성히 피어오를 뿐, 원고지 위의 손은 그저 한 자리에 서서 맴돌기만 하였던 것이다. 파카 만년필은 양복 안주머니에 꽂혀있을 때는 이 소지자의 기분을 우쭐하게 만드는 것으로 제 이름값을 다하였을 뿐, 일단 원고지와 마주하면 맥을 추지 못하였던 것이다. 만연필과 원고지가 주던 그 깊은 맛이 지금도 아련히 남아있다.
나의 두 번째 산문집의 첫 주제 ‘해안풍경’을 집필할 때였다. 그 때 보들레르가 정의한 ‘싯적산문’에 어울리는 글이 되었으면 하는 일념아래 이를 위한 구상의 그물을 머릿속에 촘촘히 짜 나갔었다. 주제와 관련된 영감의 불꽃아래 회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다. 남은 일은 그저 이를 글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내면의 그 회상의 흐름을 나의 손이 물질적인 단어로 전환시켜 이를 흰 종이위에 나타내는 일이 곧 그것이었다.
종이와 마주한 나의 손의 그 작업을 한번 보자. 먼저 평소에 잘 드나드는 마산 도심의 한 호텔 카피솝을 집필 장소로 삼는다.매일 오전 10시면 그 아늑한 공간의 한 모퉁이 자리에 앉아, 먼저 향기 가득한 커피를 한잔 주문 한다. 이어 윗옷 주머니에 모셔진(?) 만년필을 꺼내 탁자 위 커피 잔 곁에 올려놓는다. 여종업원에게 부탁한 호텔 메모지를 기다리며 담배를 피워 물고, 전날 밤 머리 속에 맴돌던 단어들을 상기한다. 메모지 앞으로 몸을 한 차례 더 가까이 다가앉아 백지위로 시선을 모두고만년필 뚜껑을 연다. 빈 백지와 마주한 채 담배를 다시 입에 문다. 글자들이 하나 둘 백지위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단어들이 한 줄의 문장으로 커 가는가 싶더니 만년필에 어지러이 죽임을 당한다. 느닷없이 대부분 지워진다. 그리고 그 메모지는 함께 휴지통으로 던져진다.
겨우 한 두 줄의 글만이 다른 메모지에 옮겨져 살아남는다. 회상의 실타래를 두고도 백지위의 문장은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 그 첫 문장의 크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일주일 쯤 지났을 무렵에도 그렇다. 메모지들 위에 남은 글은 고작 200자 원고지 두 세장 정도의 분량이었다. 백지 앞에서 손은 머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탓이었다.게다가 그렇게 어렵게 얻은 다음의 그 머리글마저 그저 그런 평범한 문장에 지나지 않는다.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노래는 바다 빛에 어울린다.
그가 노래 부르면 그 목소리는 남해의 물빛을 띤다.
아득한 수평선 위로 검은 섬이
엷은 안개 띠 사이로 떠 있는 광막한 바다가 떠오른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백지위의 그 첫 문장은 사실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손 안에서 계속 꿈틀거린 탓에 글 전체가 태어나게 된 것이었다! 그 첫 문장이 글 흐름의 물꼬가 되었던 것이다. 글 무리를 이끄는 첫 선도자였다. 그 뒤를 이어 점 점 더 중요한 길잡이가 나타날 때까지 그 첫 문장은 쉼 없이 꿈틀거렸던 것이다. 그로 인해 일정한 글흐름이 시작되고 그 흐름은 중간 중간 작은 웅덩이를 만드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머리로, 마음으로, 예상한 것보다 더 깊고 넓은 한마디로 글의 호수를 이루어내는 것이었다.
지금은 노트북으로 글을 만들어 나간다. 먼저 자판 두드리기로 단어 몇 개를 모니터 화면에 올려놓는다. 한참이나 그 모니터 위의 단어들과 눈 씨름한 다음, 마음 가는 대로 그걸 키워 나간다. 화면위의 글줄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점점 커 나간다. 어떤 때는 만년필로 글쓰기 할 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글줄들이 자유롭게 자란다. 왼편으로 자라기도하고 심지어 아래에서 위쪽으로 커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한 참 커나가는 글줄이 모두 순식간에 두 손의 잔인함으로 인해 한 줄의 문장만 남겨둔 채 화면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그렇게 남겨진 한 줄의 글이 이제는 처음 때와는 달리, 비온 뒤 죽순 자라듯 커 나간다. 오른편으로 그리고 아래로 거침없이 커 내려간다.
한번은 10시간이 넘는 긴 태평양 횡단 여행길에 여객기 3등 칸의 좁은 객석에서 전자바둑판을 펼쳐놓고 흰 돌, 검은 돌로 치열함이 아닌 무심한 마음으로 그 판을 채워나간 경우가 있었다. 혼자 눈과 손으로 자나가는 판의 구성이 마음에 들면 그대로 키워 나가고 전체의 모양새가 조잡하면 거칠 것 없이 무너뜨리고 판을 새로 시작하면서 긴 비행의 무료함을 잊었다. 나의 그런 글 작업은 비행 중 혼자 즐기는 그런 혼자만의 바둑 두기와 언뜻 닮은 데가 있다. 하루에 평균 두 번꼴로 노트북을 여는 내게 자판 두드리기 글 작업은 고통스럽지 않다. 모니터 앞에서 글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차가운 머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뜨거운 가슴도 아니다. 그 시작은 언제나 앙리 포시용이 감탄한 두 손이기 때문이다:
.......손은 거의 생명을 가진 존재에 가깝다....
자유로운 천성.... 분석에 정통한 가냘픈 손....
불가사의한 힘을 발산하는 예언자의 손,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조차 품위와 표정을 잃지 않는 정신적인 손....
손의 본질은 행동하는데 있다. 그것은 붙잡고 창조하고 때로는 생각하는 듯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백지 앞에서는 모니터 앞에서와 달리 나의 손은 신중하였다. 손은 종이와 만년필을 아끼고 싶어 그 둘을 배려하였다. 무엇보다 신중한 머리에 순종하였고 머리의 눈치를 살피느라 자유롭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손가락은 스스로 굳게 되어 드물게 찾아오는 영감의 불꽃을 종이위에 글로 포착할 시간을 놓치기가 일쑤였다.
이와는 달리, 모니터 앞 자판위의 글 작업의 경우, 손이 그냥 머리를 대신한다. 그래서 그 시작에 손도 마음도 그렇게 애를 먹지 않는다. 두 손과 머리는 서로에게 관대하다. 화면위에 나타나는 글자들은 종이위의 잘못된 글자들과는 달리 전혀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않으면 지워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래서 두 손은 머리의 눈치를 살피지않는다. 머리도 손이 글자들을 머리는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 그냥 내버려 둔다. 한 참이나 그대로 바라보기만 한다. 두 손이 문장이 되지 않는 글자들은 알아서 지우면서 금방 다른 길을 열어나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게 마냥 쉽게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모니터 앞에 앉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글 작업의 공간으로 들어가는데 다소 애를 먹는 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화면이 열릴 때 두 손이 먼저 가고 싶은 곳은 글 작업 공간이 아니라 인테넷 속의 메일 칸이기 때문이다. 그 공간에서 이런 저런 놀이를 즐기고 싶어 하는 것이다. 아니면, 뉴스 란이라도 기웃거리다 박지성의 소식이 떠있으면 여드름 자국이 아직 뚜렷한 그 얼굴 앞에서 머물기도 한다. 그건 꼭 대문 밖의 강아지가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려고 버티는 꼴과 흡사하다. 강아지에겐 집안보다 대문 밖 세상이 훨씬 더 재미있는 것처럼, 글 쓰는 두 손에게도 흥미를 끄는 인터넷의 사이버 바다속을 헤엄치는 것이 화면 앞에서의 글 작업과 치열하게 만나기보다 더 쉽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