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이 글의 후기는 교당의 주붕이였던 고 정자봉 교수에 대한
회상의 글로 채웠다.
정자봉 교수를 생각하다.
1.
학야는 상페테르부르그의 차가운 네바강 둑에 서서 창동을 생각한다. 창동의 술벗 정자봉 교수로 인해 그는 마음이 아프다. 이제 더 이상 그분을 창동 골목에서 만날 수 없을 것 같기에 그렇다. 2월 초 시베리아 여행길에 나서기 전 마산 의료원에 누운 정자봉 교수의 두터운 손을 잡은 학야에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을 수도 없는 야윈 몸으로도 여전히 평소처럼 남 배려하기를 잊지 않았다.
'내 장갑 줘? 먼 길 나설 사람이 손이 이렇게 차서야 되겠어.' 그의 의식은 뚜렷했으나 몸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음을 학야는 그때 직감했었다. 교당은 함께 방문했었던 고모령 문 여사의 눈물을 훔쳐보며 탄식했었다.: '지난겨울엔 이필이 춤꾼과 변상봉 화백이 차례로 우리 곁을 떠나고, 이제 창동의 '진광불휘'마저 두어 달을 넘기지 못하실 거라니.'
네바강의 아침은 천지가 잿빛이군.
춤추는 싸락눈으로 잿빛이 더욱 진해.
그런데 이 강은 인상주의적 시선으로 멀리서 보아야 할 대상이야.
곁에서 보니 물빛이 너무 탁해.
마산항의 물빛만큼 혼탁해.
그런데 O기자 앞으로 보낸 편지 지금쯤 정자봉 교수에게 보여 줬겠지.
모스코바역 대합실 풍경의 글이 마음에 들어하실는지?
작은 깃털 같은 눈송이가 이따금 흔들리며 떨어지는 다리 위에 서서 마산의 앞바다만큼이나 넓은 네바강과 마주하고 있다. 공중에 가득한 엷은 안개 막을 비집고 드물게 내리는 햇빛 아래 물빛과 주변의 사물들이 불투명하다. 육면체의 화강암 건축물과 먼지 낀 대로와 강뚝, 그리고 거대한 얼음덩이를 안고 흐르는 강물의 표면은 위에서 내리는 엷은 햇빛으로 한 폭의 인상파 그림 같았다.
엷은 빛과 색채가 공중의 안개 틈새에 부유하는 엷은 빛과 색채로 사물의 윤곽은 흐려지고, 중첩적으로 유동하는 형태들의 흔적들만이 유령처럼 가물거릴 뿐이다. 일종의 연극무대와 같은 환상성을 띠고 있다.
집에 엎드려 있을 때에는 오직 먼 여행지만 몽상하고, 막상 낯선 땅에 이르면 마음은 오히려 두고 떠난 창동 생각으로 가득해지는 것이 학야의 여행 버릇 중의 하나이다. 그는 지금 몸은 상페테르부르그의 네바강가에 있지만, 마음은 어느새 창동네거리를 서성인다. 그는 뉴욕이나 서북부의 포틀란드에 머물 때에도 마음은 그 도심과 창동을 오고 갔었다. 뉴욕의 타임스퀘어나 포틀란드의 파이오니어 스퀘어에 머물 때 그 낯선 풍경들 사이사이로 먼 창동의 골목길이 선명히 심안에 포착되었었다.
지금 이 네바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길 나서기 전 그렇게나 자주 머릿속으로 상상해 본 이 도시의 네프스키 대로가, 모스코바의 붉은 광장이, 그리고 끝도 없는 시베리아의 눈 덮인 철길은 점점 더 먼 원경이 되고 마음의 눈앞 지근거리엔 창동의 나지막한 거리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낯선 땅 페테르부르그의 네바강가에서 먼 곳 창동의 그 눈에 익은 골목길을 떠올린다. 현재호와의 첫 만남을 생각한다. 그 화가는 '몸은 고향에, 마음은 바다 건너 쪽에 둔' 경계인의 삶을 살아온 학야를 언젠가부터 창동에 마음이 젖어들게 하였던 화가였다. 그를 통해 창동을 언젠가부터 점점 학야의 삶의 중심에 서게 한 화가였었다.
이필이 무용가와의 매실주 대작의 순간을 생각한다. 그녀의 무용연구소를 찾은 학야와 진달래술을 한 잔씩 대작하던 그녀는 마지막 만남에서는 평소와 달리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항암 약물을 복용하면서부터 머리칼이 다 빠져 버렸다는 것이었다.
변상봉의 누드화와 거제 해안의 풍경화를, 그리고 그 화가의 손이 아니고서는 그려 낼 수 없는 살아 흐르는 붓 선을 떠올린다.
그리고 정자봉 교수의 한마디를 생각한다. "학야는 스스로 헐벗고 싶어 먼 길에 혼자 나서는 창동의 보헤미언입니다."
O기자!
이 이메일의 글을 가능하면 병상에 계시는 정자봉 교수에게 읽어 드릴 수 있다면! 여행 나서면서 그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네. 러시아에 땅에 대해 그가 궁금히 여기는 그곳 인상을 적어 보내겠다고 했거든. 그에게 직접 편지 쓸 형편이 아닐 것 같아 이렇게 O기자에게 이렇게 필을 든 것이라네.
지금 모스코바역에서 시베리아행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네. 앞으로 5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된다네. 그렇지만 이 시베리아 여행을 마음속으로 기다린 몇 십 년에 비한다면야! 호스텔에서 체크아웃 하는 대로 곧장 이 대합실로 직행했었어. 실내 공기가 싸늘해도 그렇게 춥지는 않아. 내가 앉아 있는 축구경기장만 한 이 대합실에는 수백 명의 여행객들이 두터운 외투 속에 몸을 감싸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바위덩어리처럼 앉아 자신들의 기차를 기다린다네.
무슨 말이 통해야 말이지. 영어? 이곳도 스페인보다 나을 게 없어요. 그래도 이르쿠츠크행 차표는 준비된 터라 이렇게 편지 쓸 마음의 여유는 생겼다네!
모스코바가 지금 내게 주는 것은 일종의 전율감이네. 이곳 기차역 대합실 공간을 가득 메우는 웅장한 피아노 탄주 탓이라네. 이 느낌은 파리에서 노트르담 사원 앞에서 맛보던 충만감과도, 스페인의 그라나다의 플라멩코 춤이 주었던 도취감과는 다른 것이라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혼자 있어 보라지. 추위가 아니더라도 몸이 떨리고 한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마련이지. 그 피아노 소나타의 탄주가 주는 전율감은 아득히 오래전 청소년기 시절의 토스토에프스키의 글들이 주던 그런 것이었다오.
모스코바역 대합실 창가의
검은 그랜드 피아노 한 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
검은 옷의 연주자가
무반주 피아노 소나타를 탄주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빛과 색채의 선율.
나는 이 영적 전율의 순간을 누리려고
여기 모스코바에 왔나 보다 .
모스코바역 대합실에서
학야
2.
창동인 정자봉은 마음 통하는 이와 자리할 때에는 어느 곳에서나 목청껏 노래를 뽐낸다. 그분은 노래가사를 특별히 잘 기억하여 그는 노래 부를 때에는 어떤 노래든지 일 절부터 끝 절까지 한 줄도 남기지 않고 다 부른다. 그것이 대중가요이든 일본 노래이든. '어떻게 그렇게 노래를 잘하십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질문을 하면 그는 언제나 '그건 저의 어머니 덕분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분의 어머니는 아들 둘 중 둘째인 그에게 특별한 당부를 하셨다고 하였다. '얘야, 너는 인물이 떨어지니, 노래라도 열심히 배워 두도록 해라. 그 인물로는 장가가기 힘들 터이니.' 어머니께서 그에게 그렇게 당부하셨다고 하였다.
그 익살은 실제와는 다르다. 그분은 창동에서 보기 드물게 인물이 잘나신 분이다. 큰 키와 당당한 체구로 그가 창동에 나서면 누구라도 그에게로 시선을 보낼 만큼 잘생긴 외모를 하신 분이다. 다만 그의 당당한 풍모에 비해 눈이 좀 작을 뿐이다. 그분은 어머니와 그렇게 익살을 주고받으며 행복한 청년기를 보냈음에 틀림없다. 그가 지인들 앞에서 노래 부를 때 특별히 3절에 이르러서는 좀 쑥스러운 듯 뒤돌아서서 흔드는 우람한 히프의 율동은 누가 보아도 매혹적일 것이다.
그렇게 잘생기고 멋진 분과의 교분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되었다. 학야가 어느 한가한 술자리에서 들먹인 찰스 램의 돼지구이론 때문이었다. 그 이래로 그 돼지구이론은 그분과 자리를 같이할 때마다 술안주의 하나가 되었다. 그 돼지구이론은 대강 이런 것이다.:
옛날에 어느 중국인 농부의 말썽꾸러기 아들이 혼자 집에서 불장난을 하다 집을 몽땅 태우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집에서 기르는 돼지들마저 몽땅 불에 타 죽었다. 아버지가 돌아오면 피할 수 없을 그 분노의 불길 생각에 아들은 눈앞이 캄캄하였다. 재산 가치가 그저 그랬을 집이야 다시 세우면 그만이겠지만, 타 죽은 돼지는 아버지의 전 재산이었으니까. 아들은 죽은 돼지새끼들 앞에서 울며불며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였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콧구멍 속으로 스며들어 오는 기막히게 고소한 어떤 냄새만은 놓치지 않았다.
불에 타 죽은 그 돼지새끼들이 바로 그 저항할 수 없는 유혹의 출처임을 깨닫게 된 것은 그 뜨겁게 익은 새끼 돼지들을 치우려다 데인 손을 자신도 모르게 입에 올려다 놓았을 때였다. 대개 사람들은 뜨거운 것을 만지다 덴 손은 자신도 모르게 귓불이나 입으로 가져가기 마련인 것이다. 아들은 그 기막힌 맛에 곧 닥쳐올 고통은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지고 말았다. 머릿속엔 온통 노릇노릇한 그 냄새와 육질 맛으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일 모두 잊고 두 손과 입을 돼지구이에 몰입시키고 있는 아들의 뒤통수와 등 그리고 엉덩이에 성난 아버지의 주먹질, 발길질이 소나기처럼 퍼부어졌음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분노의 불길은 그 순간의 아들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보통 때라면 견딜 수 없었을 그 육체적 고통이 그 순간만은 고소한 육질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 주는 그 쾌락에 오히려 보탬으로 작용하였을 뿐이었다.
제풀에 지친 아버지의 무딘 콧구멍 속으로도 필연적으로 스며든 그 유혹적인 냄새와 그리고 불가피하게 입으로 가져간 자신의 데인 손으로 인해 지금까지의 상황은 급기야 새로운 차원으로 급전하고 말았다. 아버지마저 묵묵히 아들의 뒤를 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중국인 아버지와 아들 집에 불이 자주 난다는 사람들의 고발로 잡혀 온 이 부자를 재판하던 판관들은 그 증거물로 제시된 노릇하게 익은 돼지새끼에 손을 데인 후 잠시 동안의 침묵에 이어 이들을 무죄로 방면시켰다. 괴이하게도 그 후부터 중국 땅 이곳저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원인 모를 불이 자주 일어났었다는 것이다.
그분은 손이 두텁고 따뜻하여 친화력이 탁월하다. 그분과 자리에 함께 앉아 있으면 살아 있음이 즐겁다. 그분은 술이 좀 되면 옆자리의 사람들과 손을 자주 잡는다. 반대쪽 자리 사람과도 서로 손을 잡게 한다. 그리고 서로 노래 부르게 한다. 그 덕분에 학야는 술에 취하면 '먼 산타루치아'를 부르는 행복감을 자주 누렸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행복감을 맛볼 수 없으리라. 러시아 여행길에 나서기 전 그를 병실에서 만났을 때, 그는 감은 눈으로 '학야는 손이 언제나 차다'고 하신 말씀이 이 네바강에서 다시 귓전에 들린다. 학야는 그분만큼 자신의 글 쓰는 삶을 잘 이해해 준 이가 드물기에 더욱 그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 학야 선생은 젊은 날의 하잘것없는 과오, 부모님의 대수롭지 않는 과거 이력에 대한 부끄러움, 청년기의 긴 암울한 투병생활로 인해, 부모님에게 깊게 빚진 일 또는 언짢았거나 억울했던 일들로 인해, 그의 가슴은 늘 미어지고 밤잠을 설칩니다. 이러한 회한과 가책이 그의 예민한 감성과 내성적 성격 때문에 해소되지 않은 채 가슴속에 응어리로 남아 수시로 그를 괴롭힙니다...... 학야는 주로 두 번째의 것, 즉 글쓰기를 통해 가슴의 응어리를 토해 내어 상처를 다스립니다..'
학야에게 여행과 고향과의 관계는 이상하다. 낯선 여행지로 향해 비행기에 오르기 전 밤낮으로 상상 속에서 그 여행지에 몰입하는 것은 보통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는 여행지에 무사히 도착하여 불안감이 사라지면, 밤의 잠자리는 이내 낯선 땅에 대한 호기심보다 두고 떠나온 땅의 과거로 채워진다.
낯익은 바다의 과거의 흔적, 소리 그리고 냄새가 어둠 속의 침상 곁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여행 배낭 한 귀퉁이에 몰래 은신한 채 학야를 따라 여행지에 와서는 현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사라지면 그때 슬그머니 그의 심안에 떠올라 유영하는 비물질의 존재가 있다. 창동의 빛과 그늘이 바로 그것이다.
몇 차례나 머물러 보았던 포틀란드에서도 그러했었고, 스페인의 그라나다에서도 그러했었다. 이번에는 상페테르부르그의 네바강의 아침의 고요 속에서 그렇다.
창동은 회화적 모티브가 되기엔 외형적으로 너무 평범한 지역이다. 그 어느 곳에서도 화면의 구심점이 될 만한 구조물도, 눈길을 끄는 옛 역사적 흔적도 없다. 산만한 골목길만 무성한 도심일 뿐이다. 혹시 창동 화가들의 풍경화전을 한 번 열게 된다면, 그때 회화 속의 어떤 이미지나 색채를 통해 우리가 모르는 어떤 창동의 매력이 들어날지는 모르겠다. 그런 창동은 학야에게 언젠가부터 삶의 의미를 주는 공간이 되었다. 하루라도 이곳으로 향하지 않으면 마음이 건조해지고 푸석거려진다.
선글라스 노점상이 텃세를 부리는 불종거리, 남성동 파출소 네거리, 평안안과 건물 근처의 헌책방 국제서점 등이 학야가 그 앞을 스치는 곳들이다. 특히 남성동 우체국 맞은편의 골목길은 꼭 지난다. 그 골목의 커피 냄새 때문이다. 게다가 그 좁은 골목에 들어서면 피어오르는 현재호에 대한 회상이 좋아서이다.
3.
상페테르부르그는 학야에게는 발길이 닿기 전부터 이미 친숙한 도시이다. 학야가 사랑한 러시아 작가들-고골리, 토스토에프스키 등-이 불러일으킨 잿빛 안개에 젖은, 그러나 끊임없는 호기심이 이는 환상적 이미지들 탓이다. '네프스키 거리'의 몽상적 분위기란 어떤 것일까? 성스러운 석조도시.
'그날 밤 안개 낀 대로의 끝에서 자동차는 포장도로에서, 대로의 리얼리티에서 안개 속으로 떨어져 나갔다. 왜냐하면, 상페테르부르그는 신비롭고 허구적인 안개이면서 여전히 암석이기 때문이다. '알듯 모를 듯한 이 모호한 표현과 더불어!'
상페테르부르그는 북 유럽의 땅끝 나라, 핀란드(Finland)와 네바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유럽풍의 도시이다. 이 땅은 그 기후조건이 태양빛 가득한 지중해 해안의 햇빛 가득한 땅과는 사뭇 다르다. 이 도시는 한마디로 빛이 희박한 음지의 도시이다.
우울하나 매혹적인 그 도시는 한 병약한 소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연상케 한다는 '백야'의 한 구절에 이르러, 북구의 화가 뭉크의 그림 하나가 떠오른다. 그 화가가 백야를 읽었구나! 그 그림 속에 나오는, 절망감에 젖은 한 병약한 소녀의 매혹적인 얼굴이 바로 그런 소녀의 얼굴 그대로야. 토스토에프스키의 그 글이 그 화가에게 영향을 미친 게 틀림없어. 그리고 뒤이어 의식 속으로 흐르는 화강암 형태를 띤 어휘들의 파노라마-'피라미드, 삼각형, 정육면체 사다리꼴에 대한 명상'-.
이 러시아의 도심에 자리한 카잔 대성당과 모이카 운하를 지났을 때는 밤이 꽤나 깊었다. 숙소까지가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라는 말에 큰 가방은 장갑 낀 한 손으로 보도 위로 끌고, 작은 가방은 등에 짊어진 한 이방인 여행자의 차림새로 걸었다. 몸은 현실 속의 네프스키 대로의 밤길을 그렇게 걸었다. 그러나 마음은 몽상가의 것이었다. 비실재의 허구 속을 기웃거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고골리의 '네프스키 거리'를 걷기 시작한 것이었다. 직선대로의 화려한 네온불빛 위로 간간이 가는 실눈을 뿌리는 네프스키 거리 위의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부터였다. 두 눈을 사방으로 두리번거리면서 아예 고골의 이야기 속으로, 그래서 마음은 이미 램프의 불빛이, 모든 것이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이상한 빛을 던지는 신비한 밤의 시간이 시작된다는 그 작가의 네프스키 대로 위를 걷는 것이었다.
......... 아아, 그 매력이란! 그것들은 마치 공중에 가벼이 떠 있는 두 개의 풍선처럼 보일 것이다. 만일 상대편 남자가 그녀 옆에 없었다면 여자가 하늘 위로 날아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학야의 마음은 몸과는 달리 언뜻언뜻 그런 이야기 속의 거리- '있을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마치 실재처럼 일어나는 19세기의 사이버 공간'을 걷고 있었다. '이 네프스키 대로를 믿지 마시오.... 그것은 전부가 꿈이다... 모든 것은 사기이고, 공상이며 보이는 것과는 다르니!' 문득 화가 로트렉의 그림 속 파리의 밤거리가 연상되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네프스키는 네온의 불빛 아래 성장한 여인들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Nord 호스텔건물의 주소 근처까지 이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거기부터가 문제였다. 그 주변 건물들이 모두 비슷한 형태들인데다 그 호스텔을 나타나는 표지나 간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근처 상점의 점원들 누구도 그런 곳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영어가 통하지 않아 더욱 당황스러웠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저만치 서 있는 택시들을 가리키며 그 운전자들에게 물어보라는 손짓을 하기에 한 운전자에게 다가가 호스텔 숙소 이름을 말하며 손짓 몸짓으로 그 위치를 물었다. 무조건 택시에 오르라 하는 그의 말에 '바로 이 근처라던데'라고 하며 학야가 거듭 머뭇거리자 이번에는 돈을 내면 알려 주겠다며 손으로 50루블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학야가 마지못해 돈을 꺼내 주자 그 운전자는 그를 차에 태우는 대신 뺀질뺀질한 미소를 머금으며 학야가 서 있는 길 바로 건너 쪽의 여러 건물들 중 하나를 가리키는 것이 전부였다. 학야는 이 도시의 첫 밤을 고골의 네프스키 대로에서 그렇게 만났다.
그리고 지금 이 도시의 마지막 아침을 잿빛 안개가 자욱한 네바강 앞에 서서 멀리 두고 온 창동을 마음에 안고 마주하고 있다. 바다빛 흔적의 골목, 그 한 모퉁이에서 반짝이다 사라진 화가들과 춤꾼을 마음에 안고 낯선 땅의 무심한 아침을 만나고 있다. 그 골목길의 주붕들, 그리고 두텁고 따뜻한 손을 가진 한 창동인을 특별히 생각하며 네바강의 잿빛 아침과 마주하고 있다. 술이 거나해지면 옆자리에 어울린 사람들과 손을 잡는 정자봉님을 생각한다.
두터운 손으로 학야의 찬 손을 덥혀 주며 그를 일컬어 '창동의 글춤꾼'이라고 말하던 그분을, '진광불휘'라는 별칭의 그분을, 네바강 앞에서 어떤 우울한 예감으로 생각한다. 러시아 여행길에 오르기 하루 전 병실에서 만났을 때 손을 잡은 채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하던 그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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