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미인도화가 교당 12

jhkmsn 2014. 9. 30. 09:26

         4. 못다한 이야기

 

             3

 

 

0월0일

선생님!

전에는 서예를  예술로 보는 견해에 속으로 동의하지 못하였습니다.

서예는 글쓰는 이의 문장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이의 것을 그대로

베낀 것이라 여ㄱ겼기 때문입니다. 에술은 창조성이 그 생명이라

여겼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막연하나마 선생과의, 그리고

선생의 지인들과의 교유를 통해서부터입니다.글체에 서예가 개인의 정감과

사상과 예술감각이 스며있음이 느껴집니다. 글체의 선 하나 하나가

개인의 창조적 행위에 의한 결과물이니까요.

수묵화의 선이나 선염처럼, 서예의 서체에서도,선의 강하고 부드러움,

완급과 리듬감있는 움직임을 통해 작가 마음의

즐거움과 초조함 등의 다른 감정과 정서를 전달해낼 수 있으며,

글쓰는 이의 정신과 의지, 개성과 풍모도 비추어낼 수 있음을,

그리고 선의 움직임 하나 하나는 당시 순간적인 심경의 변화와 연관되어

이제사 깨닫고 있습니다. 글씨의 선은  간단한 선이 아니며, 서예가의

주관적 사상과 정감이 담긴 것이기에 예술언어라는 것을! 그런 예술적

정감과 사상을 가진 선으로 구성된 글체에 자연히 정신적 매력을

지니게 되는 가

봅니다.

 

학야

 

  

 

 

선생님!

0월0일

 

수묵화의 회화적 표현은, 비가시적 사의로부터 가시적 표현으로의

실천과정인 듯합니다. 먹과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이미에서,

내부의 어떤 특별히 진한  감성이 야기한 표현적 충동이 질료와 기법을 통해

표현되는 서정적 행위입니다. 그리고 그 감성은 어떤 사상과 철학을 지닌 화가인가에

천차만별로 받아들여지게 마련입니다.

 

?속성의 곡선을 이룬다. 그의 인물, 산수 영모 등 대상물은

그로 인해 자연적 형상이 그림속에서 그대로 묘사된다. 묘사가 곧

그에게는 표현이다. 교당의 그림은  서양화의 양식적 모색과는

무관하다.동양화의 기본적인 정신인 <살아있는 자연>에 충실하다.

그의 묵선과 담채의 면, 점의 만남은 유기적 곡선을 이룬다.

자연을 담고자 하는 동양적 예술사고를 충실하게 보여준다.

 

고 서양화가인 남정현의 경우, 직선의 어울림으로 표현된다.

직선의 이어짐, 교차 평행으로 이루기도 함으로써 사물을

데포르마숑함으로써 풍경이나 대상을 개인적인 양식으로 표현한다. 

몸마르트르의 화가 로테렉의 작품에서도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다.

 서양화에서는,자연의 살아있음과 그림의 살아잇음은 별개다.

그림은 살아있는 자연을 그대로 몲겨놓은 것이 아니다.

루오적 화풍, 바르크 적 양식화, 마티스의 색채적 요소 등

이른 개인적 양식화는 예술적 인위성을 의미한다.

그림의 살아있음은 예술의 인위성에 의해 야기된다.

 

그림의 경우.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사고에는 위험성이 따른다.

즉, 누군가는 양식을 하나 개발해 평생을 이어간다. 개인양식이란

자칫 지겨울 수도 있고, 늘 새로움을 지닐 수도 잇ㄴㄴ 것이므로,

변화와 지속 어느 것이 우얼하다고 할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그 개인양식이 가벼움과 얇음 만으로 가득할 때 참을 수는 것이다.

그것이 무게감과 깊이를 지닐 때 볼 때마다 새로워지는 것이다.

개인의 양식관련,

화가들은 대개 자신의 개인적인 양식화가 더 이상 창의적이지 못한 채

어느 단계에서 고착화되어  그 양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예술작업에서 그것은 경계해야할 점이다.

끝임없는 창의적 변화 과정을 거치지않는

예술은 이미 예술이 아니다.

 그림은 자연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 아니다.

그림은 그림 자체로 존재한다

학야올림

 

0월0일

선생님

중국화는 인물과 화조를 그릴 때 배경을 그리지않으며, 그려진 형상 이외에는

모두 여백으로 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4장의 '못다한 이야기'에 추가할 내용들.

교당의 '춤'과 '부엉이'를 글 머리에 넣어 문장을 시작할 것.

서법과 회화 77페이지-당나귀와 사람 삽입할 것

대담하게 배경을 생략해버리고 흰색을 배경으로 함으로써 그려진

형상을 두드러지게 하고 더욱 뚜렿하게 한다는 취지라 하더군요.

이것은 중국의 극 무대위에, 혹은 스페인 플라멩코 무대에 별다른 배경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관객은 극을 볼 빼 춤을 볼 때 다만 배우자들

(공연자들)의 연기만 보고도문과 창문 배와 차 강물 등이 잇다고 느끼는

것으로, 소위 '극의 배경은 매두 배우의 몸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예술은 자연이 아니다. 사실상 사람들은 어떤 것에 집중할 때

그외의 것에는 주의하지않으므로 자연히 그릴 형상이 없어져

여백이 된다. 어떤 때는 여백은 화면의 이미지를 조절하는 작용도 한다.

예를 들면, 세개의 난잎을 그릴 때 길고 짧은 것이 교차하고 몇 군데에

모양이 다른 크고 작은 여백을 남겨 두면 이러한 여백이 있음으로써

난잎의 미감을 두더러지게 하여 화면을 더욱 충실하게 한다.

또 호응되는 것이 잇어야 한다.

 새우를 그릴 때 그 움직이는 모습을 통해서 여백이 고요한 물이라는 것을 표현한다.

기러기 한 무리가  날고 잇는 것을 그리면 여백이 가을의 푸른 하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이 없는 곳도 모두 묘경을 이룬다. 이것은 감상자가 생각하고

보충하게 하며 재창조하게 한다... 여백의 매력은 바로 그 함의가 넓고 다양한

것에 잇다고 할 수 있고 ...

......의경의 형성은 다만 작가뿐 아니라 감상자에게도 달려 있다.

감상자는 작품을 감상할 때 필연적으로 자신의 감정과 의취,

심미경험을 작품속에 투사한다. 작품이 상상의 여지를 많이 남기면

남길수록 감상자의 상상력을 덕 많이 환기 시킬 수 잇다.

학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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