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바다의 귀향
1.
오래 전에 사라진 그 바다가 몇 해 전 한번 홀련히 문의 눈 앞에
춤추며 돌아 온 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 바다의 흔적 만이 남은
땅에서 플라멩코 공연이 열리게 된 것이 문에게는 그렇게 여겨진
것이다. 아침이면 은빛 농어들이 번떡이는 밀물의 해안이었고,
오후에는 무수한 밀게들의 하얀 게다리 군무로 장관을 이루는
갯벌이 되었던 그 해안이 문의 심안에 그렇게 플라멩코 춤이
되어 나타났었던 것이다.
긴 시간이 지난 후 아름다움과 불행을 느끼게한 해안, 소년의
새벽 잠을 깨우던 어둠속의 새벽송가, 소년들을 몰고 다니는
엿장수의 엿판수레, 그리고 뭉크의 병든 아이의 표정 같았던
막내 이모의 절망한 눈빛 등과 함께 흔적없이 사라진 그 바다가
꼭 한번 깊은 춤이 되어, 기타의 선율과 목쉰 소리꾼의 노래가
되어, 그의 곁으로 춤추며 돌아왔었던 것이다.
춤꾼 Lau가 마산에 와 소년의 바다가 있었던 곳에서 멀지않는
곳의 한 공연장에서 펼친 '스페인 음악과 플라멩코의 밤' 무대에서
춤을 춘 '깊은 춤'은 문의 눈에는 뜻밖에 그 바다의 형상이 되어
아른거렸던 것이다. 그의 심안에는 그 순간 집 마당 앞 축담
아래에까지 차오른 밀물과, 날카로운 집게들의 꽃게들이 숨은,
파래가 낀 돌덩이 굴밭이 드러난 갯벌이 서로 하루에 두번이나
교차하는 그 바다의 형상가 나타나 아른거렸다. 그 하루 전 날밤
문은 꿈속에서 그 바다를 보았던 것이다.
해안이 밀물로 가득해져 소년의 집 마당의 땅과 그 바닷불이가
축담을 사이에 두고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는 꿈이었다. 그 꿈속에
축담에 선 소년은 물위에서 은빛을 튀기며 유영하는 학꽁치들을
잡으려고 몸을 굽혀 팔을 아래로 내려 물에 닿으려고 하였고,
소년의 뒤쪽에서는 물동이를 머리에 인 하얀 치마 저고리 차림의,
소년의 어머니가 바둑이를 데리고 집 대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Lau가 마크의 기타반주로 '솔레아' 춤춘 전날 밤 문은 그 바다를
그렇게 꿈속에서 만났던 것이다.
아래는 마산에서 푤쳐진 '플라멩코의 밤'의 막이 오르던 날의
무대에서 낯선 춤에 대한 호기심아래 무대쪽으로 시선을 모은
관객 앞에서 인문이 행한 인사말이다.
'아래'
관객 여러분 만나 반갑습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집시들의 전통문화인 플라멩코
의 춤과 노래 그리고 기타 연주가 여러분의 마음에 달콤하고
아프게 스며들 것입니다.
플픔에 찬 무희들의 표정.
이어짐과 끊어짐의 기품있는 몸짓.
출렁이는 스커트 자락의 눈부신 통풍적 선회.
그리고 혼을 빼는 듯한 기타선율이 보고 여러분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길 것입니다.
춤과 노래, 그리고 기타연주- 이렇게 세 요소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이 플라멩코는 지난 날 사회적 하층민으로 소외받고 학대받았던
스페인 집시들에게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의 상징이었습니다.
플라멩코 춤은 우리의 전통 분화인 살풀이 춤과 ,그 기원이나
정신성에서 여간 유사하지 않습니다. 둘 다 의지할 곳 없는,
소외자된 자들의 서러움과 한이 아름다운 춤과 노래로
승화된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풀라멩코는 첫 흐느낌과 첫 입맞춤으로부터 나온다'고 한
스페인의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가 말했습니다.
그 시인의 가슴찌르는 이 말은 바일라오라(무희)의 내면의 열정과
기타 반주자의 회상이 담긴 선율의 물결에서 순간 순간 느껴질
것입니다.
이번 우리 지역에서의 첫 플라멩코 무대에서 그 시인의 말이
관객 여러분에게 공감되기를 기대합니다.
2005년 12월
한겨울의 어느날
문
'연작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정증보플라이야기 2-8-1 (0) | 2014.09.19 |
---|---|
개정증보플라이야기 2-7-2 (0) | 2014.09.19 |
개정증보플라이야기 2-6-2 (0) | 2014.09.18 |
개정증보플라이야기 2-6-1 (0) | 2014.09.18 |
개정증보플라이야기 2-5-2 (0) | 2014.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