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개정증보플라이야기 2-4-1

jhkmsn 2014. 9. 17. 08:57

                  4. 붉은 해안

                           1.

문에게  글쓰기는 그 시작이 그 바다가 사라진 쪽으로의 길 나섬

이었다. 이따금씩 소리와 냄새를 동반하며 눈앞에  아른거리는

그 바다의 부분 부분들, 이를테면 새벽바다의 변화무쌍한 빛깔, 

수면위로 바람을 나고 쏟아지는 빗줄기, 밀물과 쓸물의 속삭임, 

먼 갯벌 끝자락의 하얀 물거품 띠등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그것이 향했음직한 남해, 서해, 그리고 동해의

해안쪽으로 버스길을 따라 나들이를 한 후, 그리고 심지어 그 흐름의

방향과는 무관했을  먼 바다쪽으로까지 혼자 여행길을 나섰다 돌아

뒤부터의 일이었다. 그 방법 아니고는 소년기의 그의 삶의 일부였던

그 바다를 귀와 눈으로, 더 가까이는, 냄새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고부터였었다. 

 

글쓰기는 처음엔 별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화가가  야외에서

실제로 마주하는 자연 대상으로서의 풍경을 손이 가는 대로

백지위에 데상하듯,  마음에 익은 그 바다를 백지위에 붙잡아 두는

일이기에 그러하였다. 붙들고 싶은  대상의 윤곽이 단어들의 배열을

통해 의미를 띠며 실체화되는 것이었다. 직선이나 곡선 들이 어울려

대상의 형태를 이루는 것을 뜻하는 단어들, 두 선이 만나 이루는

직각이나  둔각을 의미하는 단어군들, 또는 굵은 선, 가는 선​, 원이 되는

선들을 뜻하는 단어들의 배합으로 그 대상이 눈 앞에 점점 윤곽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그 작업은 마치 화가가 마주하는 사물을 점, 선, 명암, 색채 등으로

묘사하는 것과  바를 바 없는 작업이었다. 아마 문이 화가의 손을

가지고 있었다면  단어들의 배열이라는 글쓰기로보다 드로잉으로

직접 그 바다를 백지위에 바로 그려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선긋기나 형태에 명암넣기 또는 색채 입히기 등의 작업에 익은 손을

갖지못하였던 것이다. 화가라면 손쉬웠을 그 일보다  단어들을 묶어

내거나 배열하는 일이 그에게는 훨씬자연스러웠기에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어쨋거나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그 윤곽이 백지위에 실체화되는

신기하기도 하여 그 일로 소일하는 게 즐거웠었다. 그렇지만 심안에

나타나 아른거리는 그 바다를 단어들로 실제로 붙들어 나타내는게

만만치 않는 일임을 점점 실감하기 시작하였다. 집 마당에서조차  

재빠른 몸몰림과 장난기로 인해 엔간해서는 손에 붙들리지않는

바둑이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코 앞에서 조차

숨었다 나타나기도 하는 그런 변화무쌍한 놀이를 반복하는

그 바다였기에 그러하였다. 더우기 눈앞에 나타나나는 그 바다는

더 이상 자연색을 띠고 있지도 않았다. 조개잡이 아낙네들의 발

아래 작은 밀게들이  왕래하는 그 친숙한 갯벌의 자연색, 빗물 머금은

흐린 날의 하늘, 그리고 아침햇살을 잔물결위로 담뿍 받은 아침나즐의

해수면 등 원래의  그  바다의 자연색이 아니라, 언젠가 서해안 나들이

중 해질 무렵에 바라보았던 노을빛 가득한 만리포 해안처럼 검붉은

색으로 변색되어 눈 앞에 아른거리는 것이었다.

 

그런 점은 아무래도 문의 내면적 상태가 더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즉, 시간이 흐를수록  그 사라진 바다를 흐릿한 ​윤곽대신

좀 더 뚜렷한 상태로 만나고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화가의 단순한 데상  수준에 머문, 이를 테면 발이 느린 단어들과

문장들로서는 그건 거의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생동하는 실체로

좀 더 가까이, 즉 소리로, 그리고 냄새로 원래 그대로의 옛 바다에

가까운 상태의 대상으로​ 만나고 싶다는 그의 욕망이 점점 더 크지고

있었던 탓이다. 그렇지만 그건 유아적이고 비현실적 욕망이었다.

그런 난감함 속에 문은 한동안은 글작업할 때​ 인상파 화가 모네의

회화수법을 참고하였다. 자연을 감싼 미묘한  대기의 뉘앙스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의 순간적 양상을  묘사한 모네가 생각났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의 그림 <인상:해돋이> 떠 올렸다. 그 작품은

제목 그대로 모네가  르아브르의 고향집에서 바라본 해안을 

자신이 느낀 그대로 즉흥적인 인상을 그려낸 작품이다. 해가 막

떠오르는 여명의 풍경을 담은 그림이다. 어두운 색을 특별히 사용하지

않고도 어둠을 표현한 것이 특징입니다. 태양빛에 따른 색감의 변화가 

그 대상을 자연적 실체의 차원을 넘어 선 시각적 환상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문은, 모네가 그랬던 것처럼, 머리속에 아련히 떠올라 순간

순간 변화하는 물체의 이미지를, 지리적인 대상에 대한 윤곽을

자연그대로 묘사하는 대신에  기옥속에 흔들리는 바다 이미지을

기대감으로 또는 시각적 상상으로 붙들어 나갔다. 화가가 물감을

듬뿍 무친 브러시나 나이프로 캔버스에 재빠르게 그려내듯, 문은

자신의 단어와 문장들을 백지 혹은  컴푸터의 화면위에 채워나가는

작업을 통해 자신이 바라는 방법으로 그 대상을 그려나갔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그 실체에 후각적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 갈 수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에는 예상치 못한 새로운 문제점이 있었다. 좀 더

가까이, 이를테면 촉각적으로 다가서고 싶은 그 바다를 포착하고

싶어하면 할수록 그 대상은 더 멀리서만 마주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모네의 인상주의적인 접근으로는 기대가 충족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화가의 즙근방법으로는 마음속의 그​ 대상이 

코 앞에서는 그 윤곽조차 숨겨져 잡히지않고, 멀리서 바라보아야만

비로소 제대로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인문은 그 바다를,

바둑이 머리를 쓰다듬듯 촉각적으로 느끼고 싶어한 그 간절한 바램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 실망스러웠다.

이어 다음에는, 야수파적인 마티스의 손처럼, 그 대상의 형태를 

단순화시키고 색채를 원래의 것에서 벗어나 그 형태에 어울리게

칠해보았다. 일단 마티스의 원무를 떠올렸다.원근법이 사라진 평면화된

화면에 펼쳐진 《원무》는 율동감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춤추는 

다섯 인물이 하나로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통일감을 잃지 않으며,

인물들의 위치를 악보의 음표처럼 조금씩 달리 하여 변화를 준

그림으로 춤과 음악이라는 본능적이고 순수한 행위의 아름다움을

준다.

보편적으로 야수파의 특징으로는 인상주의의 빛에 의한 명암법을

거부하고 원색의 대담한 사용, 단순화한 형태, 자유로운 붓놀림을

통한 주관적 감정을 표현한 점이 그것이다. 마티스의작품 《원무》는

단순히 3가지 원색으로만 되어있다. 하늘을 칠한 파란색, 인물을

칠한 분홍색, 그리고 동산을 칠한 초록색이다. 그렇게 형태도 색깔도

주관적으로 단순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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