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바다 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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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기에 사라진 그 바다를 연상하며 그렇게 세 해안과 만난 후
문은 막연한 상상으로, 그 바다가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의 소년기의
장난기 가득한 그 어린 바다가 아니라, 어른이 된 바다로 성장하여
눈 앞에 펼쳐졋던 넓은 세 해안의 어느 한 쪽 바다에 섞여있었을
그 바다가 자신의 눈에는 포착되지않았을 수도 잇었겠구나 싶기도
하였다.
그 시기는 문은 그 바다의 흔적으로 흔적으로만 남은 지역에서
그렇게 멀지않는 마산의 도심에서 살며 화가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들의 아틀리에서 물감냄새나는 캔버스위의 그림 형태, 선
색채들을 곁에서 바라보기도 하고 도사관이나 집 서재에서
수시로 화첩속의 그림보는 게 중요한 일과들 중의 하나였다.
그가 서양의 그리스,로마 문화나 르네상스 이래의 유럽 문화에
친숙한, 이른바 인문학적 사고를 지닌 자로서 그의 눈에는
동양권의 전통 미술 형태에 보다 현대의 여러 형태의 서양화가
더 자연스러웠었다. 그런 점은 그의 귀가 클래식 형태의 음악이
다른 장르의 전통성 음악에 더 자연스러게 가까워졌었던 것과
비슷하다. 그 둘 중 물론 음악이, 그가 악보를 읽는 눈을 가지지
못하면서도, 그림보다 훨썬 더 오래전부터 그에게는 좋았었다
이 말은 그의 눈이 그림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음악듣기
좋아함보다는 한참 뒤의 일이었다.
어쨋든 그의 눈이 서양화의 그림들이 낯설지않은 상태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호기심을 가지고 지역의 화가들과
만나고 그들의 그림을 보거나 아틀리에서 이젤위에 올려진
미완성 작품에게서 물감냄새를 맡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호나
남정현의 화실에서 그렇게 물감냄새가 그의 코에도 자연스럽게
익어 갔엇던 것이다. 그런 호기심은 그가 그 사라진 바다를
마음에 담고 여러 해안을 기웃거린 후 돌아온 다믐부터였다.
한번은 문신과 최운의 두 유화 '바다풍경'에 사라진 그 바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문신의 것에서는 쓸물때의 그 바다의
흔적이 그리고 최운의 그림에서는 밀물때의 그 바다 흔적이!
문이 자신이 소년일 때에는 그럴 수도 잇었겠지만,어른이 된
다음에도 여전히 그 바다를 바둑이와 닮았다거나, 더 나아가
황당하게도 ,그 바다가 세월따라 나이먹어 가는 존재로 여기게
된 것은 그가 화가들과 어울리면서 비실재의 그런 상상을
마치 현실처럼 받아들이고 잇었던 게 아닌가 여겨질 수 있다.
그림에 친숙하기 훨씬 전, 그림이라면 사실주의적 풍경화가
주된 부분이이었지만 화가들의 그림세계에 자주 눈이 가는 동안
상상이 그림속 현실로 되어가는 화풍이나, 데푸로마숑 혹은
초현실주의적 이미지들이 자주 그의 시선을 빼았곤 했었다.
사걀이나 브라크 아니면 그와 술자리에서 자주 만나는 현재호
화가의 그림들에게서 전혀 비현실적인 얼굴들 풍경들, 심지어
그림의 대상이 자연색이 아니라 화가 멋대로 선택한 색채로
입혀지는 것에 점점 친숙해지기 시작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바다가 소년기에서 청년기를 지난 후
지금은 더 나이 든 바다일 것이라는....
그래서 인지 언젠가부터 문에게 그 바다가 붉은 해안이 되어
눈에 아른거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연색의 바다가 아니라,
렘브란트의 그림에서처럼 빛과 그림자가 대비적으로 교차하는
바다로 떠오르면서 , 그 위로 몽상에서는 환한 빛의 밀물이,
그리고 상념으로는 잿빛 그림자의 쓸물이 교차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근자에 이르러 그 바다는 해거름의 검붉은 노을빛 가득한
노쇠한 해안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그 사라진 바다는 소년에게는 바둑이처럼 놀이의 상대였었다.
그 바다와의 놀이라면 이런 것들이다: 밀물 때의 넒은 갯벌위의
보일 듯 말 듯 숨겨진 구멍 속의 쏙잡기, 굴밭 돌밑에 터를 잡고 사는 ,
집게발이 날카로운 꽃게들과 눈씨름 하기, 한 여름 장마철 마다
들판에서 개울을 타고 내려와 바닷가의 얕은 물에 은비늘 뱃살을
옆으로 눞힌 채 파닥거리며 노는 붕어좇아다니기 등등.
갯벌에서 동무들과 어울려 쏙잡이하는 놀이만큼 그 바다를
생생하게 되살리는 것도 흔하지 않다. 그 놀이는 소년에게는 일종의
사냥이었다. 예컨대, 구멍속의 예민한 쏙을 바깥으로 꼬여내는 일이나
그 앞다리를 잡고 몸통을 그 구멍에서 쏙 배내는 일은 여간 민첩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갯벌이 언제까가지 텅 빈
상태로 남아 있지 않는다. 어느 틈에 밀물이 소리없이 다가와 갯벌을
다시 바다로 변화시킨다. 쏙 잡는 일에 몰두하다 순식간에 갯벌이
사라지도 자신은 물 속에 갇히고있음에 놀라 허둥지둥 바깥 갯가로
나오기도 하였다.
그 때 그 바다는 그렇게 소년이나 바둑이를 닮아 있었다. 바다에
가득한 찔피 군락지는 그 속에 온갖 물고기들의 놀이터로 ,이른바
바다의 수목원이었다. 그 바다는 그렇게 소년들 곁에서는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년 그대로 였었다. 그리고 그 빛깔은 살아움직이는 바다의
싱싱함 그대로 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