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플라멩코 듀엔데
1.
플라멩코의 노래는 기본적으로 세가지로 나누어진다:
칸테 혼도( 칸테 그란데), 칸테 인테르메디오, 칸테 치코
가 그 세가지 노래들인데, 우리말로 표현한다면,
처음의 것은 깊은 노래로, 세번째 칸테 치코는 가벼운 노래,
그리고 두번째 탄테 인테르메디오는, 의미 그대로,
그 깊이감에 있어서 처음과 세번째의 중간에 해당되는
노래이다. 춤에 있어서도 노래의 세가지 분류와
거의 비슷하다. 깊은 춤, 가벼운 춤 그리고 그 중간의
춤으로 스페인어로 바일레 혼도, 바일레 치코, 그리고
그 둘 사이의 중간인 바일레 인테르메디오이다.
플라멩코가 공연되는 곳은 판소리 공연의 경우처럼
매우 자연스럽다. 거주하는 집의 거실이나 집뜰 같은
작은 공간에서 가까운 이웃과 혈족끼리 포도주 잔 기울이며
소리 한판 벌이는 경우도 있고, 타불로와 같은 대중식당형 홀의
무대에서 청중들을 앞에 두고 이른바 공연을 펼칠 수도 있다.
현대에 이르러 다른 음악이나 무용공연처럼 공적인 공연으로
청중들과 만나기도 한다. 플라멩코에는 춤과 소리가 함께
어울릴 수도 잇고 개별적으로 무대가 진행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경위든 판소리에 고수가 필수적이듯
기타반주가 거의 필수적이다.기타를 대신 하는 경우는
매우 원시적인 소리판일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건
판소리 무대에서 아쟁연주자가 고수를 대신할 수 잇는 것과
같다.
플라멩코 켄테(노래)의 경우, 혼도(깊은 노래)와 인테르메디오
(그 깊이감에 있어서는 깊은 노래에 비해 좀 덜하나 일반 청중이
듣기에, 아름다움이 깊이감보다 더 강조된 '아름다운 노래'), 그
둘 사이의 관계는 우리의 판소리의 동편제와 서편제의 차이점을
생각하면 좀은 이해하기가 쉬울 것 같다. 한쪽이 소리의 힘을 더
중하게 여긴다면, 다른 쪽은 기교적인 면이 강조된 노래로서
아름다움을 좀 돋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문이 미국의 포틀란드에서 플라멩코를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그 만남은 한 광장의 가설 무대 앞에서 칸타오르(남성소리꾼)의
노래소리를 통해서 그리고 춤은 바일라오라(여성춤꾼들)의 군무를
통해서 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그 소리는 아마도 칸테
인테르메조였던 것 같고 춤은 바일레 치코였던 것 같다. 그 첫
만남에서 그 소리와 춤은 인문이게 여간 유혹적이지않았다.
다시 듣고싶은 소리였고 ,그 춤은 꼭 다시 보고싶은 매혹적
대상이었다.
그 첫 만남에서는 문이 무대위의 춤에서보다 그 소리에 더 강한
인상을 받았지만, 두번째로 다시 플라멩코를 만나고부터는 춤에
전적으로 흘려들기 시작했었다. 그것은 거기서 Lau라는 댄서와의
특별한 만남이 그 계기였었다. 그녀의 존재로 인해 이제 문에게
플라멩코라고 하면 춤이 그 중심이고. 소리는 그 다음이었다.
플라멩코에 대한 그의 생각은 근 10여년이나 그러했었다.
문과 Lau와의 관계는 설명하려면 좀 길다. 둘은 공연을 위해 두번을
만났다. 한번은 미국 포틀란드에서 , 춤꾼과 특별 출연자로, 만났다.
또 한번은 한국의 마산에서, 한쪽은 춤꾼으로 그리고 다른 한쪽은
공연 기획가로 ,근 한 달 가까이 거의 매일 만났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은 미국 체류중 그녀와의 소통을 위해 처음으로 이메일을 개설하였고 .
그 야후 이메일은 지금도 처음 그대로 유효하게 사용되고 있다. Lau는
문에게 즐겨 'you are inspiring! '이라고 표현하였고 , 더우기 그녀로
인해 플라멩코 예술이 문의 글쓰기에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cante(플라멩코 노래)는 안달루시아 집시들에게는 춤과 기타연주에
우선한다. 그렇지만 이 점은 비 스페인계 플라맹코 애호가들에게는
해당되지않는다, 왜냐하면 칸테의 멜로디를 무시한 그 낯선 거친 소리
스타일에다, 집시들의 그 싯적 토속어를 제대로 알아 들을 수 없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는 것이다. 스페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인문도
당연히 이 점에 공감했었다.
그런데 칸테 플라멩코를 충분히 느끼기 위해서는, 비교컨대, 우리의
남도 해안의 홍어회의 감칠 맛에 혀가 점점 중독성의 반응을 보이듯이
귀가 그 소리맛에 점점 취해야 한다. 그 노래의 독특한 스타일을 즐기는
것이 그 노래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이를테면,
가사내용을 이해하려들기보다 , 소리 자체와 그 소리를 담아내는
독특한 박자(콤파스), 소리꾼의 일그러진 얼굴 표정, 팔마레나
(박수로 박자를 맞추는 자)에 마음과 귀가 무의식적으로 열려야한다는
것이다. 관객들이 소리꾼의 소리와 몸짓에 일체감을 이룰 때 그
소리마당이 흐느낌,탄식의 열기로 채워지는 그 몰아적 듀엔데의
열광의 분위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전통적으로 플라멩코의 소리마당을 그들은 juerga(후에르가)라 하고 ,그
모임에서 구성원들-소리꾼들, 춤꾼들 그리고 그들의 친구나 혈족 등-
모두가 온 몸으로 나타내는 반 이성적 열광의 상태 duende(듀엔데)라고
한다. 이 듀엔데를 D. E Pohren은 다음과 표현하였다.
.....듀엔데는 영혼의, 그 비탄의 , 그 고통의, 그리고 그 애증의 표현이다.
그맇지만 그 영혼은 원한이나 본노는 품지않는다. 그 표현은 내면적
상처로 인한 절망의 외침으로 , 그것은 집시들의 현실적 삶에서 일어나는
어떤 정서적 몰입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지, 상업적인 극장이나
동굴무대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그리고 플라멩코와 투우를 열렬히 사랑한 스페인의 시인 가르시아
페데리코 로르카는 '듀엔데'를 또 특별한 감성적 시어로
아래와 같이 표현한 바 있다:
스페인 남부지역의 위대한 예술가나 플라멩코 예인들은 그들이
노래를 할 때나 춤을 출 때나 기타를 칠 때 듀엔데가 내리지않고는
아무런 감흥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검은 고통의 소리를
갖고있는 나라만이 듀엔데를 갖고있다......듀엔데는 그리스의
비극에서, 세익스피어의 비극에서 주인공들을 숙명적으로 죽음으로
끌어갔던 것과 같은 안달루시아 대지의 미술적인 힘이다......인간에게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분노와 쓰라림, 통곡을 아는 민족에게만 있다.
(* 가르시아 로르카, 안영옥 역서 p 44, 1998년 예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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