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카디스의 빛과 바다
2.
그라나다에서 문은 늦은 밤이면 숙소인 알바이신 호스텔 주변을
어설렁거리다 메모지에 적어 둔 잠브라 또는 페냐의 플라멩코
공연시간에 맞추어 들어가 혼자 포도주와 춤에 취했었다.
그랑비아 대로에 가까운 누에바 광장의 한 모퉁이에 숨겨진
다로를 찾아들어가서는 댄서 후아나의 타오르는 불꽃같은 춤에
취하였고, 알바이신 언덕으로 오르는 골목길의 한 이름 없는
카페에서는 중연의 소리꾼 안토니오와 비노 블랑코 잔을 들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세크로몬테(Sacromonte) 집시촌의
동굴 카페 라 로시오에서 집시들의 전통적인 플라멩코의
흔적을 직접 느껴보기도 하였다. 그라나다에서 그는 밤마다
그렇게 플라멩코와 포도주에 빠져들었다.
카디스에 온 첫날, 늦은 저녁에 그는 그 도시의 플라멩코 페냐에서
남자무용수, 후안 카를로스의 혼을 빼는 춤에 취하였다. 남자
발레 무용수를 연상케하는 고전적인 외모의 젊은 댄서였다. 그의
춤동작은 한 마디로 내향성 짙은 표정과 몰아적 열정의 조화였다.
강한 짜파테아도를 통해 몸의 무게 중심을 아래로 아래로
내려 남성적 춤의 특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가 하면, 그 위엄과 기품을
지닌 상체의 율동에는 끈임없는 창의적 즉흥성이 묻어나고 있었다.
세바스찬 고성의 등대에서 가까운 이 페냐의 고색창연한 석조구조물은
이 곳 카디스의 명소로 오랜 옛날엔 무기수들을 가둔 감옥터이었다고
하였다. 이 날 밤은 그 무용수의 춤추는 모습을 스케치한 그림의 잉크
판화 한점을 공연 전에 얻어 더욱 행복했다. 카를로스의 춤을 보려고
공연 1시간 전에 이 곳에 와 미리 기다렸던 그였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카디스에서 그가 찾아 나선 밤의 플라멩코 공연장은 그 페냐 한 곳
뿐이었다. 남자무용소의 귀한 춤을 본 그 날 밤 외엔 매일 이 도시를,
수평선이 푸르스름한 해안가에 서서 웅장한 파도소리와 더불어 동트는
새벽에 만났다. 시선은 수평선 너머 아득히 먼 곳으로, 그리고 두귀는
파도소리가 웅장한 성벽 아래쪽으로 향한 채. 그가 그렇게 이 빛의
해안을 매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머문 호스텔 카사 카라꼴이
그 곳까지 걸어서 불과 5-6분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는 대서양으로 향해 열려있는 카디스에서는 바다에 굶주린
걸인처럼 매일 이 도시를 매일 아침 해안에서 그렇게 만났다.
대형버스로 카디스로 들어서던 날 그의 심안에 자신도 모르게
느껴진 것은 바다였다. 도시 표지판이 차창 밖으로 눈에 들어올
즈음 도로의 가로수 가지끝이 어딘가에서 부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음에 그는 순간적으로 아, 여기서 바다가 멀지않는가 보다 싶어
가슴이 뛰었던 그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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